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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탑건(1985)을 봤다. 톰 크루즈 영화를 한번 챙겨봐야지 라는 크게 의미 없는 목표가 있기도 했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때 본 탑건은 나에게 옛날 영화, 그리고 톰 크루즈 리즈 시절 외에는 큰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탑건:매버릭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탑건의 줄거리도 잊은 채 좋아하면서 열광했다. 그냥, 모두의 기억 속에 남을 것만 같았던 영화가 그 이야기를 계속한다는 생각에 반갑고 기뻤다. 이전 줄거리도 잊었으면서 앞으로의 줄거리를 기대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영화는 그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영화를 사람들이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좋아할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 모두에게 다른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다. 추억 속의 누군가를 다시 본다는 것, 기억 속의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는 것(reunite) 등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 단순한 줄거리, 누구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개연성, 줄거리를 지나치게 꼬지도 않고, 주인공의 성격이나 상황을 크게 바꾸지도 않고 모두 그대로 잔잔하게 둔 채로 2편(Sequel)을 만들었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엔 탑건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있어서, 오마주 하나하나를 볼때마다 좋았다. 영상미와 소리가 다 좋았다. 톰 크루즈가 너무 멋있어서 좋았다. 줄거리가 복잡하지 않아서 좋았다. 엔딩이 마음에 들어서 좋았다. 특정 국가나 적이 명시되지 않아서 좋았다. 그래서 탑건:매버릭을 보면서 영화관에서 나올 때는 만족도가 높아서 박수 치고 엄지 척하며 모두에게 추천하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지금 곰곰히 생각하면 할수록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위의 이야기도 물론 있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매버릭을 만난 1985년 이후로 그는 그 긴 시간을 과거와의 싸움을 하면서 보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제야 자기 과거와, 괴로운 현재와 화해를 하는 걸 볼 수가 있었다. 18년이 걸리는 결자해지를 보면서, 탑건과 탑건:매버릭의 시작과 끝이 일치하는 것을 보는 순간, 웃는 두 남자의 미소가 오버랩되는 순간 내가 느낀 건 기쁨과 만족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탑건에서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다. 그리고 탑건 매버릭에서도 그 연장선상에서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다. 매버릭을 보면서 하나를 이겨낸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이겨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실과 무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남들 모르게 조용히 내려놓았던 갈등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날이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 또 그 갈등이 다른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더라도 오늘의 갈등을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 영화를 좋아한 이유는 그런 이유였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의 얼굴을 봐서도, 전쟁에서 불타버린 적기를 봐서도 아니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와 환하게 웃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설령 언젠가 내가 힘든 날이 오더라도, 마지막에는 나도 그렇게 이겨내고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022.07.1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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