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오피스라이프 팁은 업종을 떠나서, 회사 생활의 팁을 떠나서 인생의 팁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인생을 논하기에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이것만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해도 부족할만한 것이다. 놀랍게도 회사에 신입이 와도 먼저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모든 조언과 팁들이 이거 하나를 위해서 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숨기기'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문제가 생겼는데 말하지 않고 혼자 끙끙대는 것'이다.
당연히 그 심리를 이해한다. 이런 생각들이 들 수가 있다. '문제가 생겼다. 그게 나로 인해 생긴 문제다. 이걸 말하면 나는 혼날 것이다. 시끄러워질 것이다. 불려 다닐 것이다. 보고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두고두고 이걸로 혼날지도 모른다. 고과도 망할 것이다.' 그러면 놀랍게도 용기가 생기면서 합리화를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해결해보자. 간단하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큰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해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말이다. 내가 부지런하면, 노력하면, 문제가 있는 것을 아니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어줍잖은 믿음.
하지만, 이렇게 정말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단호하게 말하겠다. '문제가 생긴 시점에서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말해도 혼자 해결하게 될 수도 있고, 생각보다 간단해서 말할 필요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판단마저 당신은 할 자격이 없어졌다. 당장 공유해라.'
관련된 이야기들을 해보겠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1. SI 프로젝트에서 이슈 하나를 묻으려 하면 수백 명이 수습하게 될 수가 있다.
당신이 SI를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나간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고객이 돈을 주고 요청한 일을 예산 안에 완수하는 것이다. 그 예산에는 인력, 시간, 경비 이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이때 만약 당신이 전체 수백 명이 같이 일하는 프로젝트의 PL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개발자라고 가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개발자가 하는 일을 PL이 파악하고 있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개발자는 숨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자 PL이 자기 파트에서 어떠한 이슈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해보자. 가끔 작게는 개발자 몇 명이 조금 고생하면 수습하는 정도일 수도 있지만, 크게는 어느 한순간 고객의 기분에 따라 발생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깨달음으로 인해 찾아지기도 한다. 이 스토리에서는 고객의 기분이라고 치자. 고객이 여태까지 협의된 내용에 대해서 갑자기 "아, 이게 아니에요. 원래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은 A였는데 왜 B가 된 거죠!?"라고 말하는 것이다. PL인 나의 기준에서는 분명 그게 A였는데 B가 됐다고 고객이 이슈를 제기한 것이다. 고객이 말하는 것을 지금 하려면 여태 개발했던 내용을 갈아엎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 파트 사람들이 오늘부터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 나와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PL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세 가지가 있다. 1. PM에게 이슈를 올려서 정식으로 해결한다, 2. 고객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내 파트 개발자들에게 개발을 하도록 일을 조정한다, 3. 무시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1번이 정답이어야 하는 상황에서 PL이 2나 3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최악은 3번이다.) 1번을 선택하는 순간 엄청나게 많은 회의와 싸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본인에게 더 쉬운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일이 커져서 곤란하고 싫은 건 PL인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행사의 PM은 물론이고 화낸 고객사의 사람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잘잘못을 떠나서 수행사와 고객사의 목표가 동일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한, 모두가 그런 상황을 괴로워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고통의 원탁에 둘러앉는 순간 다 같이 해결책을 찾게 된다. 개발자가 덜 고생할 방법, 고객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방법 말이다. 다시 말해, 이런 일은 PL이 아무리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일을 잘해도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만약 PL이 2나 3을 선택했다면, 프로젝트의 끝에 가서 결과를 열어보기 시작할 때 그 기한을 (끝내) 맞추지 못하고 오류도 많이 발생하는 개발 결과물을 모두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어떻게 할 거냐고 화내는 고객과 고개를 숙이고 읍소하는 PM과 본인을 보게 된다. 프로젝트 지연은 물론이고 온갖 부서에 지연사유와 catch-up 방안을 제출하는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 개발자들은 마지막까지 개발하느라 힘들어하고 짜증도 늘어난다. 회사에서는 '쟤 때문에 지연됐어. 다신 PL을 시키면 안 되겠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한 거지'라고 뒤에서 욕을 할 것이다. 그것도 두고두고... 그 프로젝트가 거론될 때마다 그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1번을 선택했다면 모두가 같이 한 팀으로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 당장의 편함을 위해 2나 3을 선택해서 혼자의 책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2. 하나의 실수가 중요한 보고서 내용 전체의 신뢰를 잃게 할 수가 있다.
SI는 모르겠고 난 보고서를 쓴다.라고 한다면 이 이야기를 해주겠다. 당신이 만약 정말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치자. 당신이 보고서의 주인일 수도 있고, 보고서를 만드는 걸 지원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주아주 중요한 보고서고 이 보고서를 고객이나 회사의 임원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는 나왔는데, 고칠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보고서에 오타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발견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보고서를 고칠 시간은 없다. 보고하는 사람이 당신이 아닌 경우 보고하는 사람이 내용을 잘못 보고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당신의 선택권은 3가지다. 1. 사실대로 보고서에 잘못된 정보가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한다, 2. 보고하는 사람에게는 말하지만 보고 받는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3. 모른척한다.
이번에도 정답은 1번이다. 그리고 보통 2번을 선택한다. (최악은 3번이다.) 이때 걸리지 않으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고를 받는 사람이 그 잘못된 정보 하나만을 기억하고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그 잘못된 정보가 의사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면 당신은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받게 된다. 심하면 다시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우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한다는 점이다. 실수를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아무리 꼼꼼하게 챙겨도 무언가는 놓치는 상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걸 어떻게 대응하냐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슈 과장도 종종 오타를 내거나 놓치는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다. 심지어 혼자 만들고 혼자 발표하다가 발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단 한 번도 내가 실수하지 않았다고 하거나 실수를 모른척하고 넘어간 적은 없었다. 왜냐면 누군가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 나머지를 다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숫자 하나가 틀렸는데, 보고자가 자기가 맞다고 한다면 보고를 받는 사람은 모든 숫자를 재검토하겠다는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보고를 하러 들어갔을 때 실수를 발견하거나, 실수가 있는 걸 아는 경우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을 했다. 예를 들어 "이 장표의 A라고 적어놓은 부분이 있는데 B가 정확한 내용입니다. 미리 발견하지 못한 점, 수정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감안하고 보고 들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 "뭐야!? 됐어 그만해. 나머지 다 보고 다시 고쳐서 다시 보고해"라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 부분을 감안하고 다들 들어주었고, 심지어 Q&A가 들어와도 다른 내용에서 질의가 있었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없었다. 만약 Q&A에서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찾아냈다면 나는 뒤늦게 실수한 것을 인정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것이다. 보고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질문을 받는 것과 지적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르다.
먼저 자기 잘못을 인정해버리면 상대방은 화를 내지 못한다. 숨기려다가 걸리면 나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우기면 나는 외톨이가 된다. 자기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매우 어려울 수 있다. 본능적으로 내가 맞다고 우기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인정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시치미를 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연습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침착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아,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해버리면 끝이다. 싸우지도 않을 것이고 고객이 화를 낼지언정 오래가지도 않는다.
슈 과장도 실수하고 이걸 말해야 한다는 걸 깨달을 때면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도 했었고, 이야기하기 전에 대응방안을 줄 세워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언제나 잘했다고 느꼈던 것은 그걸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는 점이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요... 고객이 이렇데요... 제가 잘못 이해해서 지연이 생기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지 모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이랬을 때 보고를 듣는 사람의 한숨이나 황당해하는 웃음을 들었지만 금방 수습했다. 가이드를 받고 움직일 수 있었고, 필요한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의 월급은 너무나도 작게 느껴지지만, 그 작은 월급을 받는 개인이 사고를 칠 때면 엄청난 규모로 칠 수가 있다. 그러니 '내가 책임지면 되겠지'라는 어줍잖은 생각은 말고 고개 푹 숙이고 바로 이야기하도록 하자. 피하고 숨겨서 해결되는 것은 회사에 하나도 없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i.e., 깔고 뭉개는 사람) 누구도 당신과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고 치는 사람보다 더 최악이다.
잊지 말자. 사람은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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