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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시작으로 가족상을 차례대로 치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의 조사를 찾아가서 조문하고 위로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가족 중 누군가를 보내고 나서야 난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후회가 덜 되었을까 하는 생각. 언젠가 찾아올 나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 말이다.

 

그럼에도 난 사실 답을 찾지 못했었다. 고민은 많은데 누구 하고도 상의를 할 수가 없어서 고민에 발전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내가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주변에게 어떤 인상을 줄까'를 걱정하면서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답을 찾아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답을 찾았다.


천 번의 죽음이어야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천일야화처럼 천 가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 이별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에게까지 그 슬픔과 상실감이 몰려올까 봐 두려웠다. 나의 상실감이 생각날까 봐 두려웠다. 

 

다행히 그런 책은 아니었다. 천 번의 죽음을 함께 했던 김여환 선생님의 경험에서 선생님이 느낀 것들을 적어 내려 간 에세이였다. 선생님이 바랬던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가지게 되어서 기뻤던 죽음, 그들이 가지지 못해서 안타까웠던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난 선생님의 생각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내 나름의 좋은 죽음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

 

난 나의 죽음이 좋은 죽음이었으면 좋겠다. 여태까지 그게 아프지 않고 나이 들어서 잠결에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내가 원하는 좋은 죽음은 '내가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받아들이고 그 준비를 모두 마쳤을 때 비로소 가는 것'이다. 나의 죽음이 언젠가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면, 그 사실을 제 3자가 알았을 때 내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에게 남은 오늘 오늘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을 위한 모든 마무리를 하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좋은 죽음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떠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2018년부터 치른 3번의 가족상은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보내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거라 생각해서 현실을 외면하고 긍정적으로 죽음을 피하려고만 했었다. 그 불가피함을 막지 못했을 때 내가 마주해야 했던 것은, 긍정의 결과가 아닌 후회였다.

 

나의 죽음이 좋은 죽음이기를 바라듯, 가족들의 언젠가 올 죽음도 좋은 죽음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까지 고통이 없기를, 존엄성이 유지되기를, 떠날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떠나기를 바란다.


난 이런 걸 선생님께 배웠다. 그녀가 호스피스에서 지킨 것은 누군가의 마지막, 누군가의 예정된 죽음이 아니었다. 그녀가 호스피스에서 지킨 것은 누군가의 마지막 오늘이었던 것 같다. 내일이 없을지언정 모두에게 오늘은 있으니까. 그 오늘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즐겁고 행복으로 채워지기를 도와주셨다.

 

호스피스를 미리 알았더라면, 호스피스가 그런 곳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런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봤다. 그러면 난 내 가족의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하루까지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 마지막까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줬을 텐데...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은 읽어보기를 바란다. 나처럼 너무 늦어서 후회하기 전에, 누군가를 영원히 먼 곳으로 보내야 하는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잘 가기 위해서, 잘 보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이나마 감이 잡힐 거라 믿는다.

 

오늘도 누군가의 오늘을 지켜주고 있을 김여환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2022.08.02 23:30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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