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회사를 검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보통 컴퓨터 전공일 것이다. (컴퓨터공학이거나, 컴퓨터학...) SI회사에서 하는 일이 그 전공에 적합한 업무이기 때문인데 스텝성 업무 즉, 인사/재무/회계와 같은 업무를 제외한 코어 업무는 결국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오늘은 그 두 업무인 SI와 SM 중 SI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SI회사에서 SI라고 하면 개발 중에서 개발 직군이다. 여기서 '개발을 한다'라고 하면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뜻인데, 좋게 말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직군이고 나쁘게 말하면 제일 고생하는 직군이다. 실제 System Integration이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SI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특징) SI 업무는 외부에서 이루어진다.
SI 개발자들은 프로젝트를 외부에서 수행하게 된다.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몇 개월, 길면 몇 년까지도 프로젝트 사이트(외부 근무지)에서 일을 해야 한다. 소속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돈을 주는 고객사 건물에서 일을 하게 된다. 소속은 A사이지만, 일은 B사에게 하는 거고 B사의 말이 더 절대적인 기간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2. (단점) 소속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나 소속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내가 A사에 어렵게 취직했는데 B사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본사의 근무환경, 방침, 공지, 복지에서 비껴가는 경우도 많고, 소식이 늦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나의 회사 A사는 재택근무를 하는데 고객사 B사는 재택근무를 안 한다. 그러면 나는 B사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할 수 없다. 그리고 A사의 창립기념일이 3월인데 B사는 7월이다, 그러면 나는 B사 창립기념일에 쉴 수가 있다. 만약 창립기념일에 쉬지 않는 회사라면 나는 그 누구의 창립기념일에도 쉴 수가 없다.
3. (장점) 일을 하기 위한 일 말고, 내가 해야 하는 일만 할 수 있다.
고객사에 있다는 것은, 사내 정치도 안 해도 되고, 이상한 회식도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고객사와의 정치나 회식은 영업이 하거나, PM/PL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자인 나는 그런 일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일을 하기 위한 일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계약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선을 그을 수도 있다. 계약서에 내가 해야 하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단, 그 일이 절대적으로 많을 수 있다는 게 함정...)
4. (단점) 내 자산을 축적하기가 힘들다.
업무가 고객사의 시스템을 개발해주는 일이다 보니 개발이 끝나고 계약이 끝나면 그 모든 것을 주고 나와야 한다. 2년을 열심히 만들었지만, 다 만들고 인수인계를 하면 남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만든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인 것인데 이게 크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개발한 내용을 토대로 뭔가 계속 쌓아갈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그 소스코드까지도 고객에게 줘버려야 하기 때문에, 내가 다음 프로젝트를 간다면 난 다시 백지에서 개발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개발자의 성향에 따라서 조금 다를 수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줘버리고 계속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5. (장점) 고객사로의 이직의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의외의 장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SI 직군은 결국 영원한 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나 돈을 받고 계약을 하고 고객에게 시스템을 개발해줘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이 될 기회가 오기도 한다. 프로젝트에서 고객의 눈에 들었을 경우, 고객의 오퍼가 오기도 한다. "너 괜찮은 것 같은데, 우리 회사 오지 않을래?"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경력 채용으로 가게 되는 것이고, 고객의 추천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유리하게 갈 수 있는 것이다. 검증된 인력이니 고객도 반기는 편이다.
실제로 주위에 고객사로 이직한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최근에 아는 분이 이직을 한다고 하셔서 이직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고 물었었다. 내심 '돈'이라고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우리 회사를 떠나는 게 그렇게 아쉬운데도 불구하고 떠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라고 하셨다. "갑이 되고 싶었어요." 을은 언제나 갑이 되기를 꿈꾼다. SI는 그 기회가 본사에서 일하는 사람에 비해 열려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갑으로 가는 경우 '동종업계'인 경우가 거의 없어서 회사에서도 크게 딴지를 걸지 않는다. 인력 유출이니 뭐니 그런 명분보다 "잘돼서 가니 부럽네요. 잘 가요"하며 훈훈한 이별을 하곤 한다.
6. (장점) 기술 측면에서 항상 앞서가야 한다.
내 자산을 축적하기 힘든 단점은 있을지 몰라도, 기술적 측면에서는 항상 앞서가야 한다. 쉽게 말해서 인공지능 기술이 핫하다고 하면 그 역량을 쌓아야 한다. 고객이 돈을 주고 우리에게 요청할 것이 '우리 회사 인공지능(!?) 만들어주세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공부하고 연구하고 배우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직군이기도 하다. 모르는 것에 이해해주는 것은 아주 잠깐일 뿐이다. '최초'의 타이틀인 경우에만 배우면서 일하는 것을 이해해준다. 하지만 누군가가 '최초'를 했다면 이제는 경험자와 전문가의 싸움이다. 기술적으로 항상 최신 트렌드를 접하고 있는 개발자는 뒤쳐질 수가 없다. 때로는 대체 불가능한 유능한 인재가 되기도 한다.(이직의 기회도!?)
7. (특징) 소속 회사가 아닌 SI 프로젝트가 경력이 된다.
SI직군은 항상 이력서를 써야 한다. 프로젝트 들어갈 때마다 이력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확인하는 건 당신이 A사에서 몇 년 일했는지가 아니다. '대학 졸업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다. SI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하나씩 쌓아갈 때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수행했던 업무와 사용했던 기술이 당신의 커리어가 된다. 내가 데이터 분석을 몇 년 했는데 그게 주로 카드사였다라고 하면 당신은 그 영역으로 금융업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제조회사의 수요예측 시스템을 구축한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제조회사에서 환영받을 것이다. 어느 업무를 맡게 되는지는 대체로 개인에게 선택권은 없지만, 그 경험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력이 쌓이고 짬밥(?)이 생기면 조금 더 어려운 업무, 더 중요한 업무를 달라고 손을 들어야만 대체 불가 인력이 될 수 있다.
이게 외부에서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실제로 사내에서도 전문가를 찾고, 경험자를 찾기 마련이다. '박 과장이 외환업무 전문가야'라는 타이틀은 사내에서도 생길 수가 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 수행 경력으로 사내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더 어려운 과제, 더 큰 과제, 달성한 성과와 같은 것들로 사내에서도 평가가 된다.
주위에 이직한 사람들이 나에게 부럽다고 한 것이 그거였다. 입사해서 쉼 없이 프로젝트를 나갔던 나와 달리 대부분 본사에서 일을 하신 분들이었는데 실제로 인정을 많이 받지 못하고 갔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내가 부러웠다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그랬는데... 갑 회사로 이직한 건 그들이라는 건 반전 아닌 반전이었다. (쩝)
8. (장점) 회사 구경 원 없이 한다.
사실 하나의 회사에 입사하면 다른 회사를 볼 일은 상상도 못 한다고 보는 게 맞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회사를 갈 일이 있을까? 단순히 미팅을 위해서 간다고 하면, 접견실에서 맞이하는 회사들도 있어서 구경을 할 일은 까마득한 일이다. 하지만 SI 프로젝트는 권한의 차이가 조금 있지만 그 회사 구경은 원 없이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일하는 자리도 보고, 회의실도 이용하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이건 반 농담이고)... 그들의 기업문화, 복지, 사내 시스템, 때로는 업무 수행하는 모습까지 볼 수가 있다. 위에 5번에서 고객사에서 이직 오퍼를 하는 경우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아는 상태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가 SI 프로젝트를 하러 간다고 해서 고객이 이 모든 것을 문서나 시스템 권한으로 다 열어줄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그런 일은 절대 없다. 그보다는 고객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고, 듣게 되는 것들이 많다고 보면 된다. 내가 말단 개발자라서 고객에게서 들을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고객을 대면하는 리더들(PM, PL)이 잘 아는 편이니 그들에게 물어보면 신나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슈 과장도 같은 사이트 두 번 간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이 돌아다녔다.(고객사가 동일한 적은 여러 번 있음) 그때마다 그 회사에 대해 많은 것들을 듣게 되는데, 정말 회사 기업문화는 참 다양하고... 한편으로는 정말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느끼곤 한다.
9. (단점) 평생 개발을 하지 않는다.
SI 개발자가 가장 매력적일 때는 개발은 잘하는데 몸 값은 낮을 때이다. 몸 값은 보통 개발자로서 일한 기간과 비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몸값이 너무 비싸서 개발자로 외부에서 일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런 경우 회사에서 관리자(PM, PL)로서 프로젝트를 내보내거나 더 이상 내보내지 않을 때가 온다.(PM, PL은 개발을 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다!) SI가 끝난다고 좋아할 수도 있지만 사실 개발자로서의 업무가 끝난다는 우울한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분들의 프로젝트 대응 능력 노하우는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PM PL 자리는 많지 않기 때문에 유휴인력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참고로 유휴인력은 대기업/중소기업에서 정규직 직원에게 잘하면 소화해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프리랜서라고 하면,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 다 도맡아서 하게 되거나(당신 인건비가 2배일 수가 있다) 당신 비용으로는 팔리지 않아서 일이 없어서 손가락 빨고 앉아있어야 하기도 한다. "나이가 많아서 별로..."라는 피드백이 올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영업으로 스스로의 업무를 돌리기도 하는데 나이가 많으면 대체로 사이트에서 점점 보기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SI 개발자의 삶이 짧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우물만 판 업무의 전문가는 어떠한 젊은 인력도 대체하지 못하는 노장 중 노장이다. 이들은 능력 있는 개발자가 오류를 내서 처리하지 못하는걸 한방에 해결하기도 하고, 개발자가 일하다가 죽는 일이 없도록 고객과 업무를 정리해오는 카리스마도 있다. 그 레벨까지 놀라가려면 위의 7번에서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된 커리어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SI 윗사람들의 인생 제2막에 대해서 나중에 수다 떨 수 있으면 해 보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도 저도 제대로 안 해본 SI 개발자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10. (단점) 프로젝트 때는 야근이 많다.
SI의 특징. 프로젝트 특징. 이런 걸 검색하면 다들 그럴 거다. 밤새는 게 다반사다, 야근은 기본, 주말에도 나와야 한다. 이런 식이다. "사실인가요?"라고 물으면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슈 과장이 일했던 가장 최근 프로젝트에는 프로젝트 기간 전체 통틀어서 주말에 단 한 번도 안 나온 사람이 있었을 정도다. 그리고 야근도 대체로 1주일에 1, 2번 했던 것 같다. 고객도 52시간 적용을 받다 보니 먼저 퇴근해버리고, 덕분에 우리도 그 눈치를 안 봐도 되기 때문에 다들 일찍 일찍 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들어보니 한 번도 야근 안 하고 프로젝트를 마친 곳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SI 하면 죽느니 구르니 라꾸라꾸 침대를 갖다 놓고 밤새 코딩해야 하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 라떼시구나' 하면 된다. 슈 과장 신입 때 있었던 일들이다. ^^
그래도 야근이 많을 수 있긴 하다. 프로젝트 막바지엔 정말 매일 야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SI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텝부서를 가도 있을 수 있고, 컨설팅을 해도 있을 수 있다. SI에서 단 한 번도 야근 안 하고 더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바래야 하는 것은 내가 그 편한 프로젝트에 들어갔으면~하는 것이다.
11. (장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프로젝트는 '팀을 꾸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 뜻은 내가 입사해서 배정받은 부서와 다른 팀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을의 소속으로서 우리 회사 사람들하고만 일할 수도 있지만, 규모가 조금 커지면 을병정 회사가 다 같이 섞여서 일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면서 정말 마음 잘 맞는 사람들 만나면 정말 즐겁게 일하게 되기도 한다. 슈 과장의 회사 부서 사람들은 다들 나이가 많았고 슈 과장이 막내였던 적이 꽤 길었는데 프로젝트에서 팀을 꾸리면서 또래의 사람들을 만나 일하게 되기도 했고, 여자가 많지 않은 SI업계에서 같은 여자 동료를 만나서 꺄르르 꺄르르하며 일을 하기도 했었다. 인연이 되어 꾸준히 연락하고 가끔 밥도 먹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은 이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재산 중 하나이다.
생각이 나면 더 포스팅해보겠지만 일단 특징은 이 정도다. SI 개발자로 입사해서 계속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긴 프로젝트 끝에 긴 휴가를 만끽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사이클을 포기 못해서 계속하기도 한다. 다음에 SM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지만, SI는 프로젝트 끝나고 장기 휴가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휴가 기간 중 2주 정도 유럽을 가볼까?" 이런 느낌?(아주 좋은 느낌이다.ㅎㅎㅎ)
SI 개발자의 장점이 분명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고 일이 힘들기 때문에 각오가 없으면 견뎌내지 못하기도 한다. 선택의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장단을 알고 선택하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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