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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온라인 미팅, 화상 회의, 디지털, 언택트 등 엄청나게 트렌디한 단어들을 사용하는 걸 본다. 하지만 아무리 신나게 이런 걸 외쳐도 이런 미팅이 가능한 경우는 사실 적다. 동등한 위치이거나, 내가 갑인 경우다.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하면 을은 따르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이런 게 아니라면 양쪽 모두의 간절함에서 발생할 수는 있다. "우리가 화상 회의가 아니면 절대 미팅을 못할 것 같은 시국이네요. 화상 회의로 할까요?"

 

오늘은 위의 상황이 아닌 경우, 갑을관계의 미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다 읽어보고 "우린 이러지 않아. 이런 거 전혀 중요하지 않아."라고 잊어버린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주의하길 바란다. 미팅은 양쪽이 만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그러지 않아도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그러니 배경지식 정도로 알아두도록 하자.


서론을 다시 시작하겠다. '회사간의 미팅'이라는 게 무엇일까? 회사와 회사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게 회사 내 부서 간 미팅과 다른 게 무엇일까? 명함 소지 여부? 회의록 유무? 팀 내 팀원 간 미팅과는 다른 게 무엇일까? 이해관계? 무엇이 다르길래 그렇게 중요한 걸까?

 

회사 간 미팅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회사의 얼굴로 가는 미팅이다. 내가 아무리 일개 부서의 슈 과장이어도, 그들은 아무리 슈 과장을 보고 이야기하더라도, 나의 태도와 대답 하나만으로도 나의 회사를 평가할 수 있다. "아, 그 회사? 저번에 미팅해봤는데 아는 것도 없고 별로더라고요." 이 문장에서는 회사의 평만 있다. 어디에도 내 이름이 오르지 않는다. 내가 회사를 대표해서 가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복장, 태도, 자세 등 모든 점에서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회사가 찢어진 청바지를 허용한다고 해서 상대 회사를 만나는 자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가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내가 을의 입장이라면 말이다. 예의가 아니다. 

 

오늘은 복장을 논하는 포스팅이 아니니 복장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하겠다. 중요한 것은 복장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는 장소'다. '장소가 뭐가 중요하겠냐' 생각할 수 있다. 복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미팅의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미팅 참석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 맞다. 중요하다. 하지만 장소가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어디서 만나느냐가 누가 '갑'인지를 나타낸다.

 

쉽게 설명해보겠다. 먼저 일반적인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CASE 1 : 신입사원 면접

당신이 신입으로서 직장을 알아볼 때 면접을 봤을 것이다.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나는가? 당신이 지원하고 그 회사 건물로 가서 면접을 봤을 것이다. 그 어떤 면접관도 당신 집으로 찾아가거나 개별적으로 전화해서 당신의 일정을 확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통보받은 일정에 맞춰서 옷을 잘 차려입고 그들이 정한 장소로 가서 면접을 봤을 것이다. 왜였을까? 때마침 그 회사에 적합한 장소가 있어서? 만나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게 더 효율적이라서?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거다. '당신이 더 아쉬운 사람이었다.'

 

당신은 그럼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다르게 할 수도 있나요?' 대답은 '물론이다.'

해외에서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겠다고 많은 회사들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이렇게 했다. 모집 공고를 내고, 홍보를 하고, 장소를 해외에 섭외하고, 면접을 해외에서 진행했다. 읽다가 금방 지나쳤다면 다시 보도록 하자. '면접을 해외에서 진행했다.' 그렇다. '회사가 더 아쉬운 쪽'이었고 들은 해외로 가는 비행기편을 끊어서 직접 면접을 보러 갔다.

 

 

CASE 2 : 은행 업무 처리

이제 일상생활의 경우를 보자. 당신이 은행에서 업무를 처리해야한다. 당신이 만약 인터넷뱅킹과 스마트 뱅킹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치자. 아니면 당신이 반드시 은행 지점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평일에 9시에 열고 5시면 냉정하게 셔터를 내려버리는 영업점에 가기 위해서 점심시간을 쪼개거나 업무 시간에 자리를 비우고 다녀와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고 말이다. 왜 당신이 가고 있는 걸까? 규제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더 아쉬운 사람이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내가 고객인데!?'라고 하지만 영업점에 가면 당신이 앉는 창구는 어디인가? 아마 일반 창구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지점장이 나와서 반갑게 악수를 해주거나 전담 직원이 있어서 당신을 마중 나오진 않을 것이다. 그냥 '일반 고객'인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당신이 또 다시 물을 것이다. '돈이 없는데 다 그런 거 아닌가요!?" 대답은 '아니다.'

은행에서 제일 귀한 고객이 누구인지 혹시 아는가? 부자? 부자 좋다. 수신고를 가득 채워주는 고객님. 현금이 많아서 우리 지점에 다 예치해주면 너무나도 좋다. 하지만 요즘 예금 금리를 보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시입출금 0.2%, 정기예금 1.8%... 은행은 당신의 돈을 예치하는 데에 간절하지가 않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곳이 대출이다. 예대마진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컨셉인데, 당신이 맡긴 돈을 다른 고객에게 빌려주면서 당신에 주는 이자 보다 더 높은 대출이자를 매기는 것이다. 거기서 얻는 차익이 은행의 수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이 좋아하는 고객은 대출을 하러 온 고객이다. '안정적인 고객(i.e., 상환 능력이 좋은 고객)이 거액을 대출한다?' 대환영이다.

 

은행은 대출을 위해서 고객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예전엔 종이 서류만 들고 찾아갔다면, 전화 통화로 상담을 했다면, 이젠 태블릿 하나 들고 가서 모든 걸 해결해준다. 그 과정에서 계좌도 개설해주고 카드도 만들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고객이다. 그런 고객을 위해서 은행 직원은 영업점을 나와서 어떤 궂은 날씨에도 당신이 원하는 장소로 찾아간다. 그리고 언제나 말끔한 차림으로, 정장에 구두를 신고 그들은 방긋 웃으며 당신을 대할 것이다. '그가 간절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회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갑회사와 을회사가 미팅을 하기로 했다. 누가 누구를 찾아갈까? 당연히 을회사다. 세상에 그 어떤 갑회사도 '제가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상황이 일어났다면 그건 갑회사의 간절함 + 호기심(회사 구경) 일 확률이 높다. 세부적으로 쪼개 보면 다양하게 의사결정이 나기도 하니 한번 보도록 하자.

 

CASE 3 : 갑회사가 미팅을 요청했다. 갑이 4대 시중은행이다.

무조건 갑회사로 가게 되어있다. 묻지도 않는다. 의향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 건물로 오라고 한다. 미팅을 요청하면 을병정무가 그들을 찾아가는 건 당연하다. 을의 회사가 더 좋고 갑의 사무실이 아무리 구려도 갑은 움직이지 않는다. ^^ 더 따질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무조건 무조건이다.(박상철 - 무조건♪)

 

아주 드물게 갑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건 갑이 을의 회사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던가, 을의 회사에서 갑의 담당 직원보다 더 높은 사람이 미팅에 나오는 경우다. 갑은 대리가 담당하는데 을의 사장이 나온단다. 그러면 가끔 가다가 상황이 바뀔 수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안 좋은 상황이다. 을의 사장이 나온다고 하면 갑의 대리는 자기 윗사람을 불러서 응하는 게 맞다. 그럼 당연히 을의 사장이 갑을 찾아가겠지...  고로, 갑은 언제나 자기 회사에서 미팅을 갖는다.

 

CASE 4 : 갑회사가 미팅을 요청했다. 을은 아주 잘난 핀테크 회사다.

요즘 드물게 보는 놀라운 트렌드다. 을의 회사가 오라고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 만나고 싶다고요? 같이 사업할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요? 그럼 오세요 ^^"라는 식이다. 물론 그 정도의 네임밸류를 가진 회사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기존 갑을병정무의 value chain에 들어가지 않은 회사들에서 일어나곤 한다. 예를 들면 뱅크 샐러드, 토스, 카카오, 네이버 등이 그렇다. 대기업은 아닌데, 을인 것 같은 사업구도 같은데. 뭔가 알 수 없는 애매한, 까리한 이유로 그들의 페이스에 말리게 된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아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예시면 대충 느낌이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미팅 장소는 곧 누가 갑이냐를 상징한다. 절대적 갑이냐, 상황적 갑이냐 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절대적 갑인 경우는 사실 찾아간다고 해서 을의 회사에서는 논쟁이 되지 않으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상황적 갑은 다르다. '상황적으로 그들이 갑'이지만 그들에게 모든 '갑질'의 권한을 주어선 안된다. 상황이라는 것은 만들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방문을 할 수는 있어도 두 번을 연속으로 방문하는 일이 생겨선 안된다. 그렇게 만든다는 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쭈욱 우리가 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을 쪽에서 직책이 높은 사람을 미팅에서 불러서 그들이 오게 하는 수가 있더라도 저울을 균형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해? 다 같이 사업해서 잘 되자고 하는 일인데 누가 가면 어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도 일을 잘할 수 있고, 그런 걸 신경 쓰는 게 '라떼'나 '꼰대'가 생각하는 구시대적인 일하기 방식이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회사는 안 그래'라고 생각해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해'라고 하면 끝이다. 그리고 찾아가는 게 회의실 예약도 안 해도 되고, 쥬스 준비도 안 해도 돼서 편해 보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페이스에 말리는 회의를 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홈그라운드에 당신들이 있는가? 호랑이굴에 알아서 걸어 들어가고 있진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연애에도 밀당이 있다. 아낌없이 무제한적 사랑을 주는 부모도 자식에게 조건을 걸기도 한다. 형제자매간에 대가를 요구하면서 일을 해준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런 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은 미팅 장소 자체가 그런 것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 과장도 'C회사 연락해서 미팅을 요청했는데요,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하는데 시간 되시나요.'라는 요청을 듣고 '왜 우리가 가나요?'라고 0.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슈 과장이 구시대적이고 꼰대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괜찮아서 갔다 왔다고 해도 그 보고를 듣고 분노하는 상사를 만날 수도 있다. "'우리'가 왜 가!?"

 

회사 간에 서열을 나누고, 등급을 나누고, 차별을 하자고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팽팽한 줄다리기의 싸움이 있다는 것은 알기를 바란다. 우리가 두 번 세 번 방문을 해야 하는 회사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매번 가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슈 과장도 매일 같이 찾아간 경험도 있었다. (정말 everyday. 2주 동안 그들의 보고서를 만들어주기 위해 간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갔다는 행위가 아니라 내 입장이 어떤 지를 자각하는 것이다.

 

슈 과장이 언제나 인생의 잣대로 삼는 말이 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무슨 일을 할 때든 항상 생각을 한다. '이건 내가 아쉬운 상황인가?' 만약 그렇다면 난 그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난 움직이지 않는다. 나보다 더 아쉬운 사람이 할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 아쉬운 사람이 하게 될 걸 알지만 내가 한가하고 착하니까 내가 해야지'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쉬운 사람이 부탁하면 움직인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결론은 같지만 내가 어떤 입장으로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회사 간의 일에는 이걸 잊지 않도록 하자. 회사 간에 일어나는 일은 단순히 나 한 명 개인의 입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회사의 얼굴이 된다. '회사'가 아쉬운 존재가 된다.


우리는 회사를 욕하며 회사 이미지가 별로라고 한다. 회사 연봉이 낮다고. 대외 인지도가 낮다고 그런다. 나와 무관한 회사만의 잘못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곰곰이 생각해보자.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겸손하게 회사의 고개를 숙이게 하진 않았는지 말이다. 내가 나의 회사를 을의 위치로 병정무의 위치로 내린 건 아니었을까. 나의 선한 의도가 우리 회사를 아쉬운 존재로 만든 건 아닌가.

 

지지 말자. 당신이 지는 순간. 회사가 진다. 회사가 지면, 당신의 일은 두 배 세 배로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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