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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만든자료나의자산회사자산

인턴이었을 때 회사에서 보안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보안 교육'이라는 용어를 달리 말하면 '정보보호', '정보보안' 교육 같은 것인데 회사 정보에 대한 주의사항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아주 쉽게 말하면 '회사 자산은 외부로 유출하면 안 됩니다.'라는 내용이다. 교육을 받는 당시에는 '그럼 그럼 당연히 유출은 안되지'라고 생각하며 설명을 듣곤 한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모호한 경계들이 생기게 되고, 나도 모르게 '내 거'라는 자산들이 생기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퀴즈, 나의 자산이 무엇인지 골라보자.

1. 회사 사내 규정집

2. 회사에서 지급해준 노트북

3. 회사에서 내가 작성한 보고서

4. 회사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아이디어

5. 회사에서 준 월급

 

정답은? 5번이다. 1~4는 모두 회사의 자산이다. 문제 풀이를 해보자.

 

1번. 회사의 규정집

이건 심지어 기밀정보다. 어디에 말로 해줄 수 없는 내용도 있다. 어쩌다 사람들의 구전으로 우린 저렇고 쟤넨 저렇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게 문서상으로 밖에 공개되는 걸 보기 어려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기밀이다. 불법이라서가 아니라 회사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한 회사의 규칙.

 

2번. 회사에서 지급해준 노트북

업무용 노트북은 회사의 자산번호까지 다 있는 물건들이다. 가끔 회사의 자산번호가 없는 회사들도 보기는 하는데 그건 관리 체계가 없는 것일 뿐이지 그렇다고 이 노트북이 내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회사는 당신에게 일을 주는 거고 당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일 뿐이다. 퇴사할 때 다 반납하고 나오는 대표적인 물건이 노트북이다. 엄청나게 많은 보안 프로그램들이 깔려있는 이 노트북은 절대 '개인 슈르딩'을 위해 주는 게 아니라 '과장 슈르딩'에게 지급해주는 것이다. 분실하거나 파손하면 회사에게 변상해줘야 한다. 그게 내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

 

3번. 회사에서 내가 작성한 보고서

회사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대체로 지나가버린 보고라 미련도 버리고 관심도 꺼버리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가끔... 가끔가다가 그 보고서 자료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보고서에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도 있고, 그 보고서의 내용이 탐나기 때문도 있다. 이러든 저러든 우선 내가 창작자이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사실 회사의 월급을 받고 작성한 문서이기 때문에 그 자산은 회사에 귀속된다. 그리고 보고서의 내용이 민감할수록 그 자료에 대한 욕심은커녕 보안의 이유로 파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종이 한 장 출력해서 들고나가지 못하게 하는 회사들도 있는 만큼, 이런 걸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행인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서의 경우라면 회사에서 쫓아와서 소송 걸거나 문제 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회사도 그거 말고 할게 많은 곳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문서를 줍줍 해서 나온다면 일이 매우 커질 수 있음을 주의하도록 하자.

 

4. 회사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아이디어

아이디어는 무형의 자산이다. 번뜩이는 사업 아이디어를 냈는데 회사에서 "그건 별로야"라고 막았을 경우 '그럼 내가 하고 말지!" 하며 회사를 나가서 창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왔으니 내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아이디어를 '제출'한 적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아이디어를 제출했다면 회사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윗사람이 그 아이디어를 기각했다고 해도, 무언가 증거가 있거나 이후에 그 사업을 하고 싶은데 당신이 막아서고 있다면, 문제가 될 소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다행인 점은 회사는 그거 말고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이고, 당신의 아이디어를 기각했다가 다시 하기로 의사결정을 하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나가서 창업을 해버리고 성공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사실, 문제의 소지는 크지 않으나 일단 당신이 회사에 낸 아이디어는 회사의 자산이다.

 

5. 회사에서 준 월급

이게 유일한 나의 소유, 정답이었다. 회사는 나에게 5번(월급)을 대가로 주면서 노동 계약을 하는 것이다. 1과 2는 환경이고 3과 4는 내가 월급을 대가로 회사에 제공한 나의 노동의 결과물이다. 월급 받고 다 팔아버렸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월급도 받고 아이디어도 내 거고 문서도 내 거고 모든 게 내 거라고 주장하는 것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자. 우리는 그저 월급쟁이일 뿐이다.


추가로, 프로젝트로 고객사에 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객사와 우리 회사의 계약에 따라 내가 고객에게 나의 노동/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구조다. 여기서 작성한 문서는 누구의 자산일까? 위의 설명을 잘 읽어보고 답해보자.

 

정답? '고객사'의 자산이다. 고객은 우리 회사에 나의 노동/서비스를 대가로 계약을 한 상태다.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기로 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에서는 내가 고객사에게 제공한 자료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 경계가 사실 엄청나게 모호해서 내 PC에 자료가 있으니 고객사 팀장에게도 드리고 내 팀장에게도 드리고 할 수 있지만, 고객사의 PC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로 상황이 변한다면 이런 이해관계에 대한 판단은 명확해진다. "내가 작성한 자료를 우리 회사에 보고해야 하니 우리 팀장에게 보내줄 것은 요청한다면, 고객이 동의해줄까?" 거의 80%는 거절한다. 왜냐, 이건 그들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20%는 무엇이냐? 문서의 내용에 따라 고객의 기밀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보내 주거나, 그 문서가 회사 간 계약이나 관계에 필요한 자료라면 승인에 승인을 거쳐서 지원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다 NO라고 보면 된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 자료에 대해 주장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그 자료는 애초에 우리 회사의 자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해보면 이게 누구 자산이고 아니고의 개념에 대해 모호한 경계에서 각 이해관계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더러 보게 된다. 퇴사하면서 자료를 챙겨서 나온다던지, 친한 사람이니 자료를 출력해서/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내가 고생했으니 내 거라는 마음으로, 내가 만들었으니 보내줘도 된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주의하도록 하자. 이 모든 것은 회사가 더 바쁜 일이 있어서 묵인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한 일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순간 회사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당신을 추적해올 것이다. 그때 공포를 느끼며 그나마 받고 있던 월급은커녕 벌금을 내기 싫다면 회사에서 처음에 주의를 준 '정보 보안'에 대한 개념은 착실하게 갖추도록 하자.

 

누군가가 내 정보를 보호해주길 원한다면, 나부터 내가 보호해야 할 정보를 지키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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