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내 윗~~~~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 용기가 부족해서 여기다가 적는다.)

 

난 우리팀에서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선배들이 윗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으면서 일했는지를 지켜봤고, 한참 어린 나는 그 영향을 받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도 경험해봤다. 그들의 사랑? 정성?을 듬뿍 누리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외동딸 아니면 아들 많은 집의 막내 딸 같이 자유분방하고 밝게 컸다. 

 

그런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팀에서 정말 그렇게 행동하냐고 묻기도 했고, 특이한 팀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팀원들이 참 착하다고 하기도 했고, 내가 참 나빴다는 소리도 듣고 그랬다. 천방지축 막내 딸을 오냐오냐 키워준 팀이니 신기하긴 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당하게 그렇다고 웃었다. 난 그렇게 컸으니까. 내 회사생활은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사랑을 받은 대가로 내가 나의 선배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말이다. 내가 그렇게 자유분방하도록 선배들이 나를 그냥 두는 그 이유 말이다. 그들이 착해서도 있지만 (착하지 않으면 못 참을 듯) 그들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잘한다, 뛰어나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난 그런 사람은 되지 못한다. 질문도 많고, 의사결정도 잘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혼란과 무능 속에서도 내가 지키는 것이 있다. 나의 가장 최우선 순위.

 

'난 내 사람을 지킨다'

 


사원 시절의 일이다. 팀 부장이 참 이상한 업무 지시를 한 적이 있었다. 업무 외적인 지시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PPT를 만드는데 부장님이 지시한 스토리라인으로 만드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배에게 이야기했다. 이상하다고, 내가 보기엔 말이 안된다고. 그 때 선배가 나를 앉혀놓고 해준 이야기가 있다.

 

"그 PPT 만들어서 네가 들고 나가니? 아니지. 그건 저 부장님이 들고 나가시잖아. 장표의 흐름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자료를 요청한 사람은 그 흐름으로 설명을 하고 싶다는거야. 우리를 대표해서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니까 우리는 그 사람이 들고 나갈 무기를 만들어드리는게 맞는거야."

 

누군가에게 장표를 내밀고 발표를 하는 걸 끔찍해하는 내 입장에서는 반박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아, 난 장표만 만들어드리면 이 장표를 갖고 설명하는건 부장님이란 말이지? 그래 그럼 만들어드리지 뭐. 그게 뭐 어려운거라고. 발표가 더 힘들지.' 라는 결정을 내리고 그 다음부터는 내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그런 날도 있었다. 부장님이 원하는 자료와 팀장님이 원하는 자료가 달랐던 적이... 부장님이 팀장님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는데 팀장이 싫어할 게 눈에 훤했다. 하지만 나는 부장님을 선택했다. 그 보고도 그 책임도 부장님의 것이었고, 그 부장님을 서포트하는게 내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장님이 혼나고 와서 그 자료를 수정해야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역할은 내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사원시절의 사고방식과 우선순위를 그대로 과장까지 들고 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때 그 부장님을 팀장으로 모시고 일하고 있다.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일을 한다. 그리고 내 팀장님은 1년 내내 나를 지켜주신다. 그게 우리의 관계가 가진 의미라는 것을 그 부장님도 나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약속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내 팀장을 건드리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팀장이 팀장의 의무를 지느라 말하지 못한다면 내가 대신 말해준다. 어느 부서가 우리 팀장님에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나 역시 그 부서의 일에 협조하지 않는다. 치졸한 방식이지만, 후환이 두렵지 않은 자가 한 행동에 나는 기꺼이 후회라는 감정을 느끼게 할 용의가 있다.

 

지금 일을 하면서 같이 일하는 팀원에게도 이야기했다. 작년에 같이 일했던 후배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 하는 이 일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근사한 서비스를 만들어서 다른 부서가 빌면서 우리에게 오도록 하는거에요. 우리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도와주지 않았던 부서가 우리 팀장님에게 와서 부탁하게 만드는거에요. 같이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협업하게 해달라고, 자기네 솔루션을 제발 좀 이용해달라고 말이에요. 난 그 말을 듣고 팀장님이 어떤 의사결정을 해도 상관없어요. 그냥 그 상황을 누리게 하는게 내 목표에요. 우리 팀장님은 그럴 자격이 있어요."


윗사람은 가끔 아랫사람이 자기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위에 있고 아랫사람 아래에서 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구조로 일하게 된다. 언제나 수동적인 그런 구조 말이다. '팀장이 시켜서 했다', '팀장이 하라는 대로 했다' 이런 핑계를 대면서 일하는 그런 '부하'직원을 두는 구조 말이다. 그러면 안된다. 그러라고 위에 있는게 아니고 그러라고 아래에 있는게 아니다.

 

윗 사람은 '앞'에 있는 사람, 즉 리더다. 먼저 나서주고, 앞에 있는 걸 치워주고, 다가오는 문제를 먼저 막아주고 그런 사람이다. 그러면 그 뒤에 있는 직원들은 그걸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나서게 된다. 뒤에서 무기를 쥐어주든, 응원을 하든 간에 그들은 앞에서 그걸 막는 리더를 나몰라라 하지 않는다. 왜냐. 리더가 무너지면 뒤에 있는 자기가 무너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의 선배라면, 오늘부터 '리더'가 되자. 먼저 나서고 내 사람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일을 해보자. 그들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진행경과를 확인하고, 막히는 장애물이 있으면 치워주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혼내주자. 그러면 그들은 당신 아래에 있기 위해서 당신을 지키기 위한 일을 할 것이다. 자발적 노력, 자발적 헌신. 그런게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내가 누군의 후배라면, 오늘부터 리더를 유심히 바라보자. 나를 지켜주는 리더인지, 자기 살기 급급한 윗사람인지를 가름해보자. 나를 지켜주는 리더라면 이제 당신이 리더를 지켜줄 차례이다. 리더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무기를 쥐어주자. 매출이 필요하다면 매출을, 논리가 필요하다면 논리를, 헌신이 필요하다면 헌신을 쥐어드리자. 당신의 노력을 당연시할 리더는 없다. 하지만 리더가 아닌 '윗사람'이라면 '아랫사람'이 되지 말고 '리더'를 찾아 떠나자. 당신을 지켜주지 않을 윗사람을 당신이 지킬 이유가 없고, 그 못난 사람 때문에 수동적인 '아랫사람'이 되어야할 이유도 없다.

 

* 팀장님 파이팅!

 

2022.04.12 22:37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