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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회사에서 SI를 하는 이유를 묻는다는 게 다소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안 하는 것뿐이다. 가전 회사에게 가전을 왜 파냐고 물어보고 장난감 회사에게 장난감을 왜 파냐 묻는 것이 어때서? 그저...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서 대답이 다르게 올뿐이다. 마케팅 부서에게 물어보면 매우 마케팅스러운 대답이 올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더 좋은 가전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든지,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이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B2C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다. 지극히 건조한, 차가운, 딱딱한 B2B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SI회사가 SI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SI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일까?"

 

1. 돈. 돈. 돈.!

당연히 돈이 목표겠지. 하겠지만 사실 돈도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쟁취하는 게 물론 목표지만, 전략적 판단에 따라 둘 중 하나만 선택하기도 한다. 돈이 어떻게 나뉘는지 설명해보겠다.

 

1.1 매출

회계에 대해서 얼마큼의 이해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슈 과장도 잘 모른다. 그저 매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비용까지 다 포함된 금액이라는 것이다. SI 프로젝트가 300억짜리다.라고 하면 매출은 300억이라는 이야기다. 그 300억에 무엇이 포함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금액 자체이다. 그리고 그 매출의 규모가 많은 것들을 대외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규모가 큰 사업이 나오면 죽자고 덤비고 사활을 걸곤 한다. 이런 사업이 여러 개 모이냐에 따라 회사의 매출이 1,000억이냐 500억이냐가 나뉘기 때문이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매출이 크다고 좋은 건 아니다. 규모가 큰 사업은 대체로 리스크도 그에 못지않게 큰 법이다. 내가 음식 주문을 받았을 때 햄버거 1개와 햄버거 30개가 같아 보이겠지만, 그 개수가 동일하게 12시까지 배달이 되어야 한다면 햄버거 1개는 쉽게 언제든 만들 수 있는 반면 30개는 사전에 엄청나게 많은 준비가 들어가야 한다. 동시에 30개의 햄버거를 잘 굽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SI도 그런 것이다. 10억짜리 프로젝트 10개와 100억짜리 프로젝트 1개는 다 장단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사고를 치게 되면 100억짜리가 크게 난다는 것이다. 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100억짜리 프로젝트를 챙기는 이유는 1개뿐이다. 매출. 볼륨(Volume) 사업이라고도 부르는 이 사업들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는 사업들이다.

 

1.2 수익

수익은 매출과 다르다. 수익은 매출에서 인건비, 경비 이 모든 것들을 다 빼고 남은 순이익을 말한다. 100억짜리를 해서 1억을 남기든, 10억짜리를 해서 1억을 남기든 1억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얼마를 남겼느냐의 싸움이 되기도 하는 이 사업들은, 수익성이라는 잣대를 놓고 판단해서 남는 게 많다 싶으면 참여하는 것이다. 10억이든 100억이든 남는 게 없겠다 싶으면 하지 않기로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전략적 판단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매출과 수익 두가지를 다 가져갈 수 있는 사업이라면 당연히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업이 많다. 그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단순히 금전적인 척도만으로 결정하는 일은 드물다. 다른 요인들도 많다.

 

 

2. 수행 경험(Reference) 확보

'레퍼런스'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쉽게 말하면 "사업 수행 경험 있니?'에 대한 대답이다.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유형의 사업은 보통 고객사도 수행사도 투자하는 부분이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고객사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하게 되고, 수행사는 실제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나 자원이 요구될 수 있지만 감수하는 편이다. 둘의 목적은 하나다. '처음이라는 깃발을 세우자.' 

 

누구도 해보지 않은 시스템을 개발했다면, 그 이후로 나오는 유사사업을 가져가기에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다른 회사는 모두 수행 경험이 없을 텐데 우리 회사는 "우린 수행 경험이 있어!"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수행했을 때 그 사례가 '실패'라면 이야기가 다소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시장을 선점할 수 있냐 없냐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업이 처음 해보는 것인데 향후에도 많을 것 같다'라고 판단이 되면 대체로 위에서는 참여하는 것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마련이다.

 

"도대체 그 돈도 안 되는 사업을 왜 한 거예요?'라고 묻는 사업들이 있다. 매출도 적고 수익도 안나는 사업... 그럴 때 대답이 "레퍼런스 확보"라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바로 그런 CASE다. 마치 취준생으로 치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올리기 위해 단기간이지만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도 감수하는 그런 거 말이다. SI회사에도 그런 게 있다. ^^

 

3. 고객 관리

돈(매출, 수익)도 안되고, 레퍼런스 사업도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 말아야 하고, 해도 고생만 할 거고, 하기도 싫은 그런 사업이 있다.(생각보다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기로 결정하는 사업이 있다. 놀랍게도 위에서 의사결정이 '참여한다'로 나올 때가 있다. SI 프로젝트 수행까지 가지 않고 제안서 작성(들러리)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쨌든 회사의 리소스를 여기에 쓰는 상황이 생길 때가 있다. "도대체 왜!" 하며 분노하게 하는 그런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도 대답이 있다. "고객 관리를 위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예를 들면 A회사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하는데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업일 때가 있다. A회사만 헐값에 어떻게든 해야 하는, 다른 회사는 절대 안 할 것 같은 그런 일회성 사업 말이다. 그런데 A회사와 앞으로도 계속 일하려면, 내년에 100억짜리 사업이 나오는데 그걸 우리 회사에서 따내려면 이 사업을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고객은 약속을 해주지 않는다. 100억짜리 사업은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금 외면하면 100억짜리는 무조건 날아가는 것이다. 미래의 볼모로 인해 현재 고생을 감수하기로 하는 것이다. 영업적 의사결정이라고도 하는데, 엄청나게 화가 나고 억울한, 불합리한 사업이다. 그래도 영업이 생명인 SI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업이다.

 

4. 인력 Rolling

SI회사에서는 인력 Rolling이라는 것이 있다.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다음에 하겠지만, 회사가 사업이 없다면 월급 멀쩡히 받는 직원이 프로젝트가 없어서 놀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럴 땐 어떤 사업이라도 나오기만 한다면 참여하는 것이 이득일 때가 있다. 회사에서 월급 주고 놀리느니, 고객사에게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조직 개편을 하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으나, 외부 고객사의 상황에 따라 일이 있고 없고가 결정되는 SI회사는 당장 일이 없다고 조직을 개편하면 내년에 나오는 큰 사업을 수행할 인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모두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개편보다는 잠시 그 공백기 동안 돈을 벌 수 있을만한 사업을 수행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5. 후속 사업을 위한 사업

SI 사업이 시스템을 구축해주고 일이 끝나면 인수인계해주고 나오는 구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스템이 그 이후로 개비를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 1차 사업, 2차 사업 등 후속 사업들이 꾸준히 나오는 사업들이 많다. 그래서 1차를 누가 하느냐가 2차, 3차 그리고 계속을 가져갈 수 있냐를 좌우하기도 한다. 1차에서는 다소 손해를 볼지언정 이거 하나를 해내면 후속 사업을 가져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수행하는 사업들이 있다.

 

그리고 1차 2차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하나의 사업을 하면서 IT주관부서와 이야기하면서 다음에 어떤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지 같이 이야기하면서 키워가기도 한다. 사업 수행을 빙자해서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는 것인데, 놀랍게도 이 방법은 고객사와 수행사 모두 win win 하는 방법이다. (고객사도 다음에 무언가 또 해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물건을 만들고 마케팅을 통해 파는 B2C 사업과 달리 SI는 고객사의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매우 수동적인 회사다. 자체적으로 만들어보기 위해 노력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런 게 쉽지 않은 SI회사는 그나마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고객사에서 발주한 사업에 참여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그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100억짜리 사업이 나왔는데 어느 누가 감히 '우린 안 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참여했다가 떨어져서 못하게 됐다가 차라리 나을 때가 많다.

 

SI회사는... 어쩌면 당장 밥상에 밥을 올려야 하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일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오늘 주어진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향해 가고, 돈을 많이 준다면 몸이 축나도 쫓아가고(매출), 돈도 많이 주고 몸도 편하다면 감사할 따름이고(수익), 다음에 더 단가가 높은 일을 하기 위해 헐값이라도 기회만 준다면 일을 하는(레퍼런스), 아니면 여태 일을 줬던 사장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일을 하든지(고객 관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일을 하는(인력 Rolling), 일 여건이 좋다는 그 회사에 발이라도 들여서 더 안정적인 일거리를 얻어내자는 마음으로 가서 일을 하든(후속 사업을 위한 사업)...

 

SI회사에서 이런 의사결정을 들으면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그런 사업을 해야 해?"라고 의문을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럭셔리한 마음을 가진 개인과 달리 회사는 당장 우리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다. 그렇게 측은하고 안타까운 존재가 SI회사의 주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슈 과장은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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