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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

 

이 한 줄로도 '평범'한 가정이 안 평범해지기는 충분하다. 아무리 평범하기 위해 노력해도, 평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도 말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는 부분들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당연한 것이 더 이상은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과 내용만 보면(심지어 추천사까지) 한 남자의 아내를 향한, 가족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기 위해 쓴 책 같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으면 그게 포인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책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어볼까 생각 중이라면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무한한 사랑과 달콤한 스토리는 책의 앞부분에 잠시 나올 뿐이다. 결국 이 책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찾아온 정신병으로 인해 평범한 인생이 얼마나 잔인하게 망가지는지 보여준다. 그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남자의 고군분투가 그려질 뿐이다. 그 모든 내용을 읽으면서 그의 행동을 '사랑'이라고 바라보며 '로맨틱하다'라고 말하며 기뻐하기에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봐버렸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었다. 알게 되었을 때의 좌절, 절망이 있었다. 수많은 확률과 불행이 어째서 우리 집으로 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모르게 울었는지 모른다. 아마 종교도 그때쯤 찾았다가 버렸다가 무수히 반복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종교를 선택했고, 나는 종교를 버렸다. 그 울음바다를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그 살얼음판 같은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쟁은 15년간 지속되었다. 끝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고, 15년간의 버팀을 끝으로 우리는 평범하지 않았던 사람 하나를 잃고 평범한 가족으로 돌아왔다. 겉보기에라도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그의 삶 6년을 정리했고, 그의 전쟁은 그중에 3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법을 배웠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언제 또 정신병이 발병해서 무너질지를 긴장하면서 살았지만 그 과정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데리고 사는 법을 이제는 안다고 말이다. 나는 끝까지 그러지 못했다. 매일, 매해 약해져 가는 촛불 앞에서 불이 꺼질까 봐 뛰지도 못하고 살았다. 그 불을 지키기 위해 온 가족이 둘러싸고 그 시간을 늘리기 위해 온갖 노력과 희생을 다했다. 그리고 양초는 늘 그렇듯 그 수명을 다하자 불이 꺼져버렸다. 우린 그 불을 어디에도 옮겨주지 못했다. 

 

그는 불이 꺼져가는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했다. 그가 느낀 좌절, 그가 스스로 선택한 희생에 대해 돌아오지 않는 보답,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삶 대비 본인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불행, 억울함. 그 모든 기분들을 나도 느꼈다. 그도 나도 그 모든 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견뎌냈다. 상대방은 알아주었으나 그 이상을 돌려주지 못했다. 받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모든 걸 했다. 사랑했다. 정말로 너무나도 사랑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삶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웃으면서 누리는 많은 평범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에 기대했던 훈훈함보다는 어둡고 우울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아내가 먹어야 했던 약 때문에 메스꺼움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으로 읽으며 이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세 가족의 행복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의 미래에는 지뢰 같은 그 질병이 다시 안 나타나기를 바란다. 설령 나타나더라도 지혜롭게 이겨내기를 바란다.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른 날이 온다면 그때는 아들의 행복을 위한 방법으로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이런 인연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런 인연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04.29 23:29

 

읽은 날 :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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