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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이라는 걸 하나도 모르던 인턴 때의 이야기다.

 

내 멘토도 아닌 내 동기의 멘토가 회사생활에 필요한 조언을 해준다면서 들려준 이야기가 있었다. 인턴이었던 당시에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몰랐고, 이해했다고 생각했어도 제대로 할 줄 몰랐었다. 심지어 내 멘토는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그 사람을 비웃으며 말도 안 되는 조언을 했다고 무시했었다. 하지만 그 회사 인턴을 하고, 그 회사에 입사해서 허망하게 적응에 실패해버린 후 퇴사하고 나서야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당시 내 멘토도 내가 정규직 입사했을 때 퇴사해버린 후였다. 말 다했지 뭐...)

 

지금 슈 과장도 인턴이 들어오거나 후배가 들어오면 꼭 해주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조언이다. 후배들도 내가 그랬듯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높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이야기를 하곤 한다. '라떼'라느니 '꼰대'라느니 이런 소릴 뒤에서 했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외칠 것이다.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자기만의 브랜딩을 해라'


자기만의 브랜딩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 난해할지도 모르지만 사회생활을 처음 한다거나, 한번 실패 후에 새로운 회사에서 새시작을 희망한다면 오늘의 포스팅을 꼼꼼히 읽어보길 바란다.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만의 브랜딩은 쉽게 말하면 '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브랜딩같이 나의 가치를 올린다던지 하는 그런 거창한 게 아니다. 자기 PR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알리는 일을 말한다.

 

입사를 하거나, 회사에 처음 들어간다면 기본적으로 백지상태로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이건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마찬가지다. 여기서 어렵게 가는 방법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거에 맞추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보다 쉬운 방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니, 슈 과장이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해주겠다. 우선 슈 과장의 실수부터 시작해보겠다. 첫 번째 직장에서 슈 과장은 자기 브랜딩이랍시고 고른 게 '잘 웃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잘 웃습니다 ^^'라는 이미지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파릇파릇한 신입이 가져야 할 어떤 덕목 같았고 사람들이 그러면 날 좋아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잘 웃는다는 것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상대방에게도 어떠한 힌트가 되지 않았다. 거기에 더 악화된 건,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나날이 시들어가는 신입이었고 화장실에서, 자리에서 눈물 뚝뚝 흘리는 마음 약한 신입사원이었다는 것이었다. '잘 웃는다면서?'

 

멘토의 조언을 잘못 실행에 옮긴 예였다. 물론 그거 말고도 강조한 포인트가 있었지만, 모든 것들이 '남들이 나를 좋아할 만한 것'들을 앞세워서 이야기했었다. 마치 난 '착하고, 잘 웃어요, 긍정적이고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요'라고 주구장창 떠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모든 특징을 들었을 때 당신은 '슈르딩씨가 그런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오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신입사원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나를 브랜딩 하는 데에 실패해버린 것이다.

 

그 실수를 뼈저리게 깨닫고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갔을 때, 제대로 하겠노라 다짐했었다. 중고 신입이었던 슈 과장은 다른 신입들이 나의 과거처럼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을 때, 전혀 다른 방법을 골랐다.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널리 알리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게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는 많은 일들을 나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통과하게 만들어버렸다.

 

슈 과장이 브랜딩 한 것은 딱 세 가지였다. 왜 세가지였냐고 묻는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그때 멘토의 조언이 세 개였다. 그리고 세 개를 잘하면 나머지는 그냥 슈 과장이라는 사람의 특징으로 계속 추가가 될 뿐이다. 그 이상을 주장하면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니 그건 주의하자.

 

슈 과장의 브랜딩 #1. 전 술과 회식을 싫어합니다.

첫 번째 직장에 있을 때는 야근이거나 회식이었다. 회식은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주는 대로 다 마셔야 했다. 당연히 막내니까 거절 못하고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잔을 꺾으면 혼났고, 제일 늦게 마시면 벌주를 마셨고, 건배제의라는 걸 징하게 시켰다. 건배제의도 말이 꼬이면 한잔 마시고 또 해야 했다. 놀랍게도 그걸 다 했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그 대가는 몸이 독하게 치렀다. 떨어지지 않는 기침과 몸살로 앓아누워 2주를 꼼짝 않고 아팠었다. 그렇게 그거 다 맞춰주고 남은 게 무엇이냐며 스스로 참 후회도 많이 했다.

 

그러고 두 번째 직장을 갔을 때, 동일한 상황이 오면 상큼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제가 피곤해서요, 회식은 참석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술을 안 마셔서요. 사이다로 짠해드리겠습니다.' 신입이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걸 듣는 선배는 기가 막혔을 거다. 팀장님이 쿨하게 "그래! 집에 가서 쉬어!"라고 대답해주시고 "술은 자유야!"라고 하면서 뜻을 받아주셨기에 가능했지만 당시 그 당돌함을 시전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옆에 동기도, 후배도 싫은 회식을 갔고, 싫은 술을 마셨다. 그런 나를 보면서 팀 문화가 바뀌어갔다. 회식을 거절하기도 했고, 술자리가 줄어들기도 했다. 비공식적인 술자리를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다.

 

 

슈 과장의 브랜딩 #2. 전 야근과 밤샘은 해도 이른 출근은 못합니다.

야근이 많은 일을 참 오랫동안 했다. 야근이 당연한 분위기이기도 했고 야근 안 하면 도저히 납기를 맞출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집에 가고 싶어도 당연히 일이 많아서 가겠다고 말도 못 하는 상황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매일 이렇게 일하면 사람이 쓰러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걸 방지하고자 보통 주말에는 선택권이 오기 마련이다. '내일(주말)은 몇 시에 나올래?'

 

항상 늦은 출근을 선택했다. 야근은 할 수 있지만 일어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새벽형 인간이 있든 슈 과장은 올빼미였기에 아침 9시에 정상적으로 가는 것은 몸살난 몸을 끌고 출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사실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방식을 얻어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주말에 얼마나 늦잠을 자는지 수다도 많이 떨었고, 야근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개의치 않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찍 나온 사람을 일찍 퇴근시키고 일을 받아서 늦게 작업하기도 했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일하기에 최적의 스케줄이 무엇인지 상호 간에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상대방 때문에 일찍 나올 수 없듯, 일찍 와서 일한 사람이 나 때문에 늦게까지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지켜줬다.

 

슈 과장이 아침에 일찍 출근한 기억은 손에 꼽는다. 빨라도 8시 반?(원래 9시 출근이다). 반대로 야근은 밤을 지새우고 첫차를 타고 집에 간 적도 많다. ^^

 

 

슈 과장의 브랜딩 #3. 제 연봉에 포함되어 있는 일만 합니다.

이건 슈 과장을 새로 만나는 사람이면 다 새로워하는 말이다. 슈 과장 외에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들어본 적도 없다. 덕분에 FM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빡빡하다/유연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욕으로 들린 적은 없다. 위의 #1과 #2보다도 '난 이런 사람이야'를 여실히 들어내는 문구라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멘트 중 하나다.

 

이런 말을 언제 써?라고 묻는다면 사실 이 모든 것은 첫 번째 직장의 안 좋은 기억에서 기인한다. 당시에 여자가 적은 조직에서 일했고 다들 조심성이 상당히 적었던 때였다.(정말!?) 그래서 신입이었던 여직원 슈르딩 사원은 상당히 고생했었다. 팀장님과의 회식에서는 팀장님 옆자리에서 치마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서 팀장님의 빈 술잔을 따라드려야 했다. 다리가 저려도 편하게 앉지 못하고 자리를 비우고 싶어도 바꾸고 싶어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기생인 양 웃고 맞장구치고 술을 따랐다. 회사에서는 윗사람 보고가 있거나 미팅이 있으면 그분의 앞에는 내가 앉도록 배치가 되었었다. '슈르딩씨 같은 여직원이 있어야 보고도 원활하게 지나가요~"라는 말을 들으며 슈르딩 사원은 긴장상태로 앉아있어야 했다. 보고가 원활한지 아닌지는 신입으로선 알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엔 그 모든 상황이 성차별이든 불합리함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너무 어렸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시키는 대로 했었다.

 

그만두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왜 그 이야기들을 들어가면 일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내 역할엔 그런 일들까지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직원으로서 일을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했고, 억울했고, 분했다. 그래서 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들어와서 누군가가 그런 뉘앙스로 "팀장님 옆자리에 앉아야지~"라든지, "여직원이 있어야 분위기가 살지~"라든지의 이야기를 하면 "그건 성희롱인데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민감한 단어를 굳이 꺼내서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다. 대신 웃으면서 "제 적은 연봉에는 그게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라고 대답한다. 엄청나게 가시가 돋힌 것 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들으면 두 번 말할 일이 없어지는 마법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연봉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일은 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얘는 자기 마음대로 회사를 다니네?' 하며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공식 회식은 무조건 참석한다. 필요한 술은 다 받고 다 마신다. 자리도 봐가면서 눕는다는 이야기다. 간단하다. 내 연봉에 포함되어 있으면 한다. 포함되지 않은 건 안 한다.

 

예전에 했던 미스김 드라마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칼 같고 정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래도 일이 많다. 어려서, 후배라서, 일을 잘해서(?), 여자라서, 무슨 이유든 일은 이유가 없어도 날아온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거절하기에 명분이 부족할 정도다. ^^


중요한 것은 이거다. 처음에 입사하자마자 나를 알릴 때 '내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선언하면 처음 만났기 때문에 당신의 성향이라고 생각하고 맞춰준다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가 이해하기 다소 어렵다면 음식 예시를 들어보겠다. 당신이 콩국수를 못 먹는다고 치자.(슈 과장은 실제로 콩국수를 못 먹는다) 근데 신입으로 입사해서 다들 콩국수 먹자고 하는데 차마 말을 못 하고 같이 가서 억지로 먹고 왔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냈는데 서로 조금 편해진 다음에 "제가 사실 콩국수를 못 먹어요"라고 말하면 "어머 그런데도 우리가 먹자고 해서 같이 먹은 거야? 감동이다~"라고 말해줄 것 같다면 오산이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다른 거 먹어도 되는데"라고 할 것이다. 만약 그 사람들이 배려가 없다면 그걸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콩국수를 먹고 싶으면 당신을 데리고 갈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처음부터 콩국수를 못 먹는다고 말했다면 낯섦 때문이라도 "그래도 드세요"라고 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아 슈르딩씨는 콩국수 못 먹는다고 했었죠?"라고 하며 피해줄 것이다. 이 둘은 미묘하지만 큰 차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모든 걸 다 맞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게 사람이다. 당신이 회식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고, 야근도 좋아하고, 새벽형 인간이고, 온갖 잡다한 일을 해도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점들이 갈등이 되어 회사 생활이 힘들 것 같다면 미리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회사도 사람과 사람이 지내는 곳이다. 당신이 후배든 선배든 맞춰줄 수 있는 건 맞춰줄 수 있는 게 사람 사는 동네의 이치다. 당신이 회사의 사규에 어긋나는 자기 브랜딩을 한다면 조용히 HR팀에게 끌려가서 까이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이야기하자. 얻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이야기를 해서 당신이 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받아지지 않아서 너무 힘들다면 당신은 어차피 회사 생활이 힘들 것이다.

 

자기 브랜딩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꼭 이해하고 맞춰줬으면 하는 나의 세 가지 성향'이다. 회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의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중이라면 내가 그렇게 이야기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슈 과장의 연애에는 그게 '난 지각을 자주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워요. 10분 지각은 봐주세요...'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의 관계가 정립되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되어있는지 한번 돌아보자. 혹시나 나쁜 모습은 아닌지, 나와 괴리감이 있는 모습은 아닌지, 오해를 받고 있진 않은지 등 말이다.

 

아무리 월급 받고 다니는 회사여도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자기 브랜딩을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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