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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제목이) 흥미로운 책을 하나 발견해서 읽어봤다. 책 제목은 '오늘도 개발자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제목만 보면 너무나도 읽어보고 싶지 않은가!? 무슨 내용일까, 개발자가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걸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려주는 걸까? 등 엄청난 호기심을 갖고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았다.

 

책에 대한 감상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얘 모른다면 어려운 책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협업도 잘하고 있다면 필요 없는 책이다. 이 책은 저연차의 입문자이거나,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 중 하나에 속하는데 상대방이 당최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 보면 좋을 책이다. 하지만 나보고 이 책을 추천하겠냐고 묻는다면, 난 추천하지 않겠다. 내가 다 알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유익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경험으로 배울 걸 책으로 보고 배우려는 느낌? 그리고 사람의 성격과 성향으로 할 일을 일반화시킨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극소수의 공감을 가져올 것 같은... 그런 내용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상적인 느낌?

 

이 책에서 여러번 강조하였지만 가장 공감하기 어려웠던 내용을 오늘 포스팅의 주제로 골랐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인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기획자의 업무에서 '개발자는 설득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기획자는 기획한 내용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근거를 갖고 이유를 들고 가서 개발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되고, 명령조로 말하면 안 되고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기획자가 뭐길래? 개발자가 뭐길래? 협업이 무엇이길래???


나보고 셋(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중에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쩔 수 없이' 기획자라고 대답한다. 그 이유는, 나는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툴을 사용하지 못할 뿐더러, 디자이너가 아는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개발자라고 하기엔 개발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획자냐고 물으면 감히 그렇다고 대답도 못한다. 그 책에서 설명하는 기획자의 업무를 나는 완벽히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장점이 있다고 자랑한다면 난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의 모든 기본 베이스는 안다. 그 역할별로 요구되는 지식과 툴(tool)에 대한 숙련도는 부족할지언정 그들이 하는 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그들이 일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이해한다. [기획자] 서비스를 기획해보았고, 임원에게 보고도 해봤고, 그걸 토대로 요구사항도 냈고, 사업도 발주해봤고,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그 결과까지를 지켜보았다. [디자이너] 디자인 툴을 직접 썼다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피그마로 원하는 화면 및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어봤고, 디자이너와 협업해서 실제 디자인 작업에 관여하기도 했다. [개발] 프로젝트에 개발자로서 참여해본적은 없지만, 8년을 개발자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사람으로서 일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셋의 일을 대체하진 못해도 이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그려내는 기획자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획자가 위에 있고 그 아래에 디자이너, 개발자가 협업 대상인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싫었다. 기획자가 서비스를 기획하고 시장 조사를 하고 보고하고 논리를 만든다 하여도 그걸로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설득'해서 같은 목표를 갖고 달리게 한다는 건 이상하다. 

 

책에서는 기획자가 먼저 기획하고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불러서 설명해주고 설득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거부터 잘못된건 아닌가 싶었다. 디자이너와 개발자 중에서 기획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획 능력이 있다. 그걸 정량적인 수치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어도, 논리적 근거를 갖고 오진 못해도 그들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기획자가 하지 못하는, 내지 못하는 더 좋은 의견을 충분히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자는 기본적인 골격이 갖추어지면 그 자료를 들고 '그들을 설득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자고 해야지',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았나 싶다.

 

나에게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내가 들여다보지 못한 최신 트렌드를 디자이너는 가르쳐주었다. 내가 벤치마킹하지 못했던 타사 앱을 분석해서 더 좋은 방법과 디자인을 제안해주었다. 그게 설령 본인의 업무의 복잡성을 늘리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디자이너는 나에게 자기 무덤을 파면서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해주었다. 개발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구현해달라는 내용에 더 효율적 방법이 있다면 설명을 해주었고, 그게 퍼포먼스에 영향을 준다면 먼저 걱정을 해주었고, 사용성에 문제를 준다면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다. 개발 편의성을 고려해서 내가 가이드를 해도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편한 길이라 생각하면 그들은 힘들어도 더 나은 길을 자진해서 걸었다.

 

난 기획자였지만 그들을 설득한 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물론 우리가 계약관계로 만났기 때문에 그들이 어느 정도 입장을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계약하는 발주처 PM이었으니). 하지만 디자이너(프리랜서였다)도, 개발자(회사)들도 나에게 그랬다. '자기가 했던 일 중에 가장 재밌었다'라고...

 

난 재미없었다. 나는 기획하고, 보고하고, 돈을 받아와서 발주까지 했기 때문에, 그 예산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 결과보고를 할 생각에 두려웠고, 사용자의 혹독한 피드백을 받을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나랑 일한 사람들은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 사업이 커지면(고도화 사업이 나오면) 꼭 같이 하고 싶다고 불러달라고들 그랬다.

 

그래서 나는 기획자로서 내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달리도록 그들을 설득하는게 기획자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여하는 모두가 '이 서비스는 내 새끼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더 칭찬받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그 서비스를 만드는 내가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게 하는 것이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자는, 프로젝트/사업/TF 등 그게 뭐가 됐든 자기보다 늦게 참여한 디자이너, 개발자를 환영해야 하고, 먼저 진행했던 일을 '설명'해줘야 하고 참여한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기획자는 리더가 아니다. 조금 먼저 사업을 벌린 사람일 뿐이고, 끝까지 같이 마무리할 사람일 뿐이다. 하나의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다 동등한 위치와 동등한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 그게 성공하는 프로젝트로 가는 길인 것 같다. 그렇게 진행된 프로젝트는 설령 그 서비스 자체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결코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획자가 읽고 있다면... 당신의 일은 처음 잡은 초안을 디자이너와 개발자와 함께 더 낫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읽고 있다면... 디자인의 기획자는 당신이니 더 좋은 결과를 위해 과감하게 의견을 내자.

개발자가 읽고 있다면... 누가 기획을 하든, 누가 디자인을 했든, 그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려면 당신이 있어야 한다. 수동적으로 일하지 말자. 더 나아질 방법, 더 효율적인 방안은 언제든 이야기하자. 기획자, 디자이너는 언제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지 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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