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하는 주제는 상당히 특이한 주제다. 고객과 협의할 때 이야기를 수월하게 하는 화법을 알려주려고 하는데, 실제 적용하려고 생각하면 '특이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게 다라고?' 할 수도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 한번 시도해 보는 걸 추천한다.
그 방법은 제목과 같다. '긍정'으로 반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인 단어로 시작하면, 내 입장이 같은 입장이든 반대 입장이든 상관없이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걸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런 social cue를 읽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러나저러나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그걸 캐치할 수 있다면 내 말을 자르려고 하는 고객이 아닌 내 이야기를 일단 들어주는 고객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떤 느낌인고하니...
만약 개발하는 방향과 관련해서 A로 하기로 했었는데 고객이 B로 하자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상황에서 나는 A를 유지하고 싶거나, B로 전환함에 있어서 딜을 하고 싶은 상황이다. 그럴 때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
고객 : "이 개발 건이요,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봤는데 A 말고 B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나
1안) "B요? 그러면 개발공수가 더 드는데요?"
2안) "B안으로 검토하셨군요, 더 효율적일 것 같긴 하네요. 근데 개발 공수가 더 들지 않을까요?"
1안과 2안 중에 어느 게 더 좋아 보일까? 읽는 것만으로 판단이 안되면 고객의 입장이 되어서 그다음에 뭐라고 할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1안의 고객 : "더 들어도, 그게 더 좋은 방법 같아요"
2안의 고객 : "그렇죠, 근데 효율적인 방법이 좋으니까요." or "개발 공수가 더 들까요?"
1은 대화가 스포츠 경기를 하듯이 코트에서 공을 서로 치는 형태의 대화가 이어지게 된다. 낙장불입, 힘의 싸움, 무엇이든 갖다 붙일 수 있는 형태의 말싸움은 다 일어날 수가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대화가 '내가 더 알아' 형태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안은 조금 다르다. 동일한 대화를 해도 의견을 보태는 느낌과 진도가 나가는 느낌으로 가게 된다. 그러면서 고객은 강압적인 말, 힘의 싸움이 아닌 감정적 공감 방식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같이 고민을 하는 판으로 고객을 유도하면, B로 정해지더라도 나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다.
이걸로 잘 와닿지 않는다면, 다른 대화의 예를 들어보겠다. 고객 A는 마감 기한이 촉박한 프로젝트에 대해 추가 인력 투입을 요청하고 있으며, 기존 계약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 요구 사항을 던지고 있다고 가정하겠다.
고객 : "이번 프로젝트가 워낙 중요한 만큼, 기존 계약에 없더라도 추가 인력을 투입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우리도 기한 내에 확실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 1 - 부정적 대답
나 : "죄송하지만, 현재 계약 조건상 추가 인력 투입은 어렵습니다. 저희도 기존 스케줄과 리소스 계획에 맞춰 진행 중이라, 요청해 주신 사항은 따로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객 : "그런 부분은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융통성 있게 조정할 수 있지 않나요? 너무 형식적인 답변 같네요."
시나리오 2 - 긍정적 대답
나 :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계약 조건 내에서는 인력 배치에 한계가 있지만, 저희도 최선을 다해 지원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또, 추가로 협의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고객 : "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고객은 똑같은 말로 요구를 하고 있다. 거기에 난 동일한 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답변의 시작을 공감+긍정의 형태로 시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객은 내가 그 요청을 이해하고 검토하겠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검토의 결과 끝에 거절이 오더라도, '이럴 거면 그때 안된다고 하지 시간만 버렸잖아!'라는 고객은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요인(내 회사) 때문에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난 오히려 고객과 같은 편이 될 수 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가보겠다.
고객 : "개발 마무리 단계에서 죄송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번 시스템에 추가 기능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기능이 빠지면 사용자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추가로 반영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나리오 1 - 부정적 대답
나 : "정말 죄송하지만, 현재 프로젝트 일정과 계약 범위 내에서는 새로운 기능 추가가 어렵습니다. 저희는 이미 예정된 일정대로 개발을 마무리 중이기 때문에 추가 기능을 반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고객 :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리 상황을 잘 이해해주시지 않는 것 같네요."
시나리오 2 - 긍정적 대답
나 : "네, 중요한 기능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정과 범위 내에서 바로 반영하기는 어렵지만, 저희도 가능한 지원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일단 현재 개발을 마무리한 후, 추가 협의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향일 것 같습니다."
고객 : "네, 그렇게 진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답변만 보면 사실상 거절이다. 하지만 '추가 협의'는 큰 거다. 그래서 고객은 동의하고 넘어가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여기서 이런 답변을 이끌어낸다면 중요한 것은 회의록이다. 고객을 위해서 '이런 요청이 있었다'라는 사실을 적고, 나를 위해서 '일단 지금 개발 그대로 하고 추가 협의를 통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라고 적어서 고객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 추가 협의를 언제 하고 얼마나 해주느냐는 물론 다가올 전쟁이 될 수 있지만, 시간을 벌었으니 단단히 대비하고 갈 수가 있다. 그리고 100이면 100 그 시간 동안 고객은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다.
이 화술은 일상생활에서 어르신을 상대할 때도 유용하다.
부장님 :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일에 몰입하는 모습이 부족한 것 같아. 나 때는 말이야, 밤새워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건 뭐든지 배우려고 했어. 슈 과장도 조금 더 집중해서 일에 올인해야 하지 않겠어?"
시나리오 1 - 부정적 대답
슈 과장 : "부장님 말씀은 이해하지만, 요즘은 일이 전부가 아니라 삶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추세라서요. 오히려 너무 일에만 몰두하면 쉽게 지치기도 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오히려 장기적인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장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지, 다 핑계처럼 들리는데 말이야. 내 보기엔 아직 일에 대한 자세가 부족해 보여."
시나리오 2 - 긍정적 대답
슈 과장 : "네, 부장님 말씀처럼 일에 몰입하는 자세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라 저희도 다양한 방법으로 효율을 높이고 있는데요. 부장님 말씀해 주신 점도 업무 몰입에 참고해서 반영해 보겠습니다."
부장님 : "그래, 그래.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니 마음에 드네."
내 결론은 워라밸이 좋다는 거다. 하지만 부장님의 아무 말 대잔치도 잘 들었고, 고려하겠다는 멘트 하나로 부장님은 흡족해진다. 이런 대화를 할 줄 알면, 대부분의 부장님과의 대화를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다. 아주 예리하게 짚어내는 부장님만 "결국 밤새는 건 싫다는 거잖아?"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집어내는 부장님이라면 이러나저러나 피곤할 확률이 높다. 그런 경우에는 긍정+반론 화법도 치우고 그냥 '네네' 하는 게 정답이다. ^^
2024.11.0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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