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막연하게 꿈꾸고 있는 환상이 있다. 이 고단한 회사 생활에 나만의 빽이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을 혼내주고, 내가 그 위에 올라서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 말이다. 신문에 임원의 자제라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왜 내 아빠는 임원이 아닌 걸까'하며 한탄하기도 하고, '아 이번 생은 글렀어'하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다음에 태어나면 재벌 말고 재벌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하게 되는 게 우리 월급쟁이들의 실상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에게 정말로 빽이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회사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당장 다음날부터 암행어사처럼 회사를 가게 될 것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누군지를 보고, 나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이 누군지 견주어 볼 것이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내가 원하는 소원 세 개를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사람에게 어떤 소원을 빌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냥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앞에 한번 나타나서 아는 체 한번 해주면 모든 게 해결될 것만 같은 달콤한 상상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못하겠지?' 하며 망상 아닌 망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상상은 좋다. 당신의 괴로운 회사생활에 단비가 된다면야 그런 상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떠한 무기로 들고 회사생활을 하는 것은 완전 별개의 이야기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실제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A에게 회사는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다. 자기가 보고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고, 지적도 많다. 직장 동료라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팀장이라는 사람은 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막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열심히 일이 하고 싶을 뿐인데, 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막는 건지 괴로울 뿐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의 귀한 아이디어를 옆팀 팀장이 가져가 버렸다. 자기는 일개 팀원이라 온 사방에서 막혀서 고생하고 있는데 이 팀장은 '팀장'이라는 이유로 자기 아이디어를 가져가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A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A는 속상함, 괴로움을 불합리함과 불공평함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 칼날을 반년 넘게 갈아온 A가 말을 했다. '그 팀장에게 본 떼를 보여주겠다'라고. 그 팀장이 잘못한 것을 이야기하고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겠다고. 자기의 아이디어고 그걸 팀장이라고 해서 뺏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요?'
슈 과장 마음속 질문에 A는 혼잣말처럼 대답을 했다.
"OOO님에게 이야기할 거예요"
응?
뭐!?
누구!?
그 사람을? 어떻게!?
입 밖으로 내뱉은 존재는, 슈 과장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위치의 사람이었다. 사장보다 위인지 아래 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 사람.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위든 아래든 일개 과장인 슈르딩은 이 회사에서 절대 마주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전체적인 상황에서 슈 과장을 당황하게 한 것은 A에게 빽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빽이 있어서 놀라웠다거나(놀랍긴 했지만) 당황했다거나, 지난 잘못이 무엇인지 되뇌어보는 일은 없었다. 슈 과장을 당황하게 했던 것은 그 사고방식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다 무시하고 위에서 찍어내리겠다는 마음 말이다. 언제나 수평적인 것을 좋아하고 권위적인 윗사람의 행동을 싫어한다던 A였다. 그 사람이 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모순이고 위선이었다.
착각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빽이 있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은 없다. 물론 뉴스를 보고 뒷담화들을 들어보면 빽으로 회사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고 하고, 낙하산도 있었고, 나는 백날 노력해서 되지 않는 것들을 쉽게 얻어낸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해결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거나, 우리에게도 해결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빽이 있다면 그건 비밀이어야 한다. 당신의 성공이 빽이라는 존재로 인해 오해를 받지 않도록. 당신의 노력, 성실, 열정이 빽을 믿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구설수에 오르기 싫다면. 사람들이 당신을 당신 자체가 아닌 당신의 빽의 후광으로 대하는 것을 보기 싫다면. 당신의 빽이 제공해주었던 편한 삶이 사라졌을 때의 곤혹을 치르고 싶지 않다면. 당신의 빽은 언제나, 영원히, 당신의 뒤에 있어야 하고 나타나선 안된다.
A의 간절함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A가 그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슈 과장 눈에는 A의 허세가 보였다.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났다는 계산 속에서 입에서 내뱉어버린 혼잣말. 그리고 그 '빽'이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초등학생스러운 마음가짐.
혹시 A처럼 생각을 못해봤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이야기하겠다. 그 빽이라는 사람이 누구든, 얼마나 높은 사람이든 간에, 그 사람이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라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 사람은 절대 자신의 권력을 그런 개인의 소원풀이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그게 본인이 아끼는 누군가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먼저 거절한다.
고로, 그 빽이 현재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그 불쌍한 A의 소원수리가 이루어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그 빽을 믿고 지금 같은 혼잣말을 더 떠들고 다닌다면(실질적으로 얻는 것도 없이!), A는 지금보다 더 못한 상태로 빽(back)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세상 어느 회사에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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