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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이라면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같이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며) 놀다가 어른에게 걸려서 다 같이 줄 서서 혼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놀다가 혼났든, 형제/자매와 놀다가 혼났든 간에 혼난 경험은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지막에 다 같이 동조를 했어도 선동자가 있었다. 친구들 중 힘이 센 아이, 형제/자매 중 나이가 많은?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의문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가 어렸을 때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곤 한다. 왜일까, 뭐가 문제인 걸까.


회사에서는 언제나 무슨 일을 하든 '책임 소지'라는 문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질 거야?'라는 문제 말이다. 다행히도 매번 그 문제로 서로 싸우지 않는 이유는 회사에는 직위/직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자연스럽게 누구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암암리에 알고 일하기 마련이다. (사내 직급 평준화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이런 조직(직급이 존재하는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항상 나타나는 사람의 유형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책임질게!'라고 호언장담하고 위험한 의사결정을 하는 타입이다. 책임지기 싫어서 도망가거나 결정 못해서 시간이 무한정 흘러가는 사람보다는 낫긴 하지만 이 사람들과 일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그 사람의 책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라는 점에 있다. 아무리 본인이 책임진다고 말해도 저 위의 이야기처럼 선동한 사람 외에 같이 동조한 사람들도 다 같이 줄 서서 혼난다는 것이다.

 

이게 회사 생활에서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누군가가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한 것이 어떠한 효력도 없고, 사내 징계 대상에 나도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징계는 사내 시스템에 남아서 영원히 나를 따라다닌다. 승진을 하려고 해도, 어떤 사람인지 인사팀에서 파악할 때에도, 그 징계 하나 때문에 나는 불편한 회사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 에. 버.


잘 와닿지 않을 것 같아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Case 1 : "내가 책임질 테니까 A사 솔루션으로 해"

 

여기서는 이 '나'라는 사람이 PM인 경우 가능한 일이다. PM은 원래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고, 이런 경우에는 결과가 잘못된 경우 잘못된 이유에 따라서 이 사람이 처벌을 받거나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고 지나가거나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사람이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는 A사 솔루션을 선정한 이유가 불공정한 방법(뇌물, 지인 찬스)이라든지, A사 솔루션에 대해 허위 보고를 한 경우 등이다. 개인의 잘못으로 잘못된 일인 만큼 개인만 징계를 받고 끝나게 된다.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는 정말 A사 솔루션이 훌륭하다고 믿었으나 프로젝트에서 오버런이 났다든지, A사가 사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든지 하는 경우다. 회사 간 싸움으로 번지거나, 회사끼리 으쌰 으쌰 해서 수습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끝난다. 이런 경우는 이 의사결정을 한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는 일이다.

 

 

Case 2 : "내가 책임질 테니까 (고객사) 데이터 챙겨"

 

이런 경우 만약 걸리게 되면 책임이 책임진다고 호언장담한 개인에서 멈추지 않는다. 데이터 챙기는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 모두가 줄줄이 고구마가 달려 나오듯이 나오게 되어있다. "시켜서 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해도 그 불합리한 상황과 권력에서 느꼈을 압박감에 어쩔 수 없었겠다며 정상참작을 해줄 수도 있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처벌은 받게 되어있다. 그 상황에서 "전 못해요"를 시전 하거나 신고 해버리거나 뭐 기타 등등의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쨌든 벌은 받는다. (보통 사유서 정도로 끝나곤 한다. 하지만 재수 없으면 고객사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징계가 오기도 한다...)

 

여기서 데이터 말고도 뭐든 다 응용이 가능하다. 판단하기에 이게 옳은 일이 아니라면 얼른 손을 떼야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이런 일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 '뭐 어때서? 내가 만든 데이터인데?'라는 식이다. 지난번 포스팅에도 이야기했지만 고객사 프로젝트 수행할 때는 무엇이든 다 고객사의 소유다.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모른다면 지난 포스팅 참고)

2020.04.15 - [슈르의 오피스라이프/오피스라이프 팁] - 월급쟁이인 나의 소유인 것과 회사의 소유인 것

 

월급쟁이인 나의 소유인 것과 회사의 소유인 것

인턴이었을 때 회사에서 보안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보안 교육'이라는 용어를 달리 말하면 '정보보호', '정보보안' 교육 같은 것인데 회사 정보에 대한 주의사항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아주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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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개 Case가 쉬운 예시라면 이제 어려운 예시로 가보겠다. 난이도 최고의 Case 다.

 

Case 3 : "(근무시간이 아직 남았지만) 오늘은 일찍 퇴근해"

 

팀장님, PM이 오후 3시나 5시 뭐 언제든 근무 종료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퇴근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날은 "오예~" "아싸~"하면서 후다닥 짐을 싸서 짐을 가는 행복한 날이다. 윗사람이 말해줬기 때문에 신나서 당당하게 퇴근하는 날이라고나 할까. 이게 문제가 될까?

 

당연히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어려운 문제로 내줬겠지...?

 

뭔 소리인고 하니, 내가 일찍 가는 것은 나의 행동이고, 일찍 가라고 한 것은 윗사람의 지시였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는 이 회사와 계약할 때 '근무시간' 관련해서 계약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루 몇 시간, 일주일 몇 시간, 한 달 몇 시간 일하겠다는 계약서 말이다. 그걸 누구랑 썼는지 기억하는가? 그게 나에게 일찍 퇴근하라고 한 윗사람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엄연히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사규에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윗사람이 일찍 가라고 해서 일찍 가버린다는 것은 당신이 그 시간을 무시하고 정해진 근무시간을 다 채우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그러면 집에 안 가냐? '슈 과장 넌 어떻게 하는데?'

 

난 간다. ^^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인사팀이든 어느 담당팀이든 내가 근무한 시간을 총합해보면 그날 조금 일찍 간 게 총 근무시간을 부족하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쟤 맨날 일찍 가는 것 같아. 근태가 엉망이야. 근무시간 정산해봐"라고 누군가가 지시를 해도 "저 사람은 추가 근무 올리지 않고 일한 시간이 많아서 근무시간이 부족하진 않아요"라고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지각'이나 '이른 퇴근'으로 혼날 수는 있겠지만, 정도껏 하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6시까지 근무인데 5시 45분에 간다든지...) 징계를 받지 않을 정도로 하고 있다고나 할까...

 

만약 오후 3시인데 들어가라고 말해주는 PM이 나타나면, 나는 "PM님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조금 이따 들어갈게요. ^^" 하고 시간을 어느 정도 채우고 퇴근한다.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하든 책을 읽든 간에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여도 그렇게 할 때가 있다. (일하긴 싫지만 규정은 규정이니...)


여기서 함정이 있다. 만약 당신이 일하는 회사가 근무시간이 9:00 ~ 18:00 이렇게 정해져 있지 않고 직원이 직접 기록하는 '근무시간'으로 되어 있다면 저 위의 논리는 다 없어진다. 왜냐면 당신은 애초에 9:00 ~ 18:00을 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5시에 퇴근해도 되고 3시에 퇴근해도 되는 것이다. 대신, 근무시간에 당신이 18:00까지 일했다고 기입을 한다면 그건 그 순간에 문제가 되는 일이다.

 

'외근 나간 김에 일찍 집에 갔어요. 다시 복귀하려면 어차피 6시가 넘는다구요'라든지, '마감이 다 끝나서 그날을 더 일할 필요가 없었어요'라든지, 'PM님이 일찍 가도 된다고 했단 말이에요"라는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가 않다. PM이 일찍 가도 된다고 한 거지 ('3시인데, 마감 끝났으니까 이제 집에 들어가') 근무시간을 18시로 하고 3시간 일한 걸로 퉁쳐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걸 18시로 기록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윗사람이 그래도 된다고 했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 윗사람이 징계 먹을 때 당신도 같이 징계를 먹을 일인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웬만하면 FM으로 대응하면 좋겠다. 주위에서 답답해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런다고 혀를 차도,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긴장하지 않을 사람은 당신 뿐이다.

(모른다면 이 역시 지난 포스팅 참고)

2020.09.08 - [슈르의 오피스라이프/오피스라이프 팁] - 고를 수 있다면 회사에서는 FM이 되어라

 

고를 수 있다면 회사에서는 FM이 되어라

일하면서 부쩍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슈 과장은 꼰대야 꼰대. 좋게 말하면... 라떼?" 이럴 때마다 깔깔깔 웃으면서 맞다고 박수치며 동조하지만 언제나 뒤로 돌아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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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회사는 항상 근태를 관리하면서 체크하고 경고하고 관리하지만 어떤 회사는 한 사람을 자르기 위해 근태 기록을 사용하기도 한다. 바로바로 관리하는 회사면 그 근태가 나중에 나를 괴롭히기 어렵지만, 조금씩 사소하게 사규를 무시하면서 살아왔다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위반을 나중에 수습하기는 어려워진다. 회사가 그 근거를 다 모아서 당신 앞에 내밀며 "일했어요? 윗사람이 그래도 된다고 했다고요? 좋아요. 소명해보세요"라고 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런 경우 절대 소명 못한다. 소명을 못하면 이런 사소하고 억울한 일들 때문에 회사를 나가게 되는 수가 생긴다. 

 

근태를 예로 들었지만 법인카드, 언행, 품행 모두 다 적용될 수 있다. 법인카드를 개인적 용도로 쓰고 있다면 그만하자. 누군가에게 막말하고 있거나, 인격모독을 하고 있거나, 때리거나, 추행하고 있다면 제발 그만하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데 회사가 기다리는 건 소도둑이다. 징계 주고 데리고 있는 것보다 모아서 날려버리는 게 회사에겐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지 말자. 회사에서의 롱런은 능력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선을 지키는 사람들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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