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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의 일이다. 행사를 기획 및 진행해야 했는데, 여기에서 '포상'이라는 것을 정해야 했다. 포상에 대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여러 가지를 만들고 받는 사람이 고르게 하는 걸로 결정을 내렸다.

 

이전에 포상 관련 포스팅이 있었는데, 궁금하다면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도록 하자.

2020/04/10 - [슈르의 오피스라이프/오피스라이프 팁] - 회사 포상으로 '현금'이 별로인 이유

 

회사 포상으로 '현금'이 별로인 이유

요즘 회사에서 공모전이 한창이다. 슈 과장의 부서에서 공모전을 담당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나름 crowd-sourcing을 위해 아이디어 공모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근데 공모전이 업무로 배정되는 것도

ebongshurr.tistory.com

당연히 옵션에는 '현금'이 없었다. 물건을 줄 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 개의 옵션을 만들다 보면 언제나 비슷한 수준의 옵션을 골라야 한다는 숙제를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한 개가 1만 원짜리면 다른 하나도 그 수준이 되어야 동등한 선택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옵션을 고르기 전에 우리는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 '옵션의 금액을 얼마를 기준으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는 일이다. 바로 여기에서 슈 과장은 충돌이 있었다.

 

총 1~3등까지 시상하게 되어있었고 1등의 예산이 100만 원이었다. (계산 편의상 금액은 예시로 이야기하겠다.) 2등이 50만 원, 3등이 10만 원... 이런 식이었다. 여기서 1등 포상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선배는 100만 원을 꽉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슈 과장은 100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1등 상에 맞는 포상이면 된다고 주장했다. 재밌는 것은 둘이 합의한 포상은 동일했는데, 선배는 그 포상이 80만 원짜리니 20만 원짜리를 하나 더 붙이겠다고 했고, 슈 과장은 이 포상은 80만 원짜리면 충분하다고 주장을 했다.

 

이 관점의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눈치챈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중요한 답은 위에 다 적어놓았다.

 

정답은 '포상의 의미'와 '포상의 예산'. 어디에 집중을 하느냐가 포인트였다. 선배는 회사의 돈이니 최대한 다 써야 한다는 마인드였고, 슈 과장은 그 돈을 다 쓸 필요 없이 포상이 적절하면 되는 거였다. 그걸로 선배는 짜증을 냈고, 슈 과장의 보수적인 생각, 속된 말로 '사측 마인드'에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그 싸움에 의미가 없어서 슈 과장은 뒤로 물러났다. 내가 받는 포상도 아니고, 내 돈을 쓰는 것도 아니니 그걸로 서로 싸우고 마음 상하느니 손을 떼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슈 과장의 승리였다. 100만 원을 다 쓰기 위해 1등 포상을 두 개로 정했다는 보고를 할 수가 없었던 선배는 슈 과장의 의견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내심 슈 과장의 마인드에 깊은 짜증이 밀려 올라왔을 것이다.


읽으면서 공감이 가지 않았을 수 있다. 100만 원이 어때서? 100만 원 가까이 되는 포상 고르는 게 얼마나 쉬운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1등 포상으로 가용한 예산이 300만 원이었다면? 1등이 도대체 뭘 얼만큼 해야 했길래라고 묻는다면 부연 설명을 해주겠다. PPT 4장 만들고 10분 발표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게 그 사람이 해야 하는 전부였을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의 노력과 기여도에 100만 원 또는 300만 원의 포상을 하는 것이 옳았을까?

 

회사 돈이니 어떻냐고 물을 수 있다. 내 돈도 아닌데 팍팍 써서 회사 예산 쓰면 어때서 빡빡하게 구냐고 따질 수도 있다. 어차피 회사가 그 돈으로 내 연봉 올려줄 것도 아니지 않냐고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이거 아낀다고 해서 나의 연봉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남긴다고 해서 나에게 뭐 하나가 더 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관점들에 대해서는 검토를 해봤는지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만을 다 써야 하겠다면 역시나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당신이 옳아서 말리지 않는 건 아니다.

 

 

1. 1등을 한 사람보다 상을 받지 못한 절대다수의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는가?

 

1등을 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참여는 했는데 운이 나빠서 포상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업무가 너무 바빠서 야근까지 하느라 참여도 못 했을 수도 있다. 어떤 한가한 사람이 참가해서 시간 들이고 노력 들여서 상을 받고 선물까지 받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을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 이 바쁜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 그게 만약 바빴던 그 사람이 당신이었다면, 당신은 그 상황에 대해서 웃으면서 박수치며 축하해줄 수 있는가? 당신이라면 그게 합당했고 공평했다고 수긍할 수 있었을까? 슈 과장이었으면 억울했을 것 같다. 분노했을 것 같다. 당장 회사의 매출을 위해 매일 밤낮으로 일하고 주말에도 나오면서 일했는데, 그럼에도 내 월급은 똑같은데 저 사람은 저런 행사에 참여해서 상도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을 것 같다. 그 포상이 100만 원이었다고 들으면 내가 받는 월급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을 것 같다.

 

 

2. 당신 돈으로 이 포상을 주는 거였다면, 당신은 예산을 꽉꽉 채워서 썼을까?

 

개인도 월 지출에 대한 계획을 잡을 때 예산을 잡곤 한다. '식비는 이번 달에 50만 원을 써야겠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경우 당신은 '식비가 50만 원이니 그걸 다 써야겠다!'라고 생각하는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오히려 '식비가 50만 원이니 50만 원 안에서 알뜰하게 써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예산이라는 게 결국 상한선을 위해 쓰는 것이지 지출 계획은 아니지 않냐는 말이다. 본인의 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회사 돈은 왜 꽉꽉 채워서 쓰려고 하는 것일까? 안 쓰면 날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계산하는 것이 정말 맞을까?

 

 

3. 당신 친구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었다면, 당신은 금액을 보겠는가 취지와 선물의 내용에 집중하겠는가?

 

친구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당신은 얼마를 쓰고 무엇을 줄 것인가?

친구의 집들이가 다가오고 있다. 당신은 얼마를 쓰고 무엇을 줄 것인가?

친구의 결혼식이다 당신은 축의금을 얼마나 할 것인가?

 

이 모든 상황에서 머릿속에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다면 당신이 정상이다. 친구가 얼마나 친하냐에 따라 다르다고 추가 정보를 요청할 수도 있다. 그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당신 머릿속에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회사 포상 문제로 돌아가 보자. 당신에게 예산이 100만 원이 있다. 무엇을 얼마에 살 것인가?

여기에서 당신이 '추가 정보가 필요해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100만 원 최대한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사서 주겠어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내 선배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 친구의 선물이었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받으면 좋아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태블릿을 주기로 했다면, 당신은 그 태블릿이 주는 즐거움을 계산하지(내 친구가 태블릿이 갖고 싶다고 했었지!) 태블릿의 가격이 주는 즐거움을 계산하진 않았을 것이다.(이게 70만 원짜리니까 좋아하겠지!) 결국 포상도 그런 거 아닐까?

 

 

4. 예산을 편성한 사람은 절대 당신에게 그 돈을 다 쓰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해봤는가?

 

2번과 비슷한 이야기다. 근데 이번엔 돈을 쓰는 사람 말고, 돈을 쓰라고 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일상에서 어린아이에게 심부름을 보내면서 남은 돈으로 네가 먹고 싶은 걸 사 오라고 했을 때, 우리는 아이가 그걸 다 쓸 거라고 계산하면서 돈을 쥐어주진 않는다. 대신 잔돈으로 내 아이가 먹고 싶은걸 충분 사 먹을 수 있는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본다. (4천 원짜리니까 1천 원 남으니 그거면 되겠지?) 그 아이도 잔돈이 5천 원이라고 해서 5천 원을 꽉꽉 채워서 사 먹진 않는다. 당장 본인이 행복할 정도의 간식거리 하나나 두 개 사들고 올 것이다. 최대한 많이 사야지! 하면서 사 오지 않는다.

 

이 예산이라는 것은 예산을 세운 사람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상한선일 뿐이다. 그 돈이 남으면 다른 곳에 쓸 수도 있고, 만약 내 자식이 손이 작아서 간식거리를 내 생각만큼 사지 않았다고 판단이 되면 더 사도 된다고 말해주거나 직접 사다 줄 것이다. 그게 일상생활에서는 어른/보호자가 하는 일이고, 회사에서는 의사결정자/직책자가 하는 일이다.

 

 

5. 마지막으로, 이게 선례가 되면 이후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았는가?

 

사람에게 공짜로 무언가를 주긴 쉬어도 그 공짜를 중단하거나, 유료화하는 것은 말도 안 되게 어렵다.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 올리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자. 그리고 한번 무료로 바꿨다가 영원히 유료로 바꾸지 못하게 된 것들을 생각해보자. 그게 뭐냐고? 은행 이체 수수료, 그리고 주식거래 수수료다. 10원이라도 부과하면 다른 은행, 다른 증권사로 가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고객 앞에서 은행과 증권사는 찍소리도 못하게 되었다. 서로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다가 영원한 패배를 맞이한 것이다.

 

그게 이 포상과 무슨 상관이 있냐? 당연히 있다. 이 행사, 대회, 뭐든 이게 유지가 된다면 다음에 대한 선례가 된다. 그때 100만 원을 썼다는 기록이 두고두고 따라올 것이다. 그러면 그보다 더 쓰면 썼지 덜 쓸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봐라. 포상이 낮아진 적이 있던가!?) 그 경우 당신이 한 번 FLEX 하겠다고 후하게 준 포상 때문에 내년 내후년이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 간단하다. 내년 예산이 큰 변동이 없다면 당신은 그 포상을 마련하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서히 늘려갈 거라면 이번이 펑펑 쓸 때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왜 사람들은 내 선배처럼 개인의 상황과 회사에서의 상황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건 회사 돈이 나의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의 돈을 나의 복리후생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 돈으로 하나라도 더 혜택을 받아야 나의 연봉이 올라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회사의 본전을 뽑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는 경우가 그렇다. 당연히 예산에는 내 몫이 있다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누리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산을 남기면 날아가버려서 손해일 수도 있다. '예산이 충분했구나' 판단해서 내년에 줄여버릴 수도 있다.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의 예산, 팀의 예산을 개인의 판단으로, 개인을 위해서 소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식구가 살아야 할 1년 생활비라고 생각했을 때 그걸 내가 먼저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쓰는 가족은 없다. 다비 이모가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라고 노래를 부르며 회사와 가족의 선을 그었지만, 회사 돈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 맞다. 내 가족의 돈처럼 생각하고 써줘야 한다. 그래야 팀이 한 해를 잘 지낼 수가 있다.

 

예산이 넘치면 단체 회식을 할 것이고, 모일 수가 없으면 선물로 대신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팀이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면 그 팀의 신뢰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금을 갖고 서로 더 내기 싫어하고, 어떻게든 더 돌려받고 싶어 하는 이유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혜택이 나에게 오지 않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는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불신에서 온다고 본다. 덴마크에 관한 책을 읽고 알았다. 그 많은 세금을 내면서 괜찮아하는 이유는 그게 나에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그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회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팀원 서로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에 내 몫 챙기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슈 과장도 회사 돈으로 밥 먹는 걸 좋아한다. 누가 수건을 공짜로 준다면 하루가 신나고, 명절이라고 선물세트를 주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명절을 맞이하기도 한다. 더 받으면 좋다. 싫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밥 먹는데 회사 돈을 쓰려고 하진 않는다. 회사 돈으로 수건을 사려고 하지도 않고, 선물세트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회사 욕을 하지도 않는다. (이번에 예산이 남는 부서는 추석 선물세트를 받았다고 한다. 부럽...) 

 

'회사의 뽕을 뽑겠다.' 이런 마음은 내려놓자. 회사에서 돈이 남으면 회계상 이익으로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익은 내년 내 연봉이 조정될 때 반영이 될지도 모른다. 그 회사가 상장되어 있고 내가 주주라면 배당금으로 그걸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거다. 내가 회사 돈을 내 돈처럼 여긴다면, 그 돈은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그런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야 한다. (내 돈으로 여긴다는 게 내 거라고 생각하고 막 쓰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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