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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를 참 좋아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처음으로 만났는데 그 책을 읽을 때 주제 사라마구가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 속이 미슥거리고 역겨운 감정을 추스르는데 고생을 참 많이도 했었다. 하고 싶어 하는 모든 말들이 상징적으로 묻어 나오는 소설을 보면서 반했던 사람인데, 너무 사실적이라 한동안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읽지 말아야지 하면서 잠시 떠나 있었다. 그런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Enemy(에너미)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제이크 질렌할이 훌륭한 배우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정말 두 명을 의상이 아니고 연기력 하나로 가려낼 수 있을 만큼 두 캐릭터의 특성을 잘 잡아내서 연기를 했다고 할까. 근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심하게) 지루했다. 90분 영화가 어쩜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 있는지 신기했다. 2시간짜리 영화를 봐도 느낄까 말까 한 지루함을 1시간 만에 느꼈다. 근데 90분 영화의 지루함은 마지막 1분에서 뒤집어져버렸다.


이 영화는 영화를 보기 전/중/후 중에 후가 가장 중요한 영화다. 별점 1~2에서 순식간에 7로 급상승하게 된 배경도 다 여기에 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많은 요소들이 나중에 생각해보면 참 절묘하게 다 엮여 들어간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 영화가 미스터리긴 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많은 사람들의 해석을 찾아봤는데, 참 다양한 해석이 많았다. 그래도 결국 1-2개로 수렴이 되었는데, 나도 나만의 해석 하나를 여기에 제시하고자 한다.(스포일 주의) 


Adam, Anthony의 관계를 정리하자면 Anthony가 원조, 그리고 Adam이 (이름과 달리) 그의 도플갱어다. 그렇게 보면 Adam은 여러 가지 의미로 성장/변화의 속도가 더뎌서 더 나은 사람 같아 보이지만 결국 Anthony처럼 변할 거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가 있다. 실제로 그 모습은 임신한 Helen에게 친절을 베풀던 Adam이 마지막에는 Anthony가 드나들던 스트립 클럽의 열쇠를 챙겨 들고 저녁에 갈 곳이 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런 Adam과 Anthony에게 거미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고 있는데, 나는 그 거미가 속박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보였다. 잘 짜여진 거미줄 위에서 어떻게 행동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결국 Adam이 Anthony의 길을 걸어가듯이, Helen이 다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은근슬쩍 남자를 바꿔도 결국 똑같은 남자가 남편이 되듯이. 거미란 존재는 어쩌면 다음에 또 똑같은 남자가 나타난다 해도 Helen의 운명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나타내는지도 모르겠다. Adam 역시 이름과는 모순적이게도 최초도 최후도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에 Adam이 한 강연을 잘 생각해보면 그런 추론이 나온다. 결국 Adam, Anthony라는 개인이 어떤 삶을 살고자 한들, 특정 dictatorship은 그 self-expression을 억압할 것이다. Adam은 이것이 하나의 패턴/유형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잊지 말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이 거기에 잡혀있다는 자각은 하지 못한다.


잘 짜여진 패턴에 속해 그것도 모른 채 반복된 억압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에너미였다.


 

명대사>

See, every dictatorship, there's only one obsession and that's control, they want to have control over the people. In ancient Rome, they gave bread and circuses, they kept the populace busy with entertainment. In other dictatorships, they have other strategies. To limit information, to limit ideas and knowledge. How do they do that? They lower education, limit culture. They censor any means of self-expression. But it's important to remember this, this is a pattern that repeats itself throughout history.

 

2014.06.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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