정식 영화라기보단 사실 단편영화.. 에 가깝다. SparkShorts 시리즈 중 하나인 Burrow는 총길이가 6분밖에 되지 않는 단편 영화다. 픽사에서 다양한 스토리텔링 기법이나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SparkShorts 중에 새로운 기술의 실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고전적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이었던 영화다. 역시나 다른 단편들처럼 대사도 없고 음악과 소리만 있는 영화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본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미 한바탕 울고 영화표값의 본전을 뽑았던 기억이 있다.
그 영화를 오늘, 우리나라의 모든 신입에게 추천한다.
당연히 이 토끼가 신입이다. 물론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새로운 회사에 온 경력사원일 수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온 누군가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원대한 꿈과 목표가 있고 열심히 노력하기 위한 마음가짐이 있는데 새로운 환경에 놓여서 그것이 잘 안 풀리는 누군가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토끼는 자기의 집을 짓겠다는 계획을 갖고 열심히 주변을 탐색하지만 이미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주거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자신의 설계도면을 본 도마뱀이 빨간펜을 꺼내자 얼른 뺏어서 아무도 없는 저 아래로 내려간다. 수맥을 잘못 건드려서 물이 터지는 위기에 처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때 이 토끼는 내려왔던 길을 찾아서 다시 올라가서 도망갈 수 있지만, 그 대신 자신이 한 일을 얼른 알리는 길을 선택한다. 자신의 잘못, 실수를 인정하며 펑펑 우는 토끼. 오소리는 이걸 보며 토끼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땅 밑에 사는 모든 사람을 불러 모은다. 오소리의 외침에 모두 모인 주민들은 토끼의 서러운 이야기를 듣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새로운 물길을 내어 문제를 해결한다. 다 같이 땅을 파며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토끼는 든든함 기쁨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문제가 다 해결된 이후 모두가 돌아가려는 찰나, 토끼는 자신의 설계도면을 보여준다. 도마뱀은 다시 빨간펜을 꺼내고, 다음 장면에서 토끼는 모두의 도움으로 자신만의 집을 마련하게 된다.
원대한 계획, 꿈,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서 열정 하나로 회사에 들어온 뉴비(Newbie)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과 같이 있는 그 사람들이 오소리, 두더지, 도마뱀, 그 모든 동네의 주민들이라고. 오소리의 큰 외침이 무서워 보일 수 있고, 도마뱀의 빨간펜이 나의 열정이나 계획을 틀어놓는 방해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일단은 문을 두드리고 나의 이야기를 하면 얼마든지 들어줄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선배로서 첨삭해 줄 건 첨삭해 줄 거다. 그 자세와 마음가짐을 갖고 그들과 같이 달리다 보면, 다 같이 성취감을 느낄 날이 올 것이다.
그게 회사생활이다. 나만 그들에게 맞추는 것도, 나의 계획이 다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닌, 그 어느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것. 처음 온 사람을 적개심으로 맞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첫 단추를 잘 꿰어보도록 하자.
실수를 저지르고 침묵해서 문제가 터져서 모두의 터전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고 같이 수습하는 과정을 밟아보도록 하자. 누군가 당연히 잔소리할 수도 있지만, 그건 도마뱀의 빨간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첨삭받은 설계도면을 보며 흐뭇하게 안는 토끼의 모습이 당신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끝나면 나의 새로운 터전에서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자.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채웠으면 옆집으로 놀러 가서 도마뱀 하고도 놀고, 쥐들하고도 놀자.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안부를 물으며 지나가보자.
회사생활이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사람과 사람이 잘 지내는 것. 그게 전부다. 우리는 새로운 토끼를 언제나 환영한다.
2024.06.1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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