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회사에서 '영업', 'Sales'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쉽게 '영업'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이 'Sales'를 하는 일인데, 사실 일반 B2C 회사들과 달리 SI의 영업은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혹시 SI업계에서 영업이 뭐 하는 건지 궁금할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이야기해보겠다.
우선, 슈 과장은 영업 직군이 아니다. 한 번도 영업 직군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영업과 멀리에서 일해본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영업(담당자)이 누구인지 모르고 일해본 적도 한 번도 없다. Sales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Sales 활동을 한 것은 한두 번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디테일하게 알지 못하고 다소 부정확할 수도 있지만,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만은 미리 이야기할 수 있다.
자, 그럼 SI의 영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1. SI에는 영업이 있고, Sales가 있고, 마케팅이 있다.
셋이 다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다소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차례대로 슈 과장이 생각하는 셋의 정의를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1.1 영업
영업은 담당하는 Account, 즉 고객사가 있다. B2B 영업이기 때문에, 영업 1명은 담당하고 있는 회사가 몇 군데가 있다. 보통 꾸준한 관계를 유지해야 좋은 경우 이렇게 하기도 하고, 한 고객이 주는 사업의 규모가 큰 경우에도 이렇게 한다. 밀착해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밥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영업을 하는 형태다. SI에서 고객은 흔히 '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인데, 그중에서도 고객사의 IT부서들이 그 대상이다. 그 회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IT사업이 뭔지 알아내고, 규모를 알아내는 일,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일을 영업이 하는 편이다. 보통 한해 예산으로 편성되어 있는 이 사업의 목록은 이들에게 재산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부서는 한해의 KPI를 이 사업 예산을 바탕으로 설계하기도 하고, 월별 영업 활동을 이거에 맞춰서 진행하기도 한다.
1.2 Sales
세일즈는 Account를 배정받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기도 하다. 이 점에서는 영업과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차이는 영업은 고객관리를 한다면 세일즈는 판매하는 솔루션, 기능 등 회사의 오퍼링에 대해서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고객사에서 부르면 가서 설명을 해주거나 요청사항에 대응하는 게 주요 업무인 사람들로서 시장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넓은 범위에서 잘 아는 편이다. 이들은 사업의 규모나 예산에 대해서는 크게 모르는 편이고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당사의 서비스를 개선하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물론, 이들의 KPI도 영업에 따른 매출 금액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고객과 밥 먹고 술 먹는 영업과 다르다.
1.3 마케팅
B2C와 같은 마케팅과 조금 다른 '마케팅'을 한다. SI회사의 마케팅은 컨퍼런스/세미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회사가 너무 작거나 자체 홍보할 거리가 많지 않은 경우 컨퍼런스를 주최하지 않는 편이지만, 자체 솔루션이 있거나 자랑하고 싶은 경험이나 장점이 있다면 컨퍼런스를 하는 편이다. 이때 설명을 듣고 연락을 하는 고객사를 상대로 추가 세일즈/영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IT업계에서 종종 공짜 컨퍼런스/세미나를 만나게 되는데, 이건 결국 마케팅이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각 세션이 그 회사의 솔루션/사례 소개이다. 설명을 들어가는 당신보다 설명하는 그 회사가 간절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막상 들으면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없다. 왜냐? '궁금하면 500원~'... 연락 달라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영업이 세일즈고 마케팅이고 다 하는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역할에 대한 경계가 특별히 있진 않다. 회사에서 어떻게 나누느냐의 차이, 회사 규모의 차이다. 마케팅이 아예 없는 회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 비용이 사실 어마어마해서 하기 쉽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SI의 영업은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2. SI의 영업은 신입사원의 영역이 아니다.
SI 영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신입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선은 고객에게 '내가 영업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레벨은 되어야 한다. 내가 고객인데 어디서 신입이 와서 담당자라고 하면 못 마땅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힘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담당자라니, 뭘 알까? 믿을 수 있을까? 말은 통할까? 하는 걱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신입은 영업이 갖춰야 하는 배짱, 자신감, 센스가 아직은 없기 때문에 고객 대응에 서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신입사원을 영업에 배치한 적이 있었다. 3년 못 버티고 퇴사해버렸다. 영업 특성상 항상 정장을 입고 다녀야 했던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었고, 일이 밤낮의 구분이 없어서(낮에는 회사 일하고, 저녁에는 고객이랑 밥/술 먹고..) 힘들어하기도 했다. 항상 읍소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다. 선배들은 또 다 부장급이어서 팀마저도 훈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고 그 부서에 신입이 오는 일은 다시는 보지 못했다.
3. SI 영업은 네트워크가 절반이다.
낯선 사람, 처음 들어보는 회사와의 교류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아는 사람 소개가 절대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더 좋은데 왜 우리가 아닌 경쟁사랑 했을까?를 보면 인맥이 그 이유인 경우도 더러 있다. 누가 누구를 소개해줘서, 서로 아는 사이라서,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등등의 이유가 가십거리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인맥인 경우는 어떻게 경쟁해도 이길 수 없을 때가 있다. 반대로 우리가 인맥으로 소개받았거나 친한 사이면 너무나도 쉬운 사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네트워크가 정보를 주기 때문에 SI 영업에서는 네트워크가 생명이다. 예를 들어서 '챗봇을 A사에서 만들었는데 어떻게 했는지 누가 했는지 궁금하다.'라면 어떻게 그 정보를 알아낼까? 결국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다. A사에 지인이 있다면 연락하거나, 챗봇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영업력'의 차이는 그 정보를 알아내냐 못 알아내냐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네트워크, 사람관리, 인맥 등 이런 것들은 SI에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다. 내가 SI 개발자라면 조금 영향이 적겠지만, 내가 SI회사에서 다른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정보통은 알아두면 만사형통이다. 역설적이게도 SI는 많은 것들이 문서로 정리되지 않는다. IT인데 시스템화 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물어보고 연락하고 설명을 듣고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친하게 지내지는 못해도, 나쁘게 지내지는 말자.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건 나쁜 말도 순식간에 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4. SI 영업은 출장이 많다.
SI 영업은 누가 나를 보러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영업은 가는 사람이다. 갑이 부르면 을이 가고, 을이 부르면 병이 간다. 그 반대가 일어나는 일은 정말 극히 극히 극히 드물다. 반대로 가는 경우라고 하면 갑이 너무나도 을의 회사가 궁금하다던지, 을이 병의 회사랑 일하기 전에 기업실사를 하고 싶다던지 하는 이유다. 그게 아니라면 방문 요청을 갑이 하고, 을은 준비해서 가는 것이다.
갑의 용건을 듣고 영업이 필요한 사람을 데려가는 것도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갑이 "너네 기술에 대해서 더 듣고 싶어"라고 한다면, 영업이 설명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가 있다. 갑에서도 엄청 유능한 담당자가 벼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영업이 정식으로 당사의 유능한 엔지니어를 섭외해서 갑을 만나러 가야 한다. 그 대응을 잘못하면 영업이 틀어질 수도 있다. (엔지니어는 대체로 언변이 뛰어나진 않아서... 가끔 고객을 가르치려 들거나... 너무 솔직해서 팔려는 물건의 매력을 떨어뜨리거나... 하는 분들이 있다...)
5. 제안의 승패는 영업이 좌우한다.
SI가 아무리 인맥, 네트워크, 세일즈라고 해도 결국 큰 사업은 '제안'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고객이 '제안요청서(RFP)'를 전달하면 그걸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 열심히 작성해서 제출하는 게 제안서다. '우리 회사는 고객님의 요청사항을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잘 만들어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자료다. 경쟁입찰이라고 해서 공정성을 위해 기본 2개의 회사는 참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승패는 영업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업이 제안에서 하는 일은 크게 1) 제안요청서 받아오기 2) 제안요청 내용에 대한 세부 내용 파악/질의 3) 제안서 제출 이런 일이다. 제안의 전체 과정에서 영업이 빠지는 건 제안서 작성과 제안 발표 정도이다. 제안서에서도 가끔 영업이 작성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건 보통 견적이나 회사 증명과 같은 것들이지 기술적인 일들은 아니다.
제안요청서를 받아오기 전에 하는 일들이 또 몇 가지가 있는데. RFI, 정보제공요청서에 대해 대응하는 것도 있다. RFP를 내기 위해 고객이 '정보 좀 줘'라고 하면 그거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의 내용이 RFP에 반영이 될 테니 이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영업은 여기서 RFI를 받아오는 역할도 한다. 받아온다는 게 물리적으로 받아오는 것도 물론 있지만, RFI는 모든 회사에게 주지 않는다. 고객이 너 괜찮네 한번 정보 좀 줄래?라고 하면 받을 수 있는 거라서 영업이 무능하면 RFI도 받지 못하고, 경쟁사에게 유리한 내용이 가득 담긴 RFP를 받아오게 된다. (RFP를 못 받을 수도 있다.)
(제안은 별도로 또 다루도록 하겠다. 제안은 이야기하자면 진짜 끝이 없달까...)
쨌든 영업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정보의 싸움에서 영업이 많이 알아오느냐 하나도 못 알아오느냐가 제안서의 내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간지러워하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느냐, 이건 영업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인맥/네트워크가 좋은 게 중요하다는 이유도 이거다. 생판 남이 나에게 꽃을 달라고 한다면 난 밤새 고민해도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10년 만난 여자 친구가 꽃을 달라고 한다면 정확히 뭘 줘야 하는지 알 것이다. (모른다면 최소한 좋아할 만한 꽃이 뭔지는 알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라는 것이다.ㅎ
6. SI영업은 SI 사업의 허드렛일을 많이 한다.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면, 갑과 을의 관계든 을과 병의 관계든 영업은 항상 있는 편이다. 슈 과장 같은 경우 사업 시작하기 전에 업체의 영업과 미팅도 했고, 사업 착수 준비 과정에서 업체 수행 인력의 투입 서류(이력서, 개인정보제공 동의서 등)를 전달받기도 했고, 견적/계약 이야기할 때도 영업과 이야기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업은 밤낮없이 대응을 해야 했고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오늘 휴가인지 아닌지 궁금해했던 적도 없었다. 항상 연락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실물 서류로 제출해야 하는 경우 그걸 전달해주러 오는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그 회사의 영업이었다. 우편으로 발송해서 주는 분들도 있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는 경우 영업이 빛의 속도로 날아와서 대응해주셨다.
개인적으로 영업을 보면 너무나도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항상 영업을 꾸준히 하셨다. 그 사람들의 성향과 나의 성향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업의 매력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고객과 사이만 좋다면 만나서 수다 떨고, 밥 먹고 하는 일일 테니 괜찮을 것도 같다.
영업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성격을 다 떠나서 연차가 낮으면 안 하는 걸 추천한다. 실제로 대리 정도 되는 영업이 우리 회사 담당자라고 온 적이 있었는데, 우리 회사에서 지독히도 괴롭혔었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등등. 만약 나이 많고 요령 좋은 영업이었다면 어림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힘이 너무 없어서 많은 일들이 생각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도 많고 ("경쟁사에서 챗봇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아봐 주세요." 같은 스파이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견적 비용 예산 이런 이야기에서는 윗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해야 하는데 연차가 낮으면 휩쓸리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연차가 차고, 요령도 생기고, 인맥도 갖춰지면 그때 노려보는 걸 추천한다.
오늘은 SI영업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다. Sales나 마케팅은 SI에서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생략했다. 실제로 영업은 많이 만나도 '제가 세일즈 담당입니다'라든지 '제가 마케팅 담당입니다'라고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간혹 세일즈 담당자를 만나긴 하는데 보통 보유 솔루션이 있는 솔루션 회사인 경우가 많다. 솔루션이 있는 회사라면 확실히 파는 물건이 있으니 다소 나은 편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하지만 SI는 다르다. System Integration 사업은 의류로 치면 "맞춤 정장을 만들어줄 수 있니?"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다. 솔루션 회사의 세일즈인 "'우리 정장'은 이런 거야~"를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는 것과 다른다는 뜻이다.
다음에는 다른 SI회사의 특징으로 포스팅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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