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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포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영화관에 나타난 어린 여자아이들을 봐서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아직도 '바비 영화 = 어린 여자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공식으로 적용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보고 싶은데 애가 있으니 데려가야겠다'라는 핑계라면 오케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같이 영화를 본 아이는 이게 당최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선과 악도 분명치 않고, 무엇을 대상으로 싸운 건지 파악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엔딩도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나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 Ken은 Ken이라는 이유로 결국 Barbie가 이기는 뻔한 영화였던 거 아니냐는 그런 물음을 내포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영화감독이 그냥 Killing Time용 영화라든지, 돈 벌기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Barbie라는 문화적인 상징을 집어 들고 영화를 만든 감독이 Greta Gerwig인 이상 그렇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걸어 나오는 길에 '그래서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던 걸까?'를 생각해 보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꼭 무언가 될 필요는 없다"


영화 시나리오 순서를 무시하고 시대순으로 나열하자면 남녀 관계는 다음과 같이 발전했다.

남자가 중심이 되는 가부장적 사회, 그리고 (바비의 주장대로라면, 바비의 등장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바비가 롤모델이 되어서 그런 여자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한 획을 그으면서 사는 사회.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Ken과 현실세계의 남자와의 대화에서 이야기해 주듯이 "(가부장적인 사고를) 더 잘 숨기게 된" 남자들이 공생한다.

 

Greta Gerwig 감독은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맞는 거야?"

그리고는 그 모든 문제제기와 답을 찾는 역할을 Barbie(Stereotypical Barbie)에게 준다.

 

주인공 Barbie는 초창기에 만들어진 그냥 예쁜 바비다. 그래서 요즘에 나온 바비 같이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성취를 이루어내지도 않았다. 자기 아니면 살 수 없는 남자, 매력적인 외모가 전부인 아주 초창기 바비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모든 바비의 성공이 나의 성공일 때는 문제가 없다가 자신이 다른 바비와 다른 하나의 유니크한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게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자들이 갖고 있는 딜레마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부터 짊어지고 있던 것들을 털어내지도 못한 상태로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여자도 할 수 있다'라고 누군가가 당당하게 외치며 개척한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뻐야 하고, 아니면 덜 예뻐도 되니 사회적으로 무언가 성취하는 주체적인 여성이 되자! 이 흐름으로 걸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린 다 성공할 수가 없다. 그건 남자도 여자도 마찬가지인데, 남자는 이러든 저러든 그냥 남자(He's just Ken)인데 여자는 아닌 것이다.(Barbie is everything.)

 

그런 이 사회적인 현상에 Greta Gerwig 감독은 어느 성별의 손을 들어주는 행위를 하는 대신, 모두의 어깨에서 그 부담을 내려준다. Ken도 그냥 Ken이면 되는 것이고, Barbie도 그냥 Barbie면 되는 것이다. 어떤 특별한 사람이 되거나 성취를 할 필요 없이 그냥 자기만의 인생을 살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평등 문제에서 항상 일어나는 문제는 그거였다. 사람들은 항상 어느 한쪽의 힘이 세지면 다른 쪽에 힘을 실어줘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남자가 사회진출을 많이 하고 여자가 못한다고 여성 쿼타(Quota)를 준다든지, 여자는 육아휴직을 가는데 남자는 못 가니 이제 남자도 갈 수 있게 해 준다느니 등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양쪽에 추가하는 것으로는 영원히 그 일이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바비들이 바비랜드를 다시 되찾는 것과 별개로 바비에겐 바비의 삶을 주었던 것이다. "그냥 살면 된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는 하이힐에서 내려와서 버켄스탁을 신고 부인과로 걸어 들어가는 Barbie가 나온다. 이제 사람이라 부인과를 가야 하는 '여자'가 되었다는 의미라기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당당히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만약 하이힐을 신고 들어갔다면 '여성성'에 대한 의미였을 텐데 버켄스탁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젠 일상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럼 되는 것이다.


"우리는 꼭 무언가 될 필요는 없다. I am Kenough"

 

2023.07.24 22.12

영화 본 날 : 20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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