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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인턴이든 정규직으로 들어가든 상관없이 당시 채용 인원이 많다면 '동기'라는 존재가 생기기 마련이다. 회사를 떠나서 어디든 간에 '동기'라는 존재가 생기곤 한다. 흥미로운 건 '이 동기가 좋은 존재인가?'라는 질문에는 모두가 다른 대답을 할 거라는 사실이다. 동기는 좋은 존재일까? 좋다면 왜, 안좋다면 왜일까? 나에게 동기가 있다면 어떤 존재일까? 어떤 존재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어떤 게 좋은 걸까?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모든 포스팅에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가 빠질 순 없다. (그게 궁금해서 오신거 아닌가요? 하하) 나에겐 회사 동기가 여럿 있었다. 인턴 동기 1명. 첫 번째 회사 입사 동기 1명. 두 번째 회사 입사 동기 1명. 그리고 이 모두가 다 다른 관계의 동기들이었다.

 

 

1. 인턴 동기

 

인턴 4주 동안 만났던 이 동기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였다. 사회생활이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햇병아리였던 나한테 이 오빠는 대학생 공모전에서 상을 쓸었고 당시 여자 친구는 이미 회사에 입사한 회사원이었다. 무엇도 흠잡을 데가 없이 완벽한 오빠였다. 그에 비하면 난 아는 게 너무나도 없어서 자존심이라고 비교할 무엇도 없었다. 그런 인식마저 없었다. 그리고 그 오빠 역시 나를 이겨서 무언가를 얻어낼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언제나 둘이 과제를 잘해서 꼭 정규직 전환되자고 으쌰으쌰 해줬다.

 

우리 사이는 서로의 레벨 차이가 너무나 명확해서 갈등이 없는 관계였다. 말이 동기지, 나이도 실력도 명확하게 차이가 났다. 거기다가 다행스럽게도 더 잘난 사람이 더 잘남을 통해서 희열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었다. 부족하면 가르쳐주었고 서로의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이었다.

 

 

2. 첫번째 회사 입사 동기

 

여기도 오빠였다. 인턴 때 동기와는 다른 유형의 오빠.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언제나 내가 무엇을 하는지 관찰을 했다.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일이면 나를 따라 하고 주위에서 물어보면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자기도 그렇게 했노라 대답했다. 어떻게 들으면 공을 나에게 돌리는 것 같지만 그 질문 자체가 무언가를 잘했을 때 오는 질문은 아니었던지라, 난 내가 한 실수를 두배로 걸릴 확률을 이고 일해야 했다. 

 

경쟁심은 있었지만 경쟁은 없었다. 서로의 장단점이 명확했고 서로의 업무 구분도 명확했다. 둘이 경쟁하기엔 둘 다 일이 너무 힘들었다. 누가 누구보다 더 불행하느니 더 편하니를 겨룰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 둘 다 너무 불행하고 힘들었다. 거기다가 이 오빠가 심성이 매우매우 착했다. 그래서 내가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이 오빠도 한 달 후에 그만두었다. (내가 하는 행동을 관찰 -> 실행). 결국 그 부서에는 신입이 남지 않았다. 

 

 

위의 두 동기 모두 일이 끝나고도 나서도 얼마간 연락을 잘하고 지냈다. 지금 연락을 안하는 이유는, 글쎄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서로 바빠져서 아닐까 싶다.

 

 

3. 두번째 회사 입사 동기

 

그렇다. 이 여자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이 포스팅을 시작했다. '동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한 여자다. 같이 입사했지만, 석사에 나보다 나이도 많았던 언니였다. 혼자 그 팀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더 어린 여자애(나)가 같이 입사한 걸로 시작부터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언니였다. 팀의 막내로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 같았다.

 

거기에 팀장이라는 사람도 가세했다. 석사에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그 언니가 나보다 선배라고 했다. 입사 동기이지만 선배라는 놀라운 정의를 내려주면서 그 언니가 나보다 더 잘해야한다고 그 언니에게 신신당부했다. 쌩신입이었던 그 언니와 달리 중고 신입이었던 나로서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언니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것을 당시 팀장은 그 언니에게 요구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언니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

 

그 언니는 나를 이겨야 했다. 허드렛일도 자기가 손을 들고 했다. '취합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자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취합을 하는 사람이 사수든 상위직책자에게 최종 결과물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했어요. 잘했죠?'라는 어필이었다. 나한테는 귀찮은 일을 안 해도 되는 땡큐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그 언니에게 '취합해줘서 고마워요 언니'라고 말하고는 자료를 보내주고 털었다.

 

그럼에도 내가 보내주는 일이 자기가 한 일보다 하찮으면 취합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각자 보고하자'라고 말하며 자기가 한 일을 온전히 자기가 보고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가 해온 일이 나보다 너무나도 예쁘고 정성스러워서(회사에선 예쁘고 정성스러운건 크게 의미 없다) 내가 해온 결과 물이 섞이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놀라운 건, 사수는 그 언니 편을 들었는데 부장님은 내 결과를 골랐다. 아마 그때 이후로 이 언니는 나를 더 싫어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업무적 경쟁은 그렇다 쳤는데, 온갖 사생활 이야기에 가족사까지 들먹이면서까지 경쟁할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아버지는 뭐 하셔? 주말에는 뭐하셔? 골프는 치셔?'

'해외여행은 어디 가봤어? 어디어디는 가봤어? 아 OO라고 되게 좋은 곳 있어. 나중에 가봐'

'주말에 이태원에 핫플레이스 갔다왔는데 가봤어? 언제 가봐. 내가 먼저 갔다 왔으니 답사기를 설명해줄게'

'넌 화장품 뭐 써?'

'(루이뷔통 백을 발로 차며) 똑같은 거 집에 하나 더 있어. 이건 막 쓰는 가방이야'

등 등 등... 간단히 말해서 그냥 허세였다.

 

일이 힘들면 자리에서 한숨 쉬고 엎드리고 갑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10시에 퇴근할 때면 '우리가 이 연봉받고 이렇게 일해야 하냐?'라고 하고, 그래서 언니 보고 힘들면 내가 이야기 들어줄 테니 이야기하라고 하면 '내가 너한테 그런 이야기하면 가오가 안 살잖아'라고 했다.

 

 

같이 4년 정도 일했던 것 같다. 팀장이 그 언니를 불러서 이럴 거면 다른 팀에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더니 결국 다른 팀으로 가버렸다. 그걸로 나와 그 언니의 인연은 끝났고, 살얼음 같던 사이가 드디어 남이 될 수 있었다. 나와 같이 남아있던 사람들은 '둘이 사이가 안 좋았어'라고만 말할 뿐 우리끼리 돌아가는 일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10년 동안 담아뒀던 이야기 봇다리를 풀어서 그간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부장님은 충격이라고 했다. 프로젝트 중에 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내가 챙기러 가면 '야, 내가 저 사람들이랑 저녁까지 먹어야겠냐?'라고 했었다는 이야기, '야, 나 스타벅스에 있을 테니까 밥 먹고 들어올 때 연락해'라고 시켰다는 이야기. 그러면 난 알겠다고 하고 다 같이 밥 먹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연락해주고 그랬었다는 이야기.

 

나와 언니의 사이가 안 좋은 게 둘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나도 말하고 싶었다. '이 언니는 당신들을 끔찍히 싫어했다'라고. 그 사이에 껴서 그 감정을 옮지 않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당신들이 아냐고 말이다.

 

이 언니와 일하는 4년 동안 내가 우리 팀의 막내딸(그 언니)이 외롭지 말라고 데려온 입양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하자는 대로 맞춰주며 내가 정말로 먹고 싶었던 것, 가고 싶었던 곳을 가자고 하지 못하고 그 언니가 하자는 대로 다 맞추면서 4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언니는 그 사실에 단 한 번도 나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프로젝트로 팀장이 내보냈고, 그러면 언제나 내가 더 힘든 업무를 맡았다. 언니는 수신 업무를 맡았다면 난 여신을 맡았다. 그리고 아마도 고과 평가는 동일하게 받았을 것이다. 왜냐. 우린 동기니까.

 

이 모든 인내심을 끊어내 버린 것은 아마도, 그 언니의 이동 전에 있었던 프로젝트 배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팀장님이 지방 프로젝트를 그 언니 보고 가라고 했는데 그 언니가 거절해서 내가 가게 된 적이 있었다. '집이 네가 더 가까우니'라는 이유로 나보고 지방 프로젝트를 가라고 했다. (지방은 지방인데 어떻게 더 가까운 게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고분고분 팀장님의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가게 된 이유가 내가 적합해서가 아니라, 그 언니가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나의 참을성은 바닥을 드러내버린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언니와 나는, 남이었다. 난, 그 언니를 더는 맞춰주지 않기로 했다.

 

지금도, 난 그 언니를 봐도 예의상 인사만 할 뿐 어떠한 인사치레 말도 하지 않는다. 안부도 묻지 않고, 나에게 안부를 물어도 '네'라고 대답하고 만다. 나를 아는 사람들 기준에선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던 소름 끼치게 차가운 행동이다. 그 정도로 난 이 언니가 싫다. 그녀와 나의 무관한 삶을 위해 여전히 매일 같이 기도한다.


동기 세 명을 거쳐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동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끝에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떤 동기냐에 대한 답은 환경이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 팀에 들어온 후배들도 동기들이 있는 경우들을 종종 본다. 그런데 내 걱정과 달리 잘 지낸다. 그들이 가진 품성의 문제일 수도 있고(경쟁심이 없고, 둘이 기본적으로 갖춘 능력이 다름), 그런 경쟁이나 비교를 부추기지 않는 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하게 되지만 그건 인력 배정에 대한 문제지 누가 더 유능하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심지어 팀에서 그렇게 부추겨도 이 둘은 동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고 좋아한다. 우리가 있기 전에 그 둘이 먼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둘이 다른 프로젝트에 가도 둘은 언제나 이야기를 한다. 그건 자신의 소속이 서로가 먼저라는 뜻이다. 프로젝트 팀이 바뀌면 그 조직이 바뀌지만 그 둘의 관계는 바뀌지 않는다는, 그런 단단함 같은 거.

 

그래서 '동기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냥 '관계' 같다. 어딘가에 소속되는 순간에 정해지는 관계. 소속을 끊어내야만 사라지는 관계랄까. 그 언니와 나도 이 회사를 나가야만 무의미한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회사에 있는 한 언제나 누군가는 이야기할 것이다. '둘이 동기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어떤 거냐 물으면 그건 정해진 답이 없는 것 같다. 내가 하기 나름, 그 동기가 하기 나름 같다. 주변에서 어떤 환경을 주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것 같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당사자들이 정하면 된다는 뜻 아닐까. 


시간이 흘러 흘러 지금 우리 팀에는 나의 입사 동기가 나를 포함해서 3명이 있다. 그리고 조만간 곧 4명이 될 것이다. 신입 연차 때 같이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적당한 거리감과 적정한 수준의 친밀함이 있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모두 다른 특장기들이 생겼고, 서로 의존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전문성과 심적 여유가 생겼다. 입사하고 10년이 다 되어서 만난 입사 동기들인데 이것도 동기라고 한다면 동기니까. 특별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동기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든 동기가 있다면, 나와 같은 경험 없이 좋은 동기를 만났으면 좋겠다. 나도 좋은 동기를 만났다면 10년 지기는 족히 넘겼을 텐데. 이건 영원히 아쉬울 것 같다.

 

2022.02.0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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