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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본 책이었다. 특이한 표지에 이끌려 잡았던 책은 이상하게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했다. 제목에서부터 나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놀라운 책이었다. 이 주인공은 그 수업료를 충당하기 위해서 매춘을 선택했다. 나는 짧은 내용을 보고 내가 좋아할만한 책이라는걸 알았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나는 책을 구매해서 오늘, 화요일 이 책을 다 읽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 이 곳에는 내가 강하게 묻어있었다. 내가 걸어갔을, 걸어갈지도 모르는, 걸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길인 것처럼 말이다.

 

로라는 가족과의 소원한 관계와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모든 생활에 목이 말라있었다. 이루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이 많은 19살의 숙녀인데 그녀가 자란 곳에서는 어떠한 것도 제공해주지 못했다. 평범한 어린 시절조차 보장해주지 못했다.

공부만이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곳이고 열정적으로 임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으며 학교를 들어갔다. 그런데 그녀의 순수한 공부에 대한 갈증은 돈 때문에 해소되지 못하고 더 심한 갈증만 초래한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끈기와 고집은 그녀를 타락의 길을 걷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아무리 노력해도 순수하게 일을 해서는 하루 세끼 먹는 생활을 할만한 돈을 벌지 못했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마저도 그녀에게 등을 돌려 그녀가 진 빚을 더 가중시켜버렸다. 그래서 매춘을 선택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신을 내놓았다. 몸은 더러워져도 이건 공부하기 위해서라도, 내면은 바뀌지 않는 거라고 다짐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시장에 내놓았다.

 

나는 매춘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을 이렇게 하게끔 내몰아버린 사회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나에겐 모든 게 자연스러운 시장의 흐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없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이 시장 역시 누군가에게 필요한 시장이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비난하지 않으면 너도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대답하진 못한다. 쾌락을 즐기기 때문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최소한 시작이 쾌락을 위한 거였던 사람이 있을까 싶다. 누군가가 몰았고, 누군가가 당겨서 선택한 일일 것이다. 모두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매춘이라고 선택의 보기에서 없애야 할 이유는 뭐람. 사고 싶은 사람은 돈을 내고 팔고 싶은 사람은 돈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윤리의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나는 어째서, 어떻게 로라의 일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제 삼자가 아니었다. 나는 내 인생의 다른 길을 들여다보는 21살의 대학생이었다. 비싼 수업료에 허덕일 준비를 하면서 그 생각에 두통이 생기는걸 일상으로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부모님께서 지원을 해주실 수가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가능할지는 몰라도 대학 졸업까지는 기대어도 무방할 정도다. 뻔뻔하게 돈을 타가도 달가워하진 않겠지만 비난 하나 받지 않을 형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업료에 허덕인다. 너무 비싸서 나를 옭아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나는 로라가 보는 평범한 대학생들이 아니다. 친구들에게 빌붙어 이것저것 얻어먹지는 못하지만 항상 괜찮다고 하면서 커피값을 내줄 수 있는 사람도 되지 못한다.

프랑스 여자가 말하는 순수의 영역과 한국 여자가 말하는 순수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그녀들의 순수의 영역은 우리보다 광범위하다. 그들은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뛰어 다니고 그러다 넘어져도 순수한 것이지만 우리는 순간 발을 삐끗하면 더러운 여자가 된다. 그래서 그녀는 매춘을 해서 느낀 감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면서 여러 번 삐끗했다. 처음은 로라보다 더 어린 나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왜 심각하게 생각했을까 싶은 일이 그때의 나에겐 생사의 갈림길 앞에 서있게 했을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로라가 책임감을 강요한 부모님 아래에서 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성장했다면 나는 이 일로 다른 애들보다 더 빨리 성장했다. 로라와 나는 둘 다 똑같이 말한다; 우리는 빨리 성장해야만 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얘기에 공감을 하지 못하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얘기에 공감을 했다. 놓쳐버린 어린 시절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런 추억을 준다고 하면 우리 둘 다 거절할 것이다. 이미 성장을 했으니까 안다. 그들의 공감거리가 얼마나 유치한지 말이다. 그래도 놓쳐버린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섭섭하고 그렇다.

 

사랑이라는 걸 믿어보지도, 사람이라는 존재도 믿어보지 않은 것 같다. 믿었었다. 분명 내 모든걸 다 건지도 모르면서 믿은 적이 있었다. 있었을 것이다. 그 믿음을 누가 깬 건지는 모르겠다. 한번에 깨진 건지 아님 조금씩 금이 가서 깨져버린 건지도 나는 확실하지가 않다. 그래도 현재는 안다. 나는 사랑도, 사람도 믿지 않는다. 무엇이 되었든 그걸 믿는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여태까지 받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설명서를 잃어버려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나는 순수하지 않다. 누군가는 내가 아직 순수한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큼 순수한 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몸이 아니 머리가 누군가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에 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 나를 순수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순수하지 않다. 정확히는 순수할 수가 없다. 태연하게 모든 것을 믿고 따르지 못한다. 그건 순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순진하다. 믿음을 잃고 의심만 많아 순수하진 못하나, 항상 속고 또 상처를 받아 매번 주저앉아 우는 나는 한없이 순진하다. 그때 어린 나를 더럽히면서 그가 그렇게 말해줬다. 순수를 잃은 나를 또 한번 더 더럽히면서 다른 남자는 나에게 순진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사람을 믿지 않으니 나는 진실을 알 수가 없다. 내 판단을 믿는 수밖에 없다. 아직 완벽하지 않고 편견에 잘 치우쳐있는 미숙한 판단력이지만 나 아니면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로라가 순수한 사람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서서히 더러움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그녀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녀가 매춘에서 손을 떼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다시 깨끗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진심으로 또 사랑해줄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를 웃으면서 말할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과거를 어떠한 동정도 없이 그냥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를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녀의 이러한 미래를 믿어야 나에게도 그런 미래가 올거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내가 밉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로라보다 더 타락한 인간상이니까.

 

동정심 없이 읽었다. 안타깝지도 않았고,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의 자서전을 소설로 써준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나였다. 거울로 보는 나의 모습이 아닌, 호숫가에서 멍하니 앉아 생각했을 때 내가 걸어갔을지도 모르는 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누구는 종교의 말씀을 따르기 때문에 그런 건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위선자. 자신의 신념조차 없는 이런 사람을 나는 증오한다. 나는 종교 같은 거 믿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확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실수 없이, 후회 없이. 잘못하면 나는 나 자신을 비난할 수밖에 없으니까.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반박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항상 그들은 말이 많지. 하지만 내가 알게 뭐람. 나는 말씀 따위 따르지 않는다. 경험으로 배운걸 믿고 따른다. 그게 인생이다. 공부는 선배가 도와줘도 인생만큼은 선배가 없다. 백날 말해줘도 백날 책을 읽어도 나는 배우지 못한다. 직접 부딪히고 넘어져 울어야 배우는 것이다.

 

로라와 나는 같은 결정을 내린다. 이 인생, 이 빌어먹을 인생 성공하고 마리라고.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짧아서 조금 아쉬웠지만 단순 서술형의 소설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묻어왔던 미래의 목표 하나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책을 쓰리라. 많은 사람이 읽어주진 않아도 나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 한 명 있다면 그 사람 한 명을 위해서라도.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나의 평범은 다른 사람의 특이함이니까. 조금 더 많이 싸우고, 맞고, 넘어지고, 울고, 상처받고, 웃고, 사랑을 해서 성장하자.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자. 나라는 사람으로. 순수하게 남든 더럽게 남든 간에 내가 만족할만한 인간상으로. 그거면 난 충분하다. 난 성공할거다.

 

2008.07.29 17:24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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