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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사람이든, 동기들이든, 친구들이든 상대가 누가 되었든 둘러앉아서 대화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종종 누군가 '나 요즘 일이 힘들어'라고 말하면 '나도 힘들어'하고 맞장구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럴 때가 있다. 가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같이 그 흐름을 타버리는 건데,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오늘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힘들다.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특히나 회사에서는 우리 모두 다 힘들다. 남이 보기에 하루 종일 놀면서 일 안 하는 사람도 막상 물어보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힘들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왜 힘들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하면 그건 의미가 없다. 다들 힘든 이유가 저마다 다르기에, 마음가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우리는 왜 힘들다고 말하는 걸까?'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왜 힘들다고 말하는 걸까?'

 

나도 힘들다고 말할 때가 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는, 그냥 내가 일이 많고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누가 내 일을 덜어주리라 기대하지도 않고, 누군가가 내 일에서 막힌 부분을 해결해줄 거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힘들다고 말한다. '힘들겠다'라는 말, '잘하고 있어'라는 말, '힘 내,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 주위에는 '힘들다'라고 말하면 달달한 음식 사주거나, 커피 한 잔 사주면서 이야기 들어주는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그 고비를 어떻게든 넘기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 '야, 나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난다. '너도 힘들지 나도 힘들어', '우리 모두 힘들어' 와는 조금 다른 힘들어가 나타나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너보다 내가 더 힘들어'라고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진이 빠지고, 실망스럽고, 위로가 되기는커녕 속상해진다. 마치 나의 힘듦이 가치가 없어지는 기분이랄까. 나의 힘듦은 명함도 내밀면 안 된다는 그런 기분이랄까. 상대방의 힘듦을 무시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상대방은 모르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대화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뭘까?

 

'누군가의 힘듦'을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덜 힘듦'으로 바꾸려는 누군가의 잘못된 화법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아, 난 저 사람보다 낫구나! 힘들지 않아!'라고 이루어지길 바라는 그런 화법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야, 너의 힘듦은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그러니 불평하지 마. 못 들어줘' 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든 저러든 중요한 것은 대화의 흐름은 절대 그렇게 이루어져선 안된다. 똑같이 너의 힘듦을 듣고 나의 힘듦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야, 너도 힘들지 나도 힘들어'와 '너도 힘들구나 나도 힘들게 지내는데'는 다르다.

 

누군가가 먼저 자기가 힘들다고 말하면 나'도' 지금 힘들어도 일단은 그 이야기를 미뤄두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나쁜 놈이 누군지, 문제가 무엇인지, 어느 장단을 맞춰서 탬버린을 흔들어줘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해결 방법을 원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머리를 굴려주고, 그런 게 아니라 단순 하소연이라면 장단만 맞춰주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너무했네.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요? 뭐라 해야지! 내가 대신 뭐라 해줄까요?"

"와 그거 되게 머리 아프겠다. 그건 어떻게 해야하는거래요? 누가 알려준 게 있어요? 팀장은 뭐하고?"

"그걸 혼자서 해요? 대단하다. 시킨 사람도 대단하고 그걸 혼자 하는 (대리님)도 대단하고!"

"지금 그래서 어디서 막혔어요? 제가 뭐 도와줄거 있어요? 자료 구해줘요? 뭐 알아봐줄까요?"

 

 

만약 위로를 해주거나 달래주고 싶다면 상대적인 비교 대신 다른 방법을 취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래도 1주일 후면 다 끝나니까 1주일만 어떻게든 하면 되겠네요. 그 뒤에 휴가 가버려요!"

"그 정도로 고생하면 연말에 보상해주겠죠! 고과 평가는 걱정 없겠다!"

"아무도 안 해본 거 하느라 힘들긴 해도 그거 하면 우리 회사에서 전문가 되겠네요. 에이스!"

 

 

그 외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사실 처음에 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 상대방은 계속 힘든 이야기 하면서 감정이 격해지거나 엄청 다운되어가고 있을 거고 내가 눈치 없이 그거 갖고 분위기를 밝게 하자니 공감을 못해주는 것 같기도 할 테니 말이다. 처음에는 질문형으로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고 (같이 욕하면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최대한 그 힘듦의 의미를 찾아줘야 한다. (절대 그 결론이 '때려쳐!'가 되어선 안된다.) 이런 대화를 몇 번 하다 보면,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몇 번 되새기다 보면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을지 조금씩 감이 잡히게 된다. 회사에선 이런 대화를 연습하고 향상 시킬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우리 다 힘드니까 ^^


며칠 전의 일이다. 우리 팀 모두가 싫어하는 고객사가 있는데 우리 팀 PM에게 연락해서 그 고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그 PM의 고통과 감정을 잘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아 그 고객사 팀장 진짜 너무 싫어요"라고 말했는데 그 PM이 나에게 한 말이 나에게 다소 충격으로 돌아왔다.

 

"저보다 싫진 않을걸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아 그럼요ㅎㅎ 어찌 제가 PM님만큼 그 팀장을 싫어하겠어요.ㅎㅎ"하며 하하 웃어넘겼는데 그 PM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느낀 것은 '아, 저 프로젝트는 다 같이 가라앉고 있겠구나...'였다.


'힘들어? 나보단 힘들지 않을 걸.'

 

이건 최악의 화법이다. 잊지 말자.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다. 팀장이 나를 쳐다보고 지나간 눈빛 하나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의 고통을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친화력이 좋아서 고객과 사이가 좋은 PM은 내성적인 성향의 PM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나였으면 안 힘들었을 일'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이렇게 저렇게 하면 나았을 텐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닐 때가 많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못하는 일들이 많으니 말이다.

 

나도 전화기 앞에서 바짝 얼어서 고객과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모든 자료를 다 책상 앞에 준비해야 전화를 걸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자리에서 전화를 잘 못 걸어서 화장실이나 비상계단에서 통화하는 경우도 많다. 전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고통이다. (놀랍죠? 반년 동안 전화로 욕을 줄기차게 먹어보면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

 

그래서 누군가가 힘들다고 말을 하면 그걸 나에게 견줘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지금 그 순간에 힘들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가끔은 이유를 말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이유를 말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걸 알아내는 것이 그 사람을 마주한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냥 마주 앉아서 '요즘 많이 힘든가 봐요.'라고 알아주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빈말이라도 '내가 도와줄 게 있을까요?' 하거나 차마 그 말이 무서워서 못하겠으면 '힘들면 언제든 말해요. 제가 커피는 얼마든지 사드릴게요' 해도 된다.

 

중요한 건 이런 것 같다.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그 감정의 늪에 더 빠지지 않게 하는 것. 그 순간에서 꺼내서 같이 바람을 쐬고, 일도 잊고, 웃기도 하면 되는 것 같다.

 

혹시나 서로의 불행을 견주는 대화를 누군가가 시작하려고 한다면 슬쩍 막아보자. 서로 불행을 견줄 때 "와, 우리 진짜 힘들게 일하고 있네!? 저녁에 술이라도 한잔 할까!?"라고 대화를 옮겨보자. 대처가 너무 늦어버리면 우리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얻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고통이 가져올 수많은 불행을 막아보자.

 

우리는 모두 힘들지만, 우리는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고 그 기회는 매 순간에 있다. 난 그렇게 믿는다.

 

2022.06.3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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