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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있었던 일이다. 술자리에서 즐겁게 취한 차장님이 본인보다 한참 윗사람(임원)에게 "제 덕분에 시야가 많이 넓어지셨죠!?"라고 신나게 외쳤다. 그 성인군자였던 임원은 웃으면서 "그렇다"라고 대답하셨으나, 술 한잔 마시지 않은 슈 과장은 그 상황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내가 지금 뭘 들은거야!?')

 

이 차장의 잘못에 대해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윗사람에겐 '알려드릴' 수는 있어도 '가르쳐드릴' 수는 없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내가 보고 했을 수도 있고, 설명해드렸을 수도 있다. 심지어 잘못 알고 계신 것을 바로잡아드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가르쳐준 게 아니라니? 그 사람이 배운 거면 가르쳐준 거 아냐?

 

놀랍게도, 황당할 수 있지만, 그건 나눠서 생각할 일이다. 정확히는 이런 것이다. 내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했다는 것이 행동 하나, 그리고 듣는 상대방이 그걸 들은 게 행동 둘이다. 그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가르쳐줬다', '가르침을 받았다'고 선언할 수 없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의 위치와 자격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위치와 자격으로 그 설명을 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자. 당신은 '아랫사람'이었다. 당신을 '설명'을 했고, '보고'를 했고,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당신이 선생이었다면, 위 사람이었다면 '가르쳐'줬겠지만 그게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합리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배움에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맞다. 당신이 분명히 가르쳐줬고 상대방도 배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 주체가 절대 당신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홍길동이 자기 아버지가 맞는데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와 같은 이치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이어도 절대 그걸 내 입으로 내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차장의 실수는 그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임원이 듣고 배웠든 안 배웠든 간에, 그 사실을 확인하려든 것이었다. 이 임원이 성인군자여서 다행이었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데 인정해야 했던 사람이라면 마음속으로 괘씸하다 생각하며 복수의 칼날을 뽑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이미 알고 있었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고, "뭘 말하는 거냐"라고 시치미를 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위의 질문을 다시 봐라, 임원의 시야가 좁았다는 거잖아!)

 

하지만 그 임원은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부하직원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인정(認定)'을 선택했고, 그 차장은 기쁨을 누렸다. 그 과정에서 내가 본 것은 멍청한 차장, 그리고 인정(仁情) 많은 임원의 모습이었다. 그거 한번 웃어주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훈훈해질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그 임원이 얻은 것은 어쩌면 그 차장의 만족보다 슈 과장의 인정(認定)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정리하겠다. 당신이 부하직원이라면, 당신이 무엇을 하든 당신 입으로 절대 윗사람에게 '내가 가르쳐드렸다'라는 표현을 써선 안된다. 당신이 설명해드리고, 알려드리고, 이야기해드릴 수 있다. 하지만 절대 가르쳐드릴 수는 없다. 

 

혹시, 만약, 언젠가, 윗사람이 당신에게 '배웠다'라고 말하는 걸 듣는 순간이 있다면 그 사람이 당신 윗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도록 하자. 그런 인성을 갖춘 사람은 찾기 힘들다. 당신은 회사생활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사람을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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