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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이순신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나오는 이순신이 전부다. 건조하고, 남성적인 문체로 나를 숨 막히게 했던 소설이었다. 저렇게 차가운 사람이 다 있나 싶은 이순신이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이순신 장군과 거리를 두었었다. 영화 《명량》이 개봉하고 큰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관객에 집계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산: 용의 출현》을 보고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 시점에서도 나는 《명량》을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보러가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박해일이 나오니까'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와서 그런지 '박해일이? 이순신을?'라는 의문이 들었다. 예고편을 보고 영화 포스터를 봐도 그려지지 않았던 박해일만의 이순신이 궁금해서 직접 보러 가기로 했다.


영화를 관람한 소감은,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하나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든 게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파도가 쳐도, 전쟁의 파도가 쳐도, 논쟁의 파도가 쳐도 그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자리를 지키는 이순신 장군을 보며, 그 어떤 상황을 입혀도 적합했던 이 영화를 보며 나 역시 말없이 지켜봤다. 그 근심 많은 눈을, 그 확고한 눈을 말이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장면은 일본인 '준사'가 포로로 잡힌 후에 이순신 장군과 독대하는 장면이었다.

 

준사 :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이순신 :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이 대답 하나로 준사가 이순신에게 자기를 거둬달라고 말하는데, 그 때 준사가 이순신 아래로 가려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나는 그 이유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나라의 군주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기 백성을 사지로 내몰았는데 이순신 장군은 목숨을 걸고 자기 사람을 지켰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오늘의 세상도 그런 형국이다. 나는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왔다. 대학에서는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살았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나의 방패가 되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그 사람이 나의 팀장이 아닌 적도 있었고, 나의 고객이 아니었던 적도 많았다. 그저 나를 지켜주고, 나라는 존재를 챙겨준다는 그 이유로 나는 그 사람을 위해 일했다. 밤을 새든, 고생을 하든, 주말에 나와서 일해야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난 내 머리 위에 드리워진 그 그늘이 고마웠고 그 그늘을 제공해준 그 사람을 위해 일했다. 이 영화에서 준사는 그 이야기를 한거였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난 실제 목숨을 던지진 못하겠지만,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수 있었다. 그와 나는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준사를 이순신 장군은 그저 바라본다. 난 한 번도 입 밖으로 말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그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영화가 '일본과의 싸움'을 강조했거나, '애국'을 강조했더라면 나는 돌아서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순신 장군도 자기를 믿어주지 않은 군주 아래에서 싸우지 않았던가. 그게 나라를 위한 사랑이라고 이해해야 했을까, 군주를 향한 충성심이라고 이해해야 했을까. 아닌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싸운 것 아니었을까. 소설이든 영화든 어디에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그 마음 때문에... 책에서는 깨닫지 못했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마음을 느꼈다. 일상 없이 전쟁에서 승리할 방법만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다 위에 성을 쌓는다는 전략, 학익진을 펼치겠다는 그의 이야기에 모두 '왜?'라고 묻는 대신 '그게 되냐?'라고 물었기 때문에 그가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는, 완벽한 승리가 아닌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다. 그 압도적인 승리는 일본군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땅을 차지하는 행위'와는 달랐다. '지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그가 한산이, 견내량이, 이제 최전선이 되어서 지켜야한다고 말할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는 모두를 위한 방패가 되려고 했구나. 그래서 모두가 따랐구나. 그랬기에 우리는 이겼구나.라고 말이다.

 

애국심과 자부심이 넘쳐나게 했던 거북선을 보고서도 마지막에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거북선의 현란함에 자긍심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거북선을 끝까지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고 전쟁에서 이긴 그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이기고 싶었던 그 마음 때문에 난 너무나도 좋았다.

 

그 시대에 그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해줘서 너무나 감사했다.

 

 

혹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고, 앞으로 보러 간다면 '리더십' 측면에서 보고 오기를 권해본다. 이순신 장군 외에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 내 주변의 누구와 같은 지를 돌이켜 봤으면 좋겠다. 내가 미래에는 누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모두가 이순신 장군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 이곳에 마땅히 나의 포지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반추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지키고 싶다. 그리고 내 삶의 의미를 위해 영원히 싸우고 싶다.

 

2022.08.10 00:10

 

영화 《헤어질 결심》의 감상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 참고하세요.

2024.01.11 - [슈르의 영화 라이프] - 당신은 정말 나쁩니다,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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