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업무가 따로 있어도, 사원 때는 말하지 마라
자극적인 제목이다. 하지만 꼰대, 라떼로서 말하건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고 확실해서 타협을 할 수 없다면, 회사생활을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현재 IT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주위 기사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A급 개발자'만 부족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단순히 모두가 언텍트로 넘어가면서 IT에 투자하는 금액이나 요구가 늘어나서 이런 대란(=개발자 부족)이 일어난 것도 있지만, SI업계에서는 작년에 나왔어야 했던 IT사업(즉, 집행해야 하는 IT 예산이 사용되지 못하고 밀렸다)이 올해 다 같이 나오면서 프로젝트가 몰린 상황이기도 하다.
부연설명이 필요하다면... 모든 기업은 매해 예산을 잡는다. 그게 사업비든, 마케팅비든, 인건비든, 회식비든... 그 예산에는 IT 예산이 들어가곤 하는데 작으면 '시스템 개선'이 되기도 하고, 크면 '차세대'가 되기도 한다. 이는 그 해에 허락을 받고 사용하는 예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내년에 그 예산을 다시 허가받기 싫어서라도 그 해에 어떻게든 집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년은 '코로나'라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해서 대부분 그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것을 꺼려했다. (엉뚱하게 외주 사람 불러서 프로젝트했다가 확진자 나오면 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으니까...) 덕분에 작년에는 SI회사들은 사업이 없어서 죽을 쒔는데 그 사업이 21년도에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 19와 생활하는 법을 알게 된 것도 하나고, IT팀이 그렇다고 놀 순 없으니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달까. (내부적으로 매뉴얼도 생겨서 이젠 대응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전체적으로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개발자만 부족한 게 아니라 PM, PL, 사업관리도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개발자는 5명이 들어갈걸 3명이 들어갈 수 있으나 (같은 양의 일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해 금지), PM, PL, 사업관리는 언제나 1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인원이 부족해서 프로젝트 착수가 불가능한 것이다 (1명이 부족하다는 건 0명이라는 뜻.. 작은 프로젝트는 PM과 PL이 한 명이기도 하다). PM, PL은 기본적으로 경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땜빵을 하게 하진 않지만 사업관리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자는 생각으로 연차가 낮은 사원/대리를 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개발자는 사업관리를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 사업관리의 업무는 개발자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업무들이기 때문이다. (궁금하다면 지난 포스팅 참고...)
2020.06.18 - [슈르의 오피스라이프/SI 이야기] - [SI이야기] SI프로젝트에서 사업관리가 하는 일
[SI이야기] SI프로젝트에서 사업관리가 하는 일
오랜만에 R&R(Role & Responsibility)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영업, PM, PL에 이어서 오늘은 '사업관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지난 포스팅 참고> 2020/05/08 - [슈르의 오피스라이프/SI 이야기] - [SI이야
ebongshurr.tistory.com
이번에 있었던 일이다. 프로젝트 수행팀을 꾸리던 PM이 PL도, 수행 팀원도 알차게 구성했는데 사업관리가 부재했다. 그래서 1~3년 차 사원들에게 메일을 보내셨다. 프로젝트 사업관리를 배워볼 생각이 없냐고 말이다. 이 정도면 정말 나이스 한 PM이다. 사원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일을 주려고 하셨으니 말이다. (보통은 그냥 불러다가 설명해주고 시키면 끝이다.) 근데 이런 친절한 메일에 너무나도 많은 자율이 있다고 느꼈는지 그 메일을 받은 사원들이 다 거절했다고 한다.
이 자연스럽고 훈훈해 보이는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결국 사업관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냐, 사원들이 거절해서... 부장들이 그 상황에 대해서 뒤에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이래 저랬는데 거절했다네요", "싫다고 했데" 등등 그러면서 한 두 마디씩 추가가 되었다. "요즘 애들은..."
라떼/꼰대 경보가 울려서 읽기 거북하다면 읽기를 중단하기를 권하는 바다. (내가 그 꼰대니까.) 난 이 상황에서 한마디 해야겠다. 그들 앞에서 대놓고는 못하지만(소심해서..) 회사생활을 원만하게 하고 싶은 (신입) 사원이라면 명심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선호하는 업무는 있어도, 거부할 수 있는 업무는 없다."
말 그대로다. 제발... 1-3년 차에 '내가 개발자인데 사업관리를 하래'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사업관리로 일하는 게 평생도 아니고, 사업관리를 아는 게 회사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거기다가 사원에게 누가 어떤 책임을 지라고 할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실제로 팀에는 3년 차인데 프로젝트 1개 경력이 전부인 사원도 있다. 프로젝트 나가는 게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역할을 따지고 있다는 게 가히 놀라웠다. 그걸 거절하면 결국 또 일 없이 대기상태라는 걸 본인도 알면서 어떻게 그럴까?
제발. 제발. 명심하자. 돈의 흐름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를 알 수가 있다.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내가 돈을 내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수업을 듣고, 내가 원하는 교수 수업을 듣고, 교수의 강의를 평가했지만 회사는 그 반대다. 회사가 우리에게 돈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서 범위 내에서 회사는 자율적으로 나에게 일을 시킬 수 있다. (그래서 부당한 지시는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나이스 하게 웃으면서 선택권을 줘도 제발, 제발 '싫어요'라는 소리는 하지 말자. 그렇게 거절하고 고르다가 골로 가는 사람 여럿 봤다.
특정 일이 하고 싶어서 이 회사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 그 일이 없을 수도 있고, 당신을 쓰기엔 당신이 부적합할 수도 있다. (TA 하고 싶다고 손을 들어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는가?)
회사는 일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건 팩트다. 그래서 요즘 사원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해서 인정받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가 더 좋아하는 사람은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뭐든 맡겨만 주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은 사고를 치더라도 일을 맡긴다. 하지만 일을 고르는 사람은 그 사람을 부려먹느니 버리고 싶어 지는 게 현실이다.
만약 내가 지원하는 회사가 고정 부서가 있어서 그 일만 할 수 있다면 이 권고를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안 그럴 확률이 높다. 슈 과장도 첫 직장은 마케팅 부서였다. 절대 마케팅을 하지 않는 마케팅 부서였다. 그래도 그 일을 했다. 만약 저 위의 사원들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이건 제가 생각했던 업무가 아닌데요!?' 하며 퇴사하겠지... 그럼 결국 남는 건 주관이 뚜렷해서 백수가 된 나 자신이다. 제발 그러지 말자.
회사에서 도움이 안 되는 경험은 없다.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면 그땐 내가 선택을 할지언정 사원일 때는 참자. 그리고 묵묵히 해내자. 그래야 대리/과장이 되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 '사업관리가 뭔지 알아서 안 한다는 거야?'라는 소리 듣기 싫다면 한 번은 해보자. 안 한다고 했다가 회사생활 망가질 순 있어도 사업관리 한번 했다고 인생 망가지는 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