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핫하던 때가 있었다. 모 회사 회장이 전 직원에게 그 책을 읽어보라고 했을 정도였다. 고객이자 회사의 막내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당장에 옆자리에 90년생을 앉혀놓고 일하는 나로서도 이 책을 읽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야 하나 고심했을 정도였다.

 

근데 이제 그들보다 더한 아이들이 등장했다. 'MZ세대'라고 부르는 이 아이들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금 과장급 이상의 직원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고방식에 충격을 받은 우리로서는 두 가지 대응방안을 선택했는데, 예전에 모든 후배를 받았을 때 선택하는 방법인 '후배를 챙긴다'의 마음과 '그들의 사고방식대로 똑같이 대한다'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이전 포스팅을 보면 엄청 좋은 선배인 양 글을 써서 이 결론이 누군가에게는 충격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리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그런 마인드를 갖고 후배들을 대했다가 역으로 상처 받은 것은 나였다.


그렇다. 난 MZ세대와 일하는 것이 두렵다. 나도 MZ세대이지만, 살아온 세대의 차이인지 몰라도 내 옆에 있는 MZ세대 후배와 나는 너무나도 다르다. (연차는 6년 차이가 나고, 나이는 한 살 차이다.)

 

2020.04.22 - [슈르의 오피스라이프/슈르의 오피스 이야기] - 팀 인턴을 정규직 전환시키는데 성공한 이야기

 

팀 인턴을 정규직 전환시키는데 성공한 이야기

오늘 포스팅은 그냥 수다 떠는 걸로 하기로 했다. (일 생각이 하기 싫은 날...이라고 해두겠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슈 과장을 보고 계십니다. ^^) 과거 오피스라이프에 대한 수다를 떨겠다

ebongshurr.tistory.com


도대체 어떻길래?라고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충격을 받은 일화를 몇 개 적어보겠다.

 

1. 공부하는 시간도 근무시간이다.

 

새로운 걸 공부해야 하는 부서에 있으면 당연히 새로운 걸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 회사는 업무시간에 공부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업무를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찾는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인데, 이렇게 인정하고 하게 해 주니 MZ세대는 그 이상을 바라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6시 이후에 남아서 공부하고 야근했다고 시간을 올리고, 주말에 회사에 나와서 공부하고는 주말 특근 수당을 달라고 올린 것이다. 그것도 누구도 '월요일까지 공부 다 해야 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런 것이다. 누구도 타이트한 데드라인을 주고 공부해오라고 하지 않았다. 어떤 업무를 그때까지 끝내라고 해서 야근이나 특근이 발생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걸 들은 우린 모두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자기가 공부한 시간까지 굳이 야근/특근으로 올려서 보상을 받아야 했던 걸까? 우린 그 이후로 이 아이에게 스터디를 시키지 않기로 했다. 설령 뭔가 조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6시에 퇴근하라고 강요했고 주말에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이후로도 가끔 그 말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야근하고 시간을 올렸는데 누구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2. 삽질은 본인 인생의 시간 낭비다.

 

이건 올해 퇴사한 후배의 이야기다. 누구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의사결정도 번복이 되기 일쑤였고, 설계도 자주 변경이 되었고, '이 산이 아닌가 봐'하면서 개발된 내용을 엎어버리고 했다. 내가 들어갔던 프로젝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지켜보지 못했지만 저런 상황이 있었다고 퇴사한 후배가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개발한 게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또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이 후배는 '윗사람들이 유능했다면, 의사결정을 잘했다면 내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었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그 후배는 누구에게도 상담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저는 이 회사에 실망해서 나가요'라는 어록을 남기고 이직 준비도 없이 백수의 길을 자청해서 걸어가버렸다.

 

그게 그렇게 큰 일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개발을 하다가 의사결정이 번복되는 것도, 방향이 바뀌는 것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그게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때 자기가 개발한 게 날아간다고 해서 본인의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주는 일이란 말인가. 그 경험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월급을 안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해서 회사를 나가면, 어차피 자기가 개발하는 것도 없고, 월급도 못 받지 않는가!? 이해할 수 없다.

 

 

3.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난 하지 않을래요.

 

이게 요즘 제일 많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아이들이면서 잡무를 시키면 반발한다. '내가 이 일 하려고 이 회사 들어왔나?' 하는 마음 '내가 원했던 커리어의 일이 아닌데 왜 이걸 해야 하지?' 하며 괴로워하다가 퇴사 버튼을 눌러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악덕한 회사여서 하루 종일 앉아서 막일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손이 부족해서 도와달라고 한 일들이었다. 그런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는 듯이 입을 있는 대로 내밀고 괴로움을 토로하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아니, 그럼 그걸 부장이 하니?? 그 월급 받고 그걸 해? 아니구나, 부장도 하는데 넌 안하겠다는거니?)

 

'오타 검수하는 게 싫었어요'라는 후배의 말을 들으며 '와, 이게 어떻게 그럴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안서가 200장이라 그거 20장씩 나눠서 오타 검수하자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싫었단 말인가? 이전 직장에서 오타 하나 낸 걸로 '이럴 거면 퇴사해라'라는 말을 들은 나로선, 오타 검수를 무시한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후자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겠다.

 

1-S. 공부하지마.

 

공부하는 시간이 업무시간에 들어간다면 공부를 시키지 않겠다. 업무를 바로 주고 업무를 해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업무를 하지 못한다면 업무도 주지 않겠다.

 

 

2-S. 너의 인생에 삽질이 낭비라면, 삽질이 안되게 해라.

 

회사도 삽질 싫어한다. 프로젝트팀 하나를 꾸리면 발생하는 인건비가 얼만데 삽질이 하고 싶을까? 삽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회사가 이해를 해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삽질이 안되게 하는 건 개발자의 몫이다. (참고, 난 개발자가 아니다.) 개발자에게 어떻게 개발하라고 지시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언어를 쓸 건지, 어떤 환경을 쓸 건지도 다 내가 정하지 않기로 했다. 개발자가 결정하고 개발자 마음대로 개발하라고 해버렸다. 대신 내가 원하는 아웃풋만 명확하게 전달했다. 개발 과정에 내가 개입해서 원망을 사느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같이 개발해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말하면 구해줄 것이고, 개발 환경에 필요한 솔루션이니 환경이니 돈이 필요하면 그 예산은 내가 따온다고 했다. 그러니 삽질이 안되게 하는 것은 개발자의 몫이고 그 불만도 내가 받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시간 다 지나서 만들어내기로 합의했던 아웃풋이 안 나온다면 그때 각오해야 할 것이다.

 

 

3-S.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나 역시 너를 돕지 않겠다.

 

이런 MZ세대의 신입들이나 후배들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선배가 일을 가르쳐줘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인이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보상을 받아야 하고 무엇 하나도 공짜로 해주기 싫어하면서 윗사람이 자기를 가르쳐주는 것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난 나와 일을 하면서 하게 되는 오타 검수를 같이 하는 것이, 삽질을 하는 것이, 커리어와 조금 무관한 일을 하는 것이 다 문제가 되는 후배에게는 가르쳐줄 것이 없다. 왜냐. 내가 오타 검수하고 내가 삽질하고 내가 그 커리어와 무관한 일을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후배는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일을 가르쳐주지 않아요'라고 하소연을 하겠지. 난 그 후배에게 묻겠다.

 

'내가 왜 너에게 일을 줘야 하니? 일을 주면 불평하고 싫다고 하고 입 내밀고 할 텐데.'

'내가 왜 나의 커리어와 무관한 너를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하니?'

'내가 왜 내가 보상받지 못할 너의 교육에 나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 


올해 3년 차 한 명, 신입사원 한 명이 퇴사했다. 6년 차 한 명이 팀을 옮기겠다고 3년째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위의 이유들이다. 그런 고충을 토로하는 팀장님에게 나는 한마디로 답변을 드렸다.

 

"잡지 마세요. 보내요"

 

난 후배에게 일을 나눠주는 게 너무 힘들다. 내가 하면 더 빠른 일을 굳이 나눠주면서 가이드를 해주고, 리뷰를 해주고, 질문도 받고, 일 외에 후배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일이 수십 배로 늘어나는 기분이다. 내가 하면 내가 다른 업무에 쪼개서 해내면 되는데 말이다.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입 내미는 걸 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방향을 바꾸고 수정을 해달라고 말하면서 미안해하는 나를 보는 것도 피곤하다. 기대한 수준 이하로 왔는데 화를 내지도, 짜증을 내지도, 실망한 모습을 못 내비치는 것도 힘들고, 상처 받지 않게 수정 및 보완을 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과장급 이상의 회사 사람들과 앉아서 이야기하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확실히 요즘 애들이 다르긴 다르더라"

 

그리고는 다 결론을 낸다. "MZ세대랑 일하기 싫어요."

 

 

나도 MZ세대다. (모든 MZ세대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뜻. 성급한 일반화는 나빠요~) 하지만 이런 마인드로 일할 거면 제발 들어오지 말길 바란다. "뭐든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의 마인드를 가졌던 후배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립다. 뭘 줘도 뭔가를 배웠던 후배, 뭘 해도 즐길 줄 알았던 후배,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본인의 시간에 공부를 하고 스터디그룹을 했던 후배. 그런 후배를 위해 내 시간을 쪼개서 가이드를 주고 일을 주고 상담을 해주던 시절이 그립다. 후배 스터디그룹을 일정 맞춰서 퇴근시켜주면서 속으로 흐뭇해했던 때가 그립다.

 

난 MZ세대가 두렵다. 이젠 후배를 받기도, 키우기도 싫다. 그런 고충을 들었을 때 이해하고 설득하고 달랠 자신도 없다. "그럼 나가"라고 화낼까 봐 스스로가 두려울 지경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