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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명절 인사겸 해서 같이 일했던 업체 개발자 분과 이야기를 했다. 짧게 나눈 대화였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지고 그 대화가 '법'까지 넘어갔다. 그 개발자 분이 법무팀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분들하고도 이야기할 일은 없다고 하시면서 "변호사는 평생 안 만나는 게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셨다. 나는 "소송은 나쁘죠"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변호사를 만나는 일은 나쁜 일이 있어야 만난다고 생각한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칭찬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일하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기준으로, '상도의'라는 이유로 많은 의사결정을 내리곤 한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라면 어떤 기준으로 생각하든 크게 상관없지만 회사 일은 그렇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 '근로계약서'를 읽어보세요.

 

종종 자기 권리가 뭔지, 회사의 권리가 뭔지 모르고 일하는 사람들을 본다. 회사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를 읽지도 않고 사인했다는 사람도 많이 봤다. 내가 입사했을 때 우리는 계약 연봉에 매주 초과근무 시간이 10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주변에 그걸 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고는 일주일에 2시간 더 일했다고 보상을 해달라고 싸웠었다. '우리는 주 10시간 초과근무에 동의해서 의미 없어요'라고 내가 말하면 다들 '그런 게 있었어??'라고 되물었다. 

 

회사의 계약서에는 웬만해선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내용은 없다. 불법을 서면으로 남길 만큼 어리석은 회사는 없다. 다만, 근로계약서는 어디까지나 회사에 유리한 근로 조항들이 적혀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내용에 동의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서 어떻게 설계했는지, 근로자로서 나의 어떤 행동이 회사에 유리하게 되어있는 건지 등 말이다. 물론 이걸 읽는다고 해서 내가 사인을 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진 못한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 다 읽지도 않고 사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언제나 이길 수 없는 싸움은 걸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내 권리가 있다면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2. '근로기준법'을 읽어보세요.

 

회사의 근로계약서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쓰여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근로기준법이 쓰여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한 번 마음먹고 정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에서 최소한으로 나에게 보장하라고 하는 내용들이 무엇인지, 회사에서 추가로 더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회사가 시키는 걸 개겨서 되는 일인지 아닌지를 가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표적인 예로, 연차 휴가를 다 쓰지 못하면 돈으로 달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는 매해 받는 연차 중 10일은 나라에서 돈으로 주지 못하게 해 놓은 옵션이다. 얼핏 들으면 너무 억울한 조항일 수 있으나, 정확히는 회사에 '돈으로 퉁칠 생각하지 말고 휴가를 보내줘라'라고 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휴가 10일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 '나 일해야 하니 돈 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보장한 내 휴가 10일이니 난 휴가를 갈 거야!'가 되는 것이 맞다. (물론,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있음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3. '사규'를 읽어보세요.

 

나도 사규는 다 정독하지 못했다. 워낙 뭐가 많기도 하고, 필요가 없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나는 우리 회사 다른 직원들보다 사규를 더 잘 아는 편이다. 남의 일 때문에 들여다보기도 했었고, 다른 뉴스를 보고 들여다보기도 했어서 그런 것 같다. 대표적인 것들이 '우리 회사는 겸업(부업)이 가능한가?'라든지 '성희롱이 발생한 경우 어떻게 처리가 되고 징계가 있는지?' 이런 것들이다.

 

사규를 알아야 하는 경우는, 한 명의 개인이 행하는 데에 있어서 나라의 법으로는 문제가 없는 일들이지만 그 회사에 속한 직원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회사는 겸업의 경우 현재 업무와 별개이고, 업무 시간에 병행하지 않는 경우면 대체로 오케이 해주는 편이다. 일부 겸업의 경우 (예 : 외부 강의, 임대업) 같은 경우 회사에 알리면 되는 수준이다. 물론 외부 강의는 금액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이 사규를 알면 내가 회사에서 징계를 받거나 잘리는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가 있다. "아, 그런 사규가 있는 줄 몰랐어요"는 절대 합당한 사유가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역으로 그 사규를 들고 나를 상대방으로부터 지킬 수도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했는데 그게 회사에서 알면 내가 위험한 일인 경우 나는 사규를 들이밀며 방어할 수가 있다. 그 외에 성희롱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사원 시절에 애매한 행동이나 말이 다가오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그거 성희롱으로 누가 신고하면 감봉당하세요. 저니까 좋게 들어드릴게요. 깔깔깔"라고 대처한 거였다. 그때 사색이 된 상대방의 표정을 봤다면 사규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감봉의 힘이 센 거였겠지만 ^^)

 

 

4. 내가 속한 업계의 규제를 읽어보세요.

 

내가 속해 있는 업계의 법이나 규제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팀은 기본적으로 금융 IT의 법을 대체로 알고 있다. 보안을 위해 지켜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외주업체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등 말이다. 사실 고객이 있는 경우 외주업체가 법을 위반하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은 드물지만, 가끔은 우리가 모른다는 빌미로 부당한 업무를 지시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럴 때 '외주업체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어요. 저흰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을 모르면 그냥 모르고 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둘 다 다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어디서 뭘 찾아봐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선배에게 묻거나, 기사를 검색해보는 것이다. 금융 IT라면 금융사에 요구하는 보안 규정을 찾아보는 게 빠르다.

 

 

5. 현재 하는 일에 해당되는 법 or 당신 프로젝트의 계약서를 읽어보세요.

 

이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특정 업무를 하면 그 법을 알아야 하고, 다른 업무를 하면 그 법을 알아야 하고, 다 안다고 생각했어도 연관된 법이나 다른 법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일은,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변호사와는 친하게 지내는 게 좋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느 법에 적용을 받는지, 위반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위반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을 변호사와 상의해야 한다. 

 

실제로 내가 변호사에게 물어봤던 질문은 아주 쉬운 것은 "이메일 주소 하나만 받아도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해야 하나요?"였고, 복잡한 것은 끝도 없는 복잡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질문을 변호사는 여러 단계의 해석과 가능성을 다 열거해서 답변을 주셨었다. 이때 사내에 변호사가 있다는 게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고객사의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면, 서비스나 비즈니스 관련 법무 검토는 고객이 진행한다. 그걸 SI회사에 의뢰하는 일은 매우 적다.

 

SI회사에서 일을 한다면, 현재 하는 일에 해당되는 법 보다는 '계약서'가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계약을 했는지, 우리가 이행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말이다. 이런 걸 모르고 일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위에서도 '아래'사람들은 계약서의 내용을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난 강하게 반대한다. 모두가 계약서를 알아야 한다. 어떤 계약을 했는지, 어디까지의 책임이 요구되는지, 어느 일이 누구의 역할인지 등 말이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SI회사의 실무자들이 호구가 되고, 계약에도 없는 일을 해주고, 윗사람이 왜 저 난리를 치는지 이해 못 하고 일하게 되는 것이다.

 

SI 프로젝트를 들어가게 된다면, '제안서' + '계약서' + 'SOW'를 보게 해달라고 하는 게 맞다. 이 중에 계약서는 아마 요청해도 안 보여 줄 확률이 높을 거고, SOW만 보면 된다. 계약서의 첨부 문서로 SOW가 들어갈 일이 많으니, 계약서보다 SOW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이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

 

그리고 SI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하도급법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읽어보면 갑질의 선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있다. 갑이 그걸 안 지킨다고 해서 그걸 고객 앞에 대놓고 말을 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지만, 합리적인 갑인지 아닌지 알 수 있기도 하고 돌려서 협박하기 좋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열악하게 일하는 게(열악하게 일하고 있다면) 누구 잘못인지 알 수 있는 훌륭한 판단 척도가 되기도 한다. 누굴 책임인지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니까 ^^


이 중에 하나라도 숙지하고 일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감히 예상컨대 사원~대리라면 하나도 모르고 일할 확률이 높다. '이런 거 몰랐어요'하면서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시키는 일만 했다고 할 확률이 높다.

 

나도 근로기준법을 처음으로 정독한 게 사원 3년 차였다. 휴가를 내지 못하는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도 억울해서 울면서 읽었었다. 그리고는 회사는 무엇하나 어기지 않고 나에게 일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회사에서 나에게 보냈던 메일, 내가 동의했던 동의서들 이 모든 것들이 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그날 알았다. 그리고는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면 싸우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판을 만들어놓으리라 결심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몇 년 전에 그 한 판을 완벽하게 짜 놓은 적은 있었다. 아마 싸우게 되었다면 내가 이겼을 것이다. (근데 그 싸움의 시작에 수반되는 것이 '퇴사'였기 때문에 싸우지 못했다 ^^;)


법, 규제... 뭐 이런 건 다 되게 졸리고 지루하고 말도 어렵다. 솔직히 읽는다고 해서 다 이해도 안 가는 게 이런 규제다. 외우지도 못한다. (난 외우는걸 매우 못한다). 하지만, 읽었을 때 하나라도 깨닫는다면, 하나라도 기억을 한다면 그 하나가 미래의 무기가 될 수가 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읽는 거라는 생각으로 시간이 되면 읽어보도록 하자. 이건 정말 개인이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한다. 회사는 죽어도 자기 직원에게 법 교육을 시켜주지 않는다. 만약 시켜준다면 윤리교육이나 하도급법뿐이다. (뇌물/접대받지 마라, 직원에게 폭언/욕설하지 마라.. 뭐 이런 거)

 

모두가 자기 회사 생활의 주인이 되기를...! 법과 친하게 지내요~!

 

2022.09.11 23:24

2022.09.15 22: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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