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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된 인턴들을 만났다. 슈 과장의 팀에는 배정되지 않은 인턴들이었으나 같은 팀장 휘하(?) 아래에 있었기에 인턴들과 차 한잔해도 된다는 허락을 너무나도 쉽게 득할 수 있었다.

 

사실 '무엇을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라는 건 특별히 없었다. 그냥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항상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일하고 있었기에, 인턴이라는 존재는 그런 새로운 인연이라는 즐거움을 줬다고나 할까. 하지만 앞선 마음과 달리, 주어진 시간을 채울만한 주제나 이야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만나기 전까지 무언가가 체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쁜 이야기를 할까 걱정이 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것, 나쁜 것 모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나쁜 이야기를 해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나의 말 한마디에 팀에서 해왔던 일들이 망가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회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나로선 알 수가 없으니!)

 

그런 걱정이 있든 없든, 시간은 다가왔고 만남은 진행이 되었다. 생각보다 순탄하고 즐거운 만남이었다. 우울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틈 따위는 없었다. 과거의 인턴들의 이야기를 해주느라 바빴고(나름 성공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대한 이야기들에 집중했었다.

 

하지만 나의 의도가 이랬듯 저랬듯, 인턴 하나가 눈물을 보였다. 갑자기 울컥한다며 냅킨으로 눈물을 닦은 그 인턴을 보며,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슬픔이나 서러움의 눈물은 아니었다. 주위에서는 내가 인턴을 울렸다고 하니 꼰대라고 라떼라고 놀렸지만, 사실은 그런 눈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물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슈 과장,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배경을 설명해주자면, 인턴이 온지는 1개월 정도가 되었다. 그들은 팀에서 일을 주면 그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본인이 한 일이나 배운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면접을 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

 

그런 그 인턴들에게 그 팀은 이틀 동안 데이터 가공이라는 눈 아프고 노가다성이 짙은 업무를 줬다. 정말로 손이 부족해서 다 같이 나눠서 하는 일이었고, 고양이 발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인턴들에게 요청했던 것이었다. 그런 일을 줘야 했던 2년 차는 스스로 너무나도 미안했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녀에게 비슷한 일을 줄 때 미안했던 감정을 이제야 이해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 이야기를 인턴들에게 해주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미안했다고, 하지만 불가피해서 2개월이라는 귀한 시간 중 2일을 그렇게 쓰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인턴들은 나의 말에 너무나도 가볍게 대답했다. 오히려 본인들은 셋이서 다 하면 되는 일을 본인보다 선배들이 하고 있어서 신기했다고 그랬다. 

 

여기서 나의 한소리가 나왔다.

"그 선배들(2년 차, 3년 차)은 그 일을 하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여러분은 아니에요. 인턴이잖아요. 그런 일을 주려고 사람을 구했으면 인턴이 아닌 대학생 알바를 뽑았을 거예요. 그런 건 시급 알바 써서 해도 되는 일이니까요. 인턴들이 하는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2개월 동안 우리 팀에서 정식으로 제대로 된 일을 받고, 그 일을 해보고, 많이 배워보고 가야해요. 그걸 위한 일을 주는 게 우리 팀의 의무예요."

그리고... 더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거기서 인턴이 눈물을 보인 것이었다.

웃으면서 눈물을 수습해보고 눈물을 보인 이유를 이야기해주길 기다려보았으나 그 인턴은 끝내 그 자리에서 본인이 보인 눈물에 대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해명하겠다고 하더니 다시 눈물이 나서 못하겠다고 그러고 손을 절레절레해버렸다.

 

그 순간에 그 인턴이 내뱉은 한 마디의 말이 나를 아프게 했다.

"인턴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아서요..."

인턴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오해하는 것이 있다.

 

'무조건 열심히 하고, 시키는 대로 다해야지.'

'일을 주면 복사든 뭐든 열심히 해야지.'

'뭐든 다 좋아.'

'정규직 전환되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아니다. 이 태도가 아니다. 당연히 회사는 간절함을 원한다. 우리 회사에 대해 간절하기를 원하고, 일자리에 대해서도 간절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간절함을 원하는 대상이 '모든 사람에게서'가 아니다.

 

회사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서 간절함이 있기를 원한다.

우리 회사의 일하는 문화와 잘 맞는 사람이 우리 회사에 오기를 희망했으면 한다.

인턴으로 일했던 팀에서 검증한 사람이 우리 회사에 오기를 원한다.

 

이 모든 곳에는 어디에도 무조건 열심히인, 복사를 잘하는,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없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결국 원하는 것은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다. 기업문화에 맞는 사람 말이다.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 말이다.


그녀의 눈물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스스로를 얼마나 가열차게 몰아세우면서 살아왔을까 싶어서, 스스로를 얼마나 맞춰가며 이 사회를 살아가려고 했을까 싶어서. 

 

인턴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하는 사람에게 감히 이 꼰대, 라떼가 한마디 하겠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고, 성실함을 보이는 것도 좋고,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도 너무나 좋아요. 선배들에게 좋은 말, 선배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을 해주는 것도 너무나도 좋아요.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숙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평가하듯 당신도 우리를 평가해야 해요. 내가 지금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긴장하고 노력해서 정규직을 얻어내면, 그다음에도 행복할 수 있는 회사일까? 이 사람들과 일하면 나는 나로서 이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 회사의 특징이, 이 회사의 업종이 내가 원하는 회사생활이랑 맞는 걸까? 나랑 같이 일하게 되는 사람들이 내가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일까?

 

인턴을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집에서 울면서 해서 정규직을 얻어냈으나 입사 8개월 만에 그만뒀던 선배의 조언입니다.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으세요. 10년을 일해도, 20년을 일해도,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좋아서 계속 웃으며 일할 수 있는 그런 회사. 나에게 맞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어요. 모르고 입사하는 공채들과 달리 인턴은 그 기회가 있는 거니, 그 기회를 마음껏 누리고 살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울지 마요.ㅎㅎㅎㅎㅎ 울긴 왜 울어. 으이그.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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