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할 때 상대방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지나가다가 들은 일도, 당장은 도울 수 없어서 거절했던 일도, 연관이 생기면 다시 그 사람에게 가서 그 화제를 꺼내어 새로운 답을 주려고 노력한다고나 할까.
오늘도 그랬다.아침 8시 45분에 걸려오는 전화를 보며, 받지 않은 채 출근했다(출근 시간 전에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아요). 자리에 와서 메신저를 들어가보니 같은 사람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자기가 '참석자가 많은 회의실이 필요한데 하나 줄 수 없냐'라고 말이다. 그래서 가용한 회의실 하나를 구해드렸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났다 생각했다.
근데 얼마 후, 내가 참석 예정이었던 대회의실의 회의가 취소되었는데 오전에 요청 받았던 회의 시간과 동일했다. 그리고 내가 구해드린 회의실 보다 훨씬 더 큰 회의실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냥 대회의실을 취소하고 손을 털었을텐데 나는 그 분에게 연락을 드렸다. '더 큰 회의실인데, 이 회의실을 쓰시겠냐'고 말이다. 그 분은 기꺼이 그 회의실을 받았고, 기존 회의실은 취소했다.
그리고 또 지나가버릴 수 있었는데, 나는 그 대회의실에서의 회의 세팅, Zoom 세팅, Zoom 녹화 안내, 그리고 기존 회의실로 잘못 찾아가는 사람까지 대회의실로 다시 안내해드렸다.
회의가 시작하고 나서야 모든 걸 잊고 내 일을 할 수 있었는데, 회의가 끝나고는 그 분이 내 자리까지 오셔서 나에게 말을 거셨다. Zoom 녹화가 잘 되었냐고. 내가 Zoom 녹화를 확인 할 리 없다는 것도 아시는 분이, 회의가 끝났다는 것도 몰랐을 거라는 걸 아시면서도 그냥 말을 거신 거였다. 그리고는 내일도 내가 개설해드린 Zoom 회의를 잘 이용하겠다며 감사 인사를 하고 가셨다.
그 짧은 대화에, 1년 넘게 마주치며 인사만 했던 그 분의 마음이 전달되었다. 나에게 고마우셨구나, 내가 해드린 일들이 좋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신없는 오후를 보냈지만,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 떳떳하게 보고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지만, 뿌듯했다. 그리고 난 그걸로 충분했다.
가끔 사람들은 내가 하는 걸 보면서 갸우뚱해한다. 이번 이야기를 예로 들면, "회의실 구해준 걸로 충분해요. 더 해줄 필요 없어요"라고 말한다고나 할까.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으면, 사실 이런 걸 즐겨서는 아니다. 귀찮기도 하고, 나섰다가 잘 안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나도 바쁘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런 친절함에서 쌓이는게 있다고 믿는다. 1년 동안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 한 번 걸지 않았던 고객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생긴 것 처럼 말이다. 예의상 인사하고, 인사를 받아주고, 메신저로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사이 이상으로 이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진일보했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이 분에게 나의 목적으로 뭔가 요청하거나, 질문을 해야하는 날이 오면 이 분이 내가 해드린 것만큼 챙겨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내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답해주실거라고 믿는다.
하다못해 누군가가 "슈과장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친절해요" 라고 하거나 운이 좋으면 "일을 잘해요"라고 답해주실거라고 믿는다.
회사생활하면서 깨달은 재밌는 사실은 일을 아무리 잘해도 "친절하다"라는 말은 듣지 못하지만, 친절하기만 해도 "일을 잘한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다는 평이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얻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일을 아무리 잘해도 친절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친절함이라는 것은 나의 인성과 능력에 둘 다 도움이 되지만, 일을 잘하는 건 인성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엄청 잘하는 사람보단, 인성이 좋은 사람과 일하고 싶어한다. 왜냐면 일을 엄청 잘한다는 게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체감이 되지 않지만, 인성이 나쁜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고통을 줄 지는 체감이 되기 때문이다. (일을 못하면 얼마나 못하겠어라는 생각도 하고...)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친절하자. 그 친절함의 수혜자는 언젠가 어떻게든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그 고객이 내 자리로 와서 말을 걸고 둘이 웃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이 본 것만으로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안정적인 디딤돌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고객과 사이가 좋은 수행사 직원의 메리트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고객"이라 친절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오해는 안하기를 바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의 비밀번호를 초기화해주고, 사용자 등록을 하고, 권한 등록을 해주고, 회의실을 구해주고, 회의실을 대신 조율해주면서 "이게 내 일이 아닌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하는 강한 짜증이 밀려와도 상대방에게 내색하지 않고 해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언젠가 이 사람들이 나에게도 힘이 될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안 체하며 인사해줄 때, 다른 사람에겐 말도 걸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와서 질문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난 안다. 내가 디딜 땅이 더 단단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릴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2026.0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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