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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ales나 컨설팅 직군에 있는 사람이라면 연초에 항상 하게 되는 업무가 있다. 그 해의 시장조사 그리고 트렌드를 반영한 PPT 만들기. 12월에서 다음 해 1월로 넘어간 것뿐인데 새삼스럽게 올해의 트렌드를 조사해서 자료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요청들이 쏟아진다. 없다고 하면 마치 여태 일 안 했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왜 없냐' 그러고 트렌드 정리라는 게 어차피 있는 거 정리하기만 하는 것처럼 '그냥 모아서 한 장 만들어줘요'라고 말하고 사라져 버린다.

 

트렌드 보고서... 개인적으로 정말 매우 싫어한다.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게 많지도 않은 것 같다... 일이 어찌 좋을 수 있을까...) 하지만 써야 한다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쓴다. (써야지 어떻게...)

 

슈 과장이 어떻게 하는지 감히(?) 오늘 공유를 하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안 할 수도 있고, 사실 우리 회사에서도 이런 기준으로 다들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무도 안 하고, 해도 어떻게 하는지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 하면 그걸로 훈수 두는 사람도 없다. 왜냐, 내가 안 하면 되는 거니까. 괜히 훈수 두면 괴로워지니까. ('그래? 그럼 네가 해'를 누군가 시전 할 수 있다.)


결국 트렌드 보고서의 결론은 같다. 올해의 트렌드 몇 가지... (5개일 수도 있고 10개일 수도 있고... 그건 마음대로.) 그런데 재밌는 건 동일한 보고서는 단 한 개도 없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다 다른 내용들로 트렌드를 채우고 있다. 심지어 교묘하게 카테고리를 나눠서 비교 불가능한 트렌드 보고서를 만들어내버리기도 한다. 왜 이런 걸까? 이걸 이해해야 트렌드 보고서를 쓸 수 있다.

 

'트렌드 보고서'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자.

 

 

1. 작성하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트렌드'가 다르다.

 

영업 부서에서 '트렌드 보고서 좀 주세요'라고 요청이 들어올 때면 그 말을 듣고 난 인상부터 찌푸린다. 어차피 없어서 줄 수도 없지만 그렇게 다짜고짜 그런 식으로 요청하면 심히 곤란하다. 어디에 쓸 건지,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필요한 자료가 다른 법인데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요청할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목적이 무엇인지, 설명 대상이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그에 맞는 트렌드 보고서를 써서 준다. 놀랍게도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그게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 구글이나 네이버에 '2022년 트렌드'를 검색하면 별에 별 내용이 다 나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트렌드'는 누가 이야기하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이런 이야기인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올해 트렌드를 이야기해주세요'라고 누가 요식업계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올해는 어떤 맛의 음식이 트렌드입니다 (예: 마라가 유행)' 또는 '배달이 용이한 음식이 트렌드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IT 업계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올해는 보안이 중요합니다'라고 하던가 '올해도 역시 AI죠!'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 그 업계에서의 트렌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지 않거나, 여태까지 소비자로서 인생을 살았다면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가 있다. 당연히 MZ세대, 리셀이 올해도 트렌드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당신은 타겟일 뿐(target audience) 마케터가 되지 못한다. (저 트렌드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트렌드는 없다는 의미. '그때 그때 달라요~')

 

 

2.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해줘야 하는 '트렌드'가 다르다.

 

이게 골 때릴 수 있지만, 생각보다 쉬운 이야기다. 내가 과자 만드는 사람을 만나서 한식 트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상대방이 과자밖에 몰라서 한식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해주는 것에 흥미로워한다면 다행이지만, 업무 때문에 만나서 이야기하는 상황이라면 이 정보가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자를 만드는 사람은 올해 과자 트렌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한다. 트렌드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면 그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 트렌드에 맞춰서 움직여야 자기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한식 이야기를 한다면, 그 사람과 미래를 이야기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트렌드 보고서'를 쓸 때는 '듣는 사람이 누구인가'와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를 잘 생각하고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렇게 한 번 해보는 걸 추천한다.

 

 

1) (우리는) 누구를 만나는가?

 

이 트렌드 보고서의 청중이 누구인지 물어보자. 고객사의 실무자인가, 팀장인가, 임원인가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실무자에 가까울수록 트렌드의 범위는 좁게 잡아야 한다.

 

- 실무자가 IT 보안 담당자라면 IT 보안 트렌드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옆 부서에서 담당하는 업무의 트렌드를 가져다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트렌드 개수보다는 구체성이 더 중요해지기도 한다. 실무자는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지고 있는 건지, 어떤 기술이 그 요인이 되는지 등 구체적인 것에 관심이 많을 수 있다.

 

- 팀장급이라면 실무자에게 가져다주는 내용보다는 구체성을 떨어져도 되고, 옆 부서에서 하는 것 같은 일도 살짝 가져다줘도 된다. 그게 협업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알고 보니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 팀장이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팀장은 실무자보다 관심의 범위가 크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범위를 가져다줘도 된다.

 

- 임원이라면, 구체성은 다 버려도 된다(자료에서는 버리고, 이야기하는 사람 머리에는 있어야 하고...). 임원이 관장하는 범위를 커버하는 트렌드 자료를 가져가 주는 것이 좋다. IT 보안을 담당하셔도 그 외의 다른 범위까지 커버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가져다줘도 된다. 그리고 보안 + 업무에 관련된 게 있다면 그걸 가져다줘도 된다. 그 트렌드의 정보에 경쟁사가 하고 있다는 예시나 사례가 있다면 임원은 그 사례에서 눈을 못 뗄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임원도 물론 있다. (괜히 임원이 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임원은 보통 그 자료를 보고 마음에 들면 어떤 트렌드 요소, 어떤 사례에 대해서 자기 밑의 누구랑 더 이야기해보라고 지시하고 보통을 그 자리를 털어버린다.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팀장/실무자랑 하라는 뜻이다.

 

 

2) (우리는) 그 사람을 왜 만나는가?

 

모든 만남에는 목적이 있다. 특히 비즈니스 관계라면 더더욱 목적이 분명히 있다. 상대방이 불러서 가는 걸 수도 있고 ('올해 트렌드 좀 알려주세요'), 우리가 팔 무언가가 있어서 가는 걸 수도 있다 ('올해 우리는 우리의 STT 제품을 팔아야 해!). 그런 경우 목적이 있다면 트렌드 보고서에는 우리의 목적이 되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예: 올해의 트렌드는, STT를 접목한 고객 서비스입니다!) 만약 그런 게 특별히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트렌드로 정리해서 가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안 관련해서 아는 게 전혀 없는데 트렌드에 '보안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면 아까운 시간과 PPT의 공간을 낭비하는 꼴이다.

 

 

그래서... PPT는 이렇게 정리가 된다. 장표 한 장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오른쪽 끝 즉 시사점에는 우리가 팔려고 하는 트렌드가 정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기준으로 왼쪽에는 시장에서 이야기하는 트렌드를 정리해야 한다. 

 

왜 시장에서 이야기하는 트렌드를 정리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트렌드라고 우겨도, '우리'가 너무 작은/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회사라면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서에는 출처를 큰 컨설팅펌의 자료라든지, 매우 유명한 신문사의 기사라든지 골고루 밝히면 신뢰가 올라갈 수 있다. 절대 그 보고서를 요약하라는 것이 아니다. 마치 그들도 나의 의견과 같은 것처럼 정리를 하라는 이야기다. '트렌드가 A B C가 있는데, 딜로이트와 pwc의 보고서에도 어떤 어떤 사례로 명시했습니다'라는 느낌을 주라는 것이다. (혹시 딜로이트 직원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보고서 잘 보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추가로... 외부의 무언가를 가져와서 쓰는 경우 제발 제발 제발~! 출처를 밝히도록 하자. PPT 밑에 자그마한 주석을 남기는 일은 매우 쉽다. 만약 난 그게 싫어요 (지저분해요 or 자리가 없어요) 라면 글자 크기를 매우 줄이든, 최소한의 정보를 쓰든 해서라도 꼭 넣도록 하자. 신뢰의 문제도 물론 있지만 이건 실력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슈 과장은 교육 때 대학 교수들이 강의 자료를 만들어왔을 때 출처를 적지 않은 강의자료를 보면 그 순간부터 강의를 듣지 않는다. 기본 중에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교수의 강의를 내가 들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경험인지 남의 경험 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걸 배워서 나도 써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자료를 존중하지 않는 교수의 자료를 난 존중할 수 없다.)

 

에헴,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시작은 '자료의 목적'이다. 팔고 싶은 트렌드를 쭉 적어놓고 역으로 그 사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트렌드를 자료/기사에서 찾도록 하자. 그래서 다 정리했을 때 마치 여러 가지 트렌드 자료에서 고객을 위해 따로 발췌하고 정리해온 것 같은 인상을 주도록 하자. 나를 위해 맞춰서 무언가 만들어왔다는 걸 아는 순간 그 노력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 뒤(뒷 페이지)에 들어가는 내용들은 그 트렌드와 연속선상에서 우리 회사에서 팔고 싶은 무언가들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면 된다. 제품이면 제품, 서비스면 서비스를 잘 설명해서 작성하면 된다. 그러면 고객은 '이 회사는 올해 트렌드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오늘 포스팅은 PPT를 작성하는 기술을 설명하는 내용이 아니라 첨부로 보여줄 이미지나 자료가 없다. 어떤 사고를 갖고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지를 작성한 것이라 글밥이 많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글의 양이... 그 목적을 달성했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진짜' 트렌드 보고서를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잘 모른다. 어린 연차였을 때 신문기사와 자료를 다 뒤져서 그룹핑하고 가중치 매기고 해서 나름의 논리를 갖고 트렌드를 정리하기도 했었다. 당시 이렇게 한 이유는 그 트렌드를 통해서 '우리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남에게 팔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목적이 위의 2번과 같은 것이 아니라면 이런 방법으로 작성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이걸 정리해서 시사점을 뽑고 '우리 회사는 이걸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려면 결국 같다. 누가 들을 것인지, 나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사실 나의 목적과 나의 청중이 누군지 아는 건 모든 PPT의 기본이다. 그 대표적인 예시를 트렌드 보고서로 했을 뿐이다. 그러니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자. 모든 PPT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 PPT를 만드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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