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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신입사원 채용 인원이 줄어들면서 사내에서도 인력난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신입사원을 데려오는 게 연초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채용 인원이 줄어들어서 힘든 건 취준생만이 아닙니다...)

 

슈 과장은 이런 일을 맡은 적은 여태 없었다. 연차가 부족하기도 했고, 주 업무가 팀 운영과는 거리가 멀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올해 업무가 조금 조정되는 바람에 신규 인력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우리 팀의 대리가 가기로 되었는데 같이 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된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행사의 내용은 이랬다. 1) 신입사원에게 우리 부서에서 하는 일을 먼저 설명해주고 2) 그다음에 신입사원이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면 우리가 대답해주면 되었다. 3) 그걸 토대로 신입은 본인이 가고 싶은 부서를 1, 2, 3 지망 적어서 내고 4) 우리도 신입 사원에 대한 지망 순위를 적어서 내면 5) 인력팀에서 매칭을 해서 신입을 배정해준다.

 

인력팀이 최대한 양쪽의 의사를 존중해주겠다는 형태인데, 사실 이게 좋은 방식인지는 진행을 해봐야 아는 거라... 개인적으로 이 방식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도, 부정적인 의견도 없다. 일단 주어진 상황에서 즐겁게 임하는 수밖에...

 

그래서!!

오늘의 포스팅은, 우리가 받았던 질문과 그때 해줬던 대답의 일부를 정리하기로 했다. 어딘가의 신입사원이라면 마땅히 궁금했을 질문들을 골라서 올려본다. 그리고 이 과정을 하면서 어떤 신입이 매력이 있는지 깨달았는데, 그걸 마지막에 정리해보려고 한다. (왜 내가 어떤 곳에서는 선호하지 않는 인력이었는지도 알겠더라... 에헴)

 

미래의 신입사원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


Q. (그 부서에서 일하기 위해서) 신입사원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요?
"대학에서 경험한 것들, 인턴으로 했던 것들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인공지능이 핫하다고 그 역량을 갖춰서 지원했지만 내년, 내후년에 다른 기술이 핫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는 역량이라고 하면 기술, 개발 언어가 아니라 태도와 열정입니다. 내년에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 때 그걸 배울 의지가 있느냐. 그걸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가. 그걸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느냐. 이런 게 중요합니다. 그런 두려움이 있거나 안정적인 업무를 원한다면 우리 부서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어떤 전공과 어떤 경험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질문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IT라면 '저는 java 개발자예요'라든지, '저는 front-end 개발을 해봤어요.'라고 하며 적성과 역량을 맞춰보려고 하는 신입사원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 그들이 아는 걸로 그들을 평가하기엔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 날은 훨씬 길다. java를 모르면 배우면 된다, back-end 개발을 안 해봤으면 해 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거다. '당신은 할 의지가 있는가?'

 

 

Q. 저는 데이터 분석 업무 지원자인데요,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할 수 있나요? 
"데이터 분석 업무를 당장 하라고 하면 할 수 있나요?"

우리 팀에서는 본인이 희망한다면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도 과제도 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데이터를 이해해야 합니다. 단순히 '이게 어떤 데이터다'만을 알아서는 데이터 분석에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가 힘듭니다. 그 데이터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왜 유의미한 변수가 될 수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당장 분석을 하지 못한다면 그 데이터를 적재하고 가공하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결국 분석에는 도움이 될 테니 어느 쪽을 먼저 하게 되더라도 좋은 기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 분석의 직군이 매우 핫하다. 하지만 슈 과장도 대학교 졸업 논문을 쓸 때 데이터 분석을 해봐서 알지만(정확히는 회귀분석이었다) 그때는 바로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막상 프로젝트를 나가보면 생각보다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안타깝게도 연차가 높거나 바로 분석 과제를 수행하러 간다면 그 누구도 그 데이터가 뭔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차가 낮다면 데이터의 속성이나 그 데이터가 쌓이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는 업무를 배울 수 있는 프로젝트가 주어진다면 즐겁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전히 와 닿지 않는다면 다음의 예를 들어보겠다. 당신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개인고객 중에 대출을 갚지 못할 위험이 있는 고객을 찾아내야 한다면 어떤 변수를 사용할 것인가? 연봉? 직업? 사는 집? 정규직 여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름 대답을 했다고 가정하고...) 자 그럼 다음 질문이다. 당신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기업고객 중에 대출을 갚지 못할 위험이 있는 고객을 찾아내야 한다면 어떤 변수를 사용할 것인가?

 

첫번째 질문에 비해 확실히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분석을 한다고 할 때, 이런 지식 없이 당신은 분석을 할 수 있을까? 선배가 다 찾아서 알려줄 거라고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싶어요'라고 한 부분은 어디서 나타나는 것인가?

 

 

Q. (그 부서는) 고객사가 더 까다롭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가요?
"그렇게 소문이 나있는데, 계속 이 Industry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어려울 수도 있고 까다로울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고객이 FM이기도 해서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Industry와 달리 저희는 우리가 고객이 되기 때문에 고객은 언제나 선을 지킵니다. 그리고 이름이 다 알려진 규모의 회사들이기 때문에 나쁜 소문이나 이미지가 나빠질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국 고객은 어느 Industry를 가도 사람과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비슷할 것 같습니다. 나쁜 사람을 만나면 힘들고 좋은 고객을 만나면 좋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입사원에게 고객을 직접 상대하라고 절대 시키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배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우면 됩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아닙니다.ㅎ"

이 블로그의 다른 글을 본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감을 잡았을 수도 있는데, 슈 과장은 금융 Industry에 몸담고 있다. 입사해서 금융 고객사만을 상대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소문도 많이 들었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대답은 항상 같았다. 물론 욕 나올 정도로 나쁜 고객도 만났었지만 (화가 나서 화병이 날 뻔한...)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 헤어지고 나서는 (누군가가 '추억 보정'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다 좋은 고객이었지'하며 털어낼 수 있었다.

 

금융 고객은 대체로 몰라서 답답하면 답답했지 누군가를 노예 취급하거나 하대하는 경우는 겪어보지 못했다. 일을 많이 주는 걸로 욕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억울한 마음으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면 자기들 내부적으로는 더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금융사 이직에 대한 마음은 싹을 뽑아버렸다. 연봉이고 뭐고... 어휴. 그들은 고객일 때가 좋다.

 

 

Q. 저는 ML/DL이 하고 싶은데, 그 부서에서 할 수 있나요?
"ML/DL은 일이 아니에요. 기술 요소입니다. 내년이면 안 할 수도 있고, 그 이후에는 다른 기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를 조금 더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냉정하게 대답했던 부분이었다. 아마 그 신입은 당황하거나 상처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날들은 질문의 절반은 '데이터 분석이 하고 싶어요', 'ML/DL이 하고 싶어요', '알고리즘 개발/모델링이 하고 싶어요'가 너무 많았다. 단 한 명만 '데이터 분석을 해서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기술이 핫한 키워드인 것은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뜨고 있고 그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하지만! 그건 HR 면담까지만 하도록 하자. 실제 현업부서에서 그렇게 말하면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실제로 우리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ML/DL이 뭔지 알고 묻는 건지 의문일 정도로 이 질문은 슈 과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 'ML/DL이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 라고 다시 물었다.)

 

금융 고객을 상대로 IT사업을 하는 우리 부서에서 'ML/DL이 하고 싶어요'보다는 차라리 '저는 은행 프로젝트 가고 싶은데, 가능한가요?'라고 묻는 게 더 좋은 질문이었다. 솔직히 누구 한 명이 이렇게 질문을 했다면 나는 무. 조. 건. 그 직원을 뽑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단 한 명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Q. 팀 업무에서 제안/개발/데이터 분석의 업무 비중이 어떻게 되나요?
"팀에서 업무 비중은 개인별로 다르기도 하고, 시기별로 다른 것 같습니다. 제안이 많을 때는 모든 팀원이 제안서를 쓰기도 하고, 프로젝트가 많으면 모두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업무 분장을 할 때는 개인의 역량에 맞춰서 분장을 하기도 합니다. 프로젝트 나가서 누군가는 데이터 적재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front-end 개발을 하고 그런 식이죠. 의사를 표현하면 최대한 존중해주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것보다 훨씬 이상적으로 대답했다. "원하는 업무로 드립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옆에 계신 과장님이 굳이 솔직하게 대답해주겠다고 하면서 첨언을 하셨다. "신입사원은 들어오자마자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라고 말이다. 이 말에 100% 동감한다. 아무리 주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으면 당장 해야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걸 지원하는 신입사원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데이터 분석만 하는 부서를 가면 분석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부서는 많지 않다. 모든 부서에는 눈코입귀가 다 있다. 무 자르듯 역할이 나뉘지 않는다. 우리도 지금 아주 유능한 사원 2년 차가 매일 아침에 뉴스 보고 중요한 뉴스를 공유하는 일을 한다. 회의감을 느끼고 퇴사하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그걸 그 사원보다 연봉이 훨씬 많은 사람이 할 순 없지 않은가? (하면 땡큐지만, 회사는 매우 짜증 낼 것이다.)


이 외에도 질문은 많았으나 대동소이했다. 매우 특이한 질문은 도움이 안 될 테니 제외하겠다.

 

그래서 누구를 추천했냐? 솔직하게 적어주겠다. 그때 점수를 매겼던 사람 3명 이외에는 인력팀만 아는 점수들이다. 그 날 우리는 우리가 대화한 신입직원과 대화하지도 못한 신입직원(우리 부서에 관심이 없어서 만나지 못했다)에 대해 점수를 매겼다. 놀랍게도 우리가 대화한 신입이라고 더 좋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했던 질문이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달까.

 

최고 점수를 받은 신입은 그의 관심사, 이력이 '뭐든 다 시켜도 되는' 직원이라고 보이는 사람이었다. Front-end도 해보고 back-end도 해보고 관심 영역에 특정 industry도 없고 그냥 전반적 개발을 다 해보고 싶다고 한 경우 높은 점수를 줬다. 우리가 front-end back-end 개발을 다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업무를 줘도 할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관심사, 인턴 경험 등 모든게 금융인 신입도 있었다. 금융에서 데려가라고 인력팀에서 뽑은 것 같은 신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중간 점수를 줬다.)

 

즉, 심사 기준은 1개였다. 우리 부서에서 무엇을 하게 되어도 나가지 않을 신입. 이게 전부였다. 금융을 하고 싶어서 '금융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이 포장한 직원들은 다 중간 점수를 줬다. 그들의 기대치를 우리가 충족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지원하는 취준생이나 신입사원들이 이 말을 보고 '와...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어쩌라는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어쩔 수 없다. 1달 만에 신입이 퇴사하는 경우도 봤고 1년 못 채우고 나간 경우도 봤다. 놀랍게도 거의 다- 아주 열정적이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이었다. 근데 1년 차에 그걸 하지 못해서 나가버린 것이다. 오히려 '어떤 업무든 다 좋아요'라고 하면서 스펙이나 개발/분석 역량이 빼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나가지 않고 남아있었다.

 

뛰어난 후배가 1년 미만 있는 것보다 평범한 후배가 오래 있는 게 좋은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만약 임원 말고 현업부서를 만나서 당신을 어필해야 한다면, 미친 열정 말고 미친 적응력을 어필하는 것이 좋다. 스펀지처럼 다 흡수할 거고, 뭐든 배우면 다 즐거울 것 같다고 하는 사람 말이다. 바쁘면 바빠서 즐거울 것 같고, 여유가 있으면 그 시간에 다른걸 더 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고, 무한 긍정으로 생글생글 웃는다면 당신을 뽑지 않을 사람은 없다.

 

미래의 후배들에게 모쪼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점수를 준 후배들이 우리에게 온다면 모쪼록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우리들 옆에서 말이다. ^^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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