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미리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1) 나도 월요일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2) 회사에 왕따는 남의 회사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3)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아직도 해결방법은 모른다
깨달음의 배경은 다음과 같았다.
몇 주전 금요일, 오은영 박사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봤다. 자기의 엄마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금쪽이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엄마가 자기에게 닿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저 엄마가 뭘 잘못했길래 애가 저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봤다. 오은영 박사는 그런 모습들을 보던 중 엄마가 없는 사이에 금쪽이 (친) 할머니와 아빠가 엄마의 험담을 하는 모습을 보더니 "가족 내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라고 진단 아닌 진단을 했다. 아이는 실제로 엄마가 싫은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친) 할머니와 아빠 편에 서야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엄마를 싫어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앞에서 엄마의 험담을 하는 (친) 할머니와 아빠의 행동이 우선 황당했고, 둘째로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저 엄마가 살아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였으면 죽고 싶었을 것 같아요"라는 오은영 박사의 말에 나도 깊이 공감했다. 진작에 이혼을 했을 거다, 애한테 윽박질렀을 거다 등등의 생각을 했다.
남의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이 방송을 본 적은 없었다. '나중에 네 자식 낳으면 잘 키우려고 열심히 보냐'라는 말에도 나는 '이게 사람 사는 일이 다 같단 말이지'라고 하면서 열심히 봤었다. 이 에피소드가 그렇게 황당하면서 충격적이었는데 그게 나와 상관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월요일에 우리 팀 부장님이 나에게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메신저로 말을 거셨다. 잘 지내냐는 이야기 잠깐 하고 나머진 죄다 본인 이야기였다. 자기가 얼마나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자기가 얼마나 유능한 PM인지, 자기가 밑에 후배들이 칼퇴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둥, 프로젝트 예산으로 점심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있다는 둥 등등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자기 자랑)를 신나게 하셨다.
같이 일하기 힘들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 분이 주장하는 것은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야근도 없고, 회사 돈으로 점심에 회식(술 없음, 그냥 비싼 밥. 예: 오마카세)하고, 심지어 언더런(프로젝트가 돈을 많이 남겼다는 듯)인 프로젝트인데... 왜 사원 대리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었을까 싶었다. 욕을 하는 분도 아니었고, 근태 갖고 뭐라 하는 분도 아니었고, 휴가 간다고 하면 막지도 않는 분이었다. 엄청난 수다쟁이라 이야기하는 거 들어드리다가 귀에 피가 날 것 같은 고통이 최대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다소 소심하기도 했고, 말도 가끔 상대방 배려 없이 막 하기도 하시지만 (2년 차 남자 사원에게 '키가 작아서 넌 여자 못 만날 거야'라고 하심) 그래도 이 사람이 다른 팀원들 대비 엄청나게 최악인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았다. 우리 팀에서 업무 지식으로 치면 순위권 안에 드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직접 PPT도 만들고 발표도 하고 싸워주기도 하시고... 일을 하시는 분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 분이랑 일하라고 하면 1~3년 차들이 죄다 울상이었다. 같이 일해본 적이 있는 아이부터 일해본 적이 없는 아이까지 모두가 다 싫어했다. 괴로워했고 자기들끼리 그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술 먹고 하소연하고 그랬다. 그 사람과 같은 프로젝트로 배정받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같이 일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같이 일할 생각에 괴로운.. 그런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리 팀의 막내들(1~3년 차)은 왜 이렇게 힘들다고 하는 걸까?
그리고는 마침내 깨달았다. 오은영 박사가 이야기했던 그 이유와 같았다. '팀 내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었다.
팀 내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게 무슨 말인고 하니, 금쪽이가 살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우리 팀 막내들은 절대다수의 팀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이 부장님을 미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다른 부장님이었다면 저런 상황에서 그 사람과 일하는 것이 싫었을까? 아니었다. 모든 동일한 조건을 두고 사람만 바꿨을 때 (예: "A 프로젝트에는 M 부장님이 아니라 E 부장님이 있다"라고 하면) 후배는 좋다고 갔을 것이다. 다른 부장님이었다면 '야근도 없어요'라고, '근태도 뭐라 안 하세요', '휴가도 마음껏 갈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최고의 프로젝트라고 이 후배들의 만족도가 너무 높다고 소문이 자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이 부장님의 외로운 외침과 달리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닿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모든 죄는 우리들에게 있었다.
우리가 후배들 앞에서 이 부장님에 대해 나쁘게 말했다. 우리가 이 부장님 하고 일하게 되는 후배들을 안쓰러워했다. 그 후배들은 모르는, 이해하지 못할 위로를 해줬다 (예: 대리님이 고생 많이 하겠네요...). 그래서 후배들은 경험하지도 않고 괴로워했다. 사실은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안 괜찮아지고 괴로워져 버렸다. 절대다수였던 우리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부장님과 메신저로 1시간 이야기한 날, 점심시간에 팀장님에게 "이 부장님과 1시간 동안 메신저로 이야기했어요"라고 발랄하게 이야기했다. 그 때 팀장님은 "이 부장님이 뭐라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무슨 이야기를 하셨나요?"라는 말 대신.... "바쁘다고 하세요"라고 하셨다.
우리 팀의 균형은 여기서부터 무너진 것이었다. 이 부장님 뿐만 아니라 많은 부장님들이 팀장님의 감정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다. 팀장님의 부정적인 코멘트가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람들을 멀리하게 했고, 그 대상에 들지 않기 위해 우리끼리 뭉쳤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가오면 우리는 밀어내고, 선입견에 갇혀서 그들를 무시했다.
팀에 왕따라니. 이간질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걸 깨닫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약 1년).
이 깨달음을 얻자마자 나는 내 모든 대화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후배들에게 가감 없이 너무 쉽게 이야기한 것이 있었나, 너무 편중되게 이야기했던 점이 있었나, 누구를 험담하는 상황에 그들을 공범으로 만들진 않았나 등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부장님에 대해서 나는 칭찬 1%와 험담 99%를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깨달음은 그 부장님에 대한 칭찬 99%와 험담 1%를 하면서 일했던 대리의 서러움을 듣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이 부장님과 일하는 게 본인은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힘들지 않냐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며, 동정받는 그 상황이 힘들었다고 했다. 같이 어울린다고 불려 가서 잔소리 듣기도 했고, 싸잡아서 같이 적이 되어버린 적도 있다고 했었다. 자신이 이 부장님을 좋아해도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 괴로웠노라 했다. 그 상황을 목격한 다른 부장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는 그 대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우리는 이 후배들이 우리가 겪은 고통을 겪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에 먼저 나서서 이 문제를 키워버렸다. 그들이 경험하게 하고 그들이 괜찮으면 넘어가고, 괴로워하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면 되는 것을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힘든 삶은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여러 모험을 사전에 막는 것과 비슷한 행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경험하게 하고 쓰러지면 그때 다독여줬어야 했는데, 우리는 이들이 무엇도 경험하기 전에 두려워하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외부에 괴물이 있다고 거짓말한 어른들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이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는 확실하게 했다. 상위 직책자에게 내가 저질렀던 잘못, 그렇게 우리가 후배에게 주었던 고통, 그리고 그 부장에게 주었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팀장도 그 위의 직책자(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도 모두 다 같이 한 편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면서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해결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분석이라 내가 제대로 보고 이야기하고 있는건지도 사실 자신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이 부장님에게 이래서는 안 되었다. 그의 좋은 모습, 좋은 면을 끌어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던 시간에, 같은 편이면서 그에게 설 자리를 주지 않은 우리는 정말 나빴다. 다시는 PM을 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후배를 육성하지 않겠다고 메신저로 이야기하는 부장님을 보면서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우리는 이 부장님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너무 오랫동안 외면했다.
어느 미래에 내가 누군가들에게 이런 존재가 될까 봐 두렵다. 나와 일해보지도 않고 나를 피하고, 나와 일하게 되면 그 사실에 괴로워할까 봐 너무 두렵다. 누구는 자업자득이라고 하겠지만, 변할 기회와 새로운 만남까지 막을 이유가 되는 건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인 것 같다. 그래도 같은 팀이라면, 같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봐야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느 미래에 내가 누군가들에게 이런 존재가 될까 봐 두렵다.
2021.12.0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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