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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위해 선행해서 봐야 하는 영화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조금이나마 더 즐기고 싶다면 영화 《프레데터 (Predator)》 시리즈가 뭔지 정도는 알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몰라도 보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저, 쟨 뭔데 저렇게 첨단 기술로 싸워?라는 의문만 조금 들 수 있다. (참고로 나도 《프레데터》영화를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이 영화는, 예고편을 우연히 봤다가 디즈니플러스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보기로 결정한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봐야 했다면, 안 봤을 것 같다. 어떤 영화일지 감도 안 잡히는 데다가 《프레데터》 시리즈 무엇하나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스릴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에이리언》 느낌이 날까 봐 조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었다. 시작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모든 것들이 다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영화의 1분도 낭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느 장면 하나 버리지 못했겠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 이런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구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프레데터는 역시 내 예상대로 아주 화려했다. '이 영화는 청소년 이용불가란다'라고 계속 외치듯 화려하게 살생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진격의 거인도 조금 생각이 났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 그래도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 느꼈던 그런 불쾌함+스릴이 느껴졌다고 하면... 어땠는지 조금 전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진격의 거인이 더 징그럽다. (영화 보는 중간중간 눈을 가렸다는 건 안 비밀) 덕분에 《프레데터》 시리즈를 한 번 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디즈니플러스에 모두 다 있다는 희소식을 접했다. 《에이리언》과 영화 개봉 시기를 맞춰서 한 편씩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를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ㅋㅋ 생각만 해도 설렌다.


이런 살생+스릴러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이 영화의 기본 철학 같이 깔려있던 원칙이었다. '약육강식', 약자는 먹히고 강한 자는 먹는다는 그 원칙. 그리고 가장 강한 자가 되려면 현재 가장 강한 자를 이기면 된다는 법칙. 이 두 개를 가지고 영화 《프레이》는 움직인다. 포식자인 프레데터는 자기가 관찰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를 죽인다. 약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먹이 사슬의 끝에 있는 포식자를 죽여서 스스로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입증이 목적인지는 모르겠다.) 기계적 사고를 하는 프레데터는 포식자와 피식자를 발견하면 피식자는 보지 않고 포식자를 죽인다. 그리고 자기에게 덤비는 존재에겐 공격성이 있다(=포식자다)라고 판단하고 살생을 한다.

 

이 원칙에서 매력적이었던 것은 영화 앞부분에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쥐였나, 쥐가 벌레를 잡아먹고 그 쥐를 뱀이 잡아먹는다. 프레데터는 그 뱀을 죽인다. 그리고 나중에 늑대가 토끼를 잡아 죽이자 프레데터가 늑대를 죽인다. 얼핏 보면 '최고의 먹이사슬에 있는 애를 죽이는구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순간의 포식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난 언제나 이빨 있는 사나운 애들(보통 육식동물)이 포식자라고 배우고 컸다. 초식동물은 피식자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들의 역할이 영구적으로 고정되어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줬다. 벌레도, 쥐도, 뱀도, 토끼도, 늑대도 아닌 주인공 여자를 통해서 말이다.

 

'여자'라는 존재는 약하다. 그렇게 태어났다. 그걸 이겨내려고 하는 여자가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다. 건장한 남자들이 사냥을 통해 자기의 힘과 존재를 증명하는 사회에서 '사냥'을 하겠다고 하는 여자를 보며 모두 무시한다. 약을 만들고 요리나 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사냥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목소리와 달리 몸이 따라주지 못해서 사냥에 실패하기도 한다. 프레데터가 쫓아올 때도 덫에 발이 걸려서, 백인들에게 납치되어서 감금되어서, 프레데터에게 위협의 존재로 인식이 되지 않아서 이 여자 주인공은 계속 피식자로서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여자가 그 모든 판세를 뒤집었을 때, 프레데터가 위협으로 인지하고 싸울 때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여자'라서 피식자였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전의 모든 상황들이 그녀를 피식자로 만들었고, 그 상황이 바뀌었을 때 비로소 그녀도 포식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사람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다. 제일 강한 포식자가 되는 것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해 유일하게 싫었던 점이 있었다면, 전형적인 '무시당하던 여자가 남자가 잘하는 영역에 도전해서 승리한다' 스토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포식자 - 피식자의 구도를 위해 필요했던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왜 이 여자는 머리를 안 묶을까?)


동물보다 생태의 구도가 더 애매한 사람으로서, 갑과 을의 구조에 예민한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는 큰 깨달음을 주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런 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상황에 비춰진 나만 있을 뿐이다.

 

굳이 일상생활에 교훈으로 삼는다면. '내가 강자가 되자!'라는 교훈은 삼고 싶지 않다. 오히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지 못하는 환경(상황)에서 살자' 정도 될 것 같다. 내 영역에선 내가 주인이니까.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니까.

 

좋은 영화였다.

 

2022.08.17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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