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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신입이 들어왔을 때, 막내들에게 제일 먼저 시키는 일들 중 하나가 '회의록 작성하기'이다. 이유야 다양한데 가장 나쁜 이유가 '내가 쓰기 귀찮아서'이고 좋은 이유가 '회의록 쓰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하겠다. '당신은 회의록을 작성할 줄 아는가?'

 

슈 과장은 신입이 들어오면 바로 회의록을 작성하게 하지 않는다. 회의록을 써야 했던 나의 막내 경험을 기억하기 때문인데, 막내는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쓰는 게 너무나도 힘들고 업무의 여유가 없으면 시간 안에 회의록이 나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용어가 익숙해지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가 되어서야 막내에게 '회의록 한번 작성해봐요'라고 한다.

 

그렇다면 슈 과장이 생각하는 '회의록 제대로 작성하는 방법'을 이야기해보겠다.

 

1. 회의록은 언급된 사실을 작성해야 한다.

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걸 어떻게 쓰냐가 문제인데... 이 사실을 작성하는 방법에는 사실 정답이 없다. 회사의 기업문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로그처럼 언급된 내용을 다 작성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곳도 있고, 로그도 부족해서 그 말을 누가 했느냐까지 적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곳도 있고, 다 필요 없고 결론만 적어도 된다고 하는 곳이 있다. 이 세 가지를 취해야 하는 경우가 다 다른데, 이건 전적으로 회의록의 상황과 기업문화에 의해 정해야 한다. 나 혼자 창의적으로 회의록을 써가도 스타일이 안 맞으면 다시 작성하기 마련이다. 만약 막내인 상황에서 회의록을 써야 한다면 정중하게 샘플을 요청하자. 양식과 회의록 작성 방식을 보고 차용해서 쓰는 게 최선이다.

 

그래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저 위에 3가지 방식을 어떤 경우에 써야 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1.1 언급된 내용을 다 작성해야 하는 회의록

주로 워크숍, 아이디어, 협상과 같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 것이 의도된 회의인 경우 작성하면 좋다. 그 이유는 만약 처음에 A안, B안, C안에 대해 회의를 했는데 B안으로 결정했다고 치자. 나중에 누군가가 A 안을 다시 언급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가 있다. 회의를 이미 해서 결정했는데 설마~하고 손을 흔든다면 그 손 조용히 내려놓으시길. 이런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럴 때 회의록을 내밀고 "이미 검토했었고 그래서 B로 간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순간에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회의록에 그 내용이 없다면 근거는 없으니 모두 둘러앉아서 다시 그 회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때는 당연히 그 검토에 대한 내용이 회의록에 들어갈 것이다. 재수 없으면 A안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게 함정이다. 방향 하나가 바뀌는 게 큰 리스크가 되는 업무를 수행 중이라면 초반 '협의' 과정에서는 꼭 자세히 작성하는 게 좋다.

 

1.2 의견을 발언한 사람까지 작성해야 하는 회의록

1.1의 회의록의 더 자세한 버전인 회의록이다. 당연히 이 회의록도 작성해본 경험이 있다. 이런 경우는 의견이 너무 다양한데 참석자의 부서도 다양한 경우에 작성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해관계가 다른 세 개의 부서가 모여 앉아서 의견을 낸다면 단순히 A, B, C 세 개였던 의견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A는 기획부서, B는 구매부서, C는 개발부서 이런 식으로 꼬리표를 달아둘 필요가 있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의 마스코트를 만드는 회의를 한다고 치자.(슈 과장은 그런 회의를 해본 적이 없다.) 여기서 마스코트에 대한 의견을 냈는데, 기획부서는 동물이어야 한다, 구매부서는 파란색이어야 한다, 개발부서는 2D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왔다고 치자. 이렇게 회의를 하고 회의록을 정리하고 나왔는데 불가피하게 파란색을 할 수가 없는 이유가 나왔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는 다른 부서에는 불가해서 빨간색으로 바꿨다고 공유할 수 있지만 의견을 조건처럼 제시한 구매부서에는 정식으로 OK를 받아야 한다. 예시가 너무나도 단순해서 '에이 이런 걸로?'라고 하지만, 이게 건물을 짓는데 네모 창문이 둥근 창문이 되는데 내가 거주자라고 하면 이건 통보로 되는 게 아닌 것이다. 그죠? ^^ 그런데 만약 회의록에 의견을 낸 부서가 없다면, "이 의견을 누가 얘기했더라?"라고 추적을 하거나 모든 부서에 다 OK를 받아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발생할 수가 있다. 

하지만 주의사항도 있다. 되도록이면 의견을 발언한 사람의 이름은 작성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그 이해관계를 대표할 수 있는 단위만 기술하면 된다. 세 개 회사면 회사명으로, 세 개 조직이면 조직명으로 말이다. 회의록에서 개인의 이름이 나오는걸 반기는 사람은 없다. 가끔은 이름까지 작성하긴 하지만, 그것은 보통 이런 경우가 아니라 결정사항의 중대함을 나타낼 때이다. 회의록에 "파란색으로 한다" 옆에 팀장님 이름이 있는 거랑 과장 이름이 있는 건 완전히 다르니 말이다. 일이 어려워져도 팀장이면 어떻게든 파랑으로 하려고 할 테고 과장이면 그 사람을 설득할 테니 말이다. 그럴 때는 이름을 박는 게 좋다.

 

1.3 결정된 내용만 간략하게 쓰자

이런 경우가 있다. 이 회의의 안건도 이해를 못하겠으니 설명부터 하고 시작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회의. 질의응답이 많고 이해를 못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다양한, 이상한 의견들이 중구난방으로 오가는 경우. 이걸 회의록으로 작성하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회의록의 내용도, 회의록의 용도도, 그 무엇도. 헤매는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면 과감히 펜을 내리고 그냥 쳐다봐라. 정상 궤도로 올라간 다음의 내용만 작성하면 된다.

그리고 회의의 목적이 의사결정이라면 간단하게 작성하면 된다. 목적은 의사결정이고 어떻게 의사결정이 나왔다.라고 말이다.(한 줄로 쓰라는 건 아니다.) 복잡하게 쓸 필요 없는 회의록은 얼른 정리하고 닫아버리는 게 상책이다.

 

 

2. 회의록 필수 정보는 꼭 맨 위에 쓰자

회의록은 양식과 무관하게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내용들이 있다. 회의의 내용보다도 우선으로 작성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1) 회의명, 2) 회의 일시, 3) 장소, 4) 참석자. 이 정보는 꼭 들어가야 한다. 회의가 있었다고 증명하는 찍듯이 작성이 되어야 한다. 빠져도 되는 정보가 있다면 '장소' 정도다. '회의실 몇 호' 이 정보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물이나 층까지는 작성하는 것이 나중에 사람들이 이 회의를 떠올리기엔 좋은 정보다. 필수 정보는 최선을 다해서 쓰도록 하자.

그리고 참석자를 쓸 때는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의 기준으로 쓰지 말자. 참석자도 다 그룹핑이 되어서 작성이 되어야 한다. 간단하게 추가로 설명해주겠다.

 

2.1 참석자 작성은 '갑'이 먼저다.

여기서 '갑'이 없어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기준의 문제지 언제나 갑이 있다. ^^ (잘 생각해 보자 나의 갑이 누군지...) 우선 참석자는 그룹핑이 되어야 한다. 제일 큰 단위부터 그룹핑하자. 처음이 회사별로 구분하는 것이다. 두 번째가 회사별 조직, 그리고 그 조직의 갑을병정 순서대로 쓰는 것이다.

 

예시를 보자.

참석자>

  갑 회사

     - 구매팀 : 김 팀장, 박 차장, 손 과장, 오 사원

     - 기획팀 : 김 팀장, 박 차장, 손 과장, 오 사원

  을 회사

     - 영업팀 : 양 이사, 손 팀장

 

여기서 갑 회사가 갑이니 위로 올라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구매팀과 기획팀 중 갑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가장 쉬운 방법은 을 회사를 부른 '주관부서'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면 된다. 구매팀이 을 회사를 부르고 기획팀을 회의에 초대했다면 구매팀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맞다. 이건 한 회사의 갑을병정이 아니다. 그 회의에서 관계의 갑을병정이다.

 

 

3. 회의록 마지막에는 '회의 종료 후 해야 할 일'을 작성한다. 

회의를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목적을 달성했다면 이 마지막에 적을 내용이 있다. 보통은 의사결정 결과를 작성한다. '마스코트는 동물, 파랑, 2D로 한다'라고 작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그 회의에서 결정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Follow up 사항은 꼭 마지막에 작성해야 한다. 이때 담당자/담당부서를 작성하는 것은 필수다. 이걸 작성하는 의미는 '회의에서 모두가 이렇게 정했으니 하세요'라고 기정사실화 시키는 것이다. 잊었을 경우 처음에 하기로 결정한 시점부터 담당자가 다 나오기 때문에 추가 숙제를 성실하게 이행한다. 회의록에 없으면 또다시 근거가 없고 지연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가 있다. 꼭 쓰도록 하자.


이게 회의록 제대로 쓰려면 유념해야 하는 내용이다. 내용이나 단어/용어까지 들어가면 조금 복잡해지니 이번 포스팅에서는 생략하겠다.

 

하지만 이 세 개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이걸 못해서 사원 시절에 사수에게 참 오랫동안 설명을 들어야 했다. 이해가 안 가서 질문하고 이해 못해서 가만히 앉아서 꽁해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지만,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을 지금부터 작성해보겠다.

 

4. 나에게 유리한 사실로 작성하자.

1번과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게 느끼는 게 정상이다. 이게 한국말의 묘미라고나 할까. 실제로 회의록을 작성해서 검토 요청을 하면 조사 단위로 수정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그 사람들은 직책이 '팀장' 아니면 '차장'정도 된다. 과장, 대리는 그런 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조사 단위로 피드백을 받을 때 "아 이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이구나" 또는 "아 이 사람 조심해야겠구나"를 느끼곤 한다.

 

이게 왜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더 설명해보겠다.

 

"마스코트는 파랑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회의록을 "마스코트는 가능하면 파랑으로 한다"으로 쓸 수도 있다. 누군가가 제시한 의견이니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불가능한 경우' 파랑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 위에서 이야기한 부서에 파랑으로 못한다는 걸 OK 받지 않고 통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 부서가 버럭해도 회의록에 '가능하면'이라는 단어 하나로 그들은 조용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만약 무언가 만드는데 1mm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된다.라고 누군가 말했다고 치자. 거기에 만드는 부서도 동의를 했다. 그래서 만약 회의록에 "1mm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된다"라고 쓰면 그 만드는 부서는 그 1mm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하지만 회의록에 "오차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라고 만든다면 1mm 오차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사실을 적어도 나에게 유리하게 쓴다는 건 이런 것이다.


마지막 방법은 회의록을 작성하는 부서에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작성된 걸 봐도 쉽게 잡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걸 고집해서 고쳐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일단 지적받기 전에는 작성하는 부서에서 유리하게 쓰는 것이 맞다.

 

회의록은 보통 회의를 한 날 초안이 다 작성이 되어야 하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에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 회의록을 전달하면서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면 '언제'까지 회신을 달라고 해야 한다. 만약 그때까지 회신을 받지 못하면 그 회의록은 최종 버전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 회의록은 최종 버전을 만드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위의 예시처럼 회의록을 보여주며 우길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다. 모두의 확인, 검토, 공증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서로가 그 회의록을 들고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참석자가 추가로 하기로 협의한 내용이 있는 회의라면 더더욱 빨리 공유해야 한다. 유념하도록 하자.

 

내가 막내라면 회의록은 담당 부서 안에서 먼저 검토를 받고 참석자에게 보내도록 하자. 내 초안을 부서에서 보지 않고 보내면 그냥 다 같이 욕먹는 상황이 발생한다 ^^ 그리고 수정 요청이 쇄도하는 걸보며 스트레스받는 자신을 마주하기 싫다면 더더욱 그렇게 하자. 또한 회의의 경중에 따라서 회의록을 보내는 역할을 내가 하지 말고 사수가 하는 게 맞을 수가 있으니 그 부분도 신경 쓰도록 하자.

 

쉬워서 막내에게 회의록을 쓰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회의록은 계약서 수준으로 중요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회의록, 이제 제대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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