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능력보다 충성심이 회사에서 성공한다
제목만 듣고 '아니 이게 무슨 사내정치스러운 말인가!' 하며 욕을 하면서 들어왔다면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절대 그런 의도는 아니다. 사내정치로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 실제로 일부 사람들에게 그렇게 오해를 받으면서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절대 그런 게 아니니 오해 말아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업무 능력 < 충성심'이 무슨 말인고?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
올해의 이야기다.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는게 중요했던 사내 분위기에서 나와 같이 일했던 팀원에게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개인적으로 동의는 못하겠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차장은 그 아이디어를 추진하기 위해 보고서(PPT)를 작성했고 그걸 보여주면서 임원 보고를 하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슈 과장은 그것도 좋은데 임원 보고보다 팀장 보고가 먼저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차장은 '그런 형식적인 보고는 일을 지체시킬 뿐'이라고 하면서 슈 과장의 의견을 묵살했다. 슈 과장은 지금 그 보고서는 임원 보고할 수준의 장표가 아니니 보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나 그 차장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임원은 여기에서 내용만 볼 것이다'라고 하면서 또다시 슈 과장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래서 슈 과장은 그 상황에 해서 팀장에게 보고했다.
'와.. 고자질한거야?'라고 말한다면 어깨를 으쓱하겠지만, 슈 과장은 여러 사람이 임원 앞에서 바보가 되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이 신규 사업의 아이디어 보고는 '팀장 -> 임원 1 -> 임원 2' 순서로 보고가 되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그걸 바로 임원 2로 가져가겠다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 차장이 임원 2의 보고 일정을 잡아서 보고했다면 그 자리에는 슈 과장을 포함해서 팀장, 임원 1이 다 같이 앉아 있었을 것이고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받지 못한 채로 앉아서 임원 2가 하는 말에 다 같이 욕먹고 나올게 뻔했던 것이다.
팀장은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 차장에게 리뷰를 하자고 했다. 그의 걱정대로 일을 지체시킬 뿐이라면 리뷰를 빨리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리뷰에서 (역시나) 그 차장은 박살이 났다. 팀장은 그걸 보고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이것저것 고쳐오라고 했다. 심지어 어떻게 고칠지 화이트보드에 열심히 다 그려주셨다. 그러나 그 차장은 회의가 끝나고 힘들다고 하면서 팀장의 스타일이 본인과 너무 안 맞는다고 푸념하더니 그 이틀 뒤 임원 1의 보고 일정을 뒤로한 채 휴가를 내고 사라졌다(!!!!)
임원 1의 보고 자리에는 나와 선배가 둘이 들어갔다. 그 리뷰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적당히 둘러대며('고칠게 너무 많아서 일정을 맞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보고를 하고 시간을 채우고 나왔다. (그 차장은 포항인가 어딘가에 휴가를 내고 놀러가서 바다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 그 사업 아이디어는 결국 임원 2까지 보고를 갔다. 팀장님의 리뷰를 단 하나도 개선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다행인건 팀장과 임원 1이 모두 그 리뷰를 했기 때문에 임원 2가 뭐라 해도 바보가 되지 않고 그냥 물러날 뿐이었다. 그래서 임원 2에게 그 차장이 직접 깨졌다. 임원 1과 팀장은 그가 깨지는 걸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원 1과 팀장이 나빴다고 생각한다면 제발 그런 자선사업가 같은 소리는 하지말자. 기본적으로 보고라는 것은 내가 초안을 만들고 상사에게 리뷰를 하면서 내 장표에 상사의 의견을 넣는 과정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또 그 윗사람한테 가져가면 그 사람도 자기 의견이 있으니 그걸 또 장표에 넣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누군가는 '재작업'이라고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이유가 뭐냐? 그건 내 의견과 내 상사의 의견을 섞은 장표를 만들어서 가야만 그 윗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만약 저 차장이 팀장의 의견과 임원 1의 의견을 다 반영해서 장표를 만들어갔다면 임원 2가 화내고 있을 때 임원 1과 팀장이 열심히 변호했을 것이다. 본인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본인들이 어떤 점에서 이 사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 차장은 그 사업 아이템에 다른 사람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혼자서 자기 보고서를 다 방어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모두의 의견을 반영해서 그 사업 아이템이 빛이 나게 된다면 그 공을 나눠가져가게 된다. 내가 처음에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상을 받게 되면 직책자 이름 순서대로 호명이 될 것이다. 누구도 여기서 기여도를 기준으로 써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팀장 이상이 되면 포상자 명단에서 이름이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차장은 그들의 의견을 다 받아주고, 그들의 도움을 다 받아가면서 이 사업을 성공시켰어도 본인이 최고 공적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차장은 그걸 거부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포스팅의 제목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건 이 사업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이 있다. 아이디어가 획기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팀장과 임원 1은 어떻게든 이걸 살리려고 했다. 회사에서는 사실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그 아이템이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템을 추진하고 싶어 하는 상위 직책자가 있기 때문에 되는 것이다. 그 차장은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왜? 임원 1과 팀장은 본인들이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했지만 그 차장이 따라주지 않은 것에 대해 그 차장의 능력을 떠나서 '같이 일하기 힘들다'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 사업 아이디어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 진도도 나가지 못한채 묻혀버렸다. 그 차장은 팀장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팀을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피차일반이었던지라 팀장도 그 팀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임원 1이 다른 팀장을 선임했다. 슈 과장과 팀장은 다른 팀으로 갔다. 새로 온 팀장은 팀원이 1명밖에 남지 않은 팀을 마주해야 했다. (참고 : 원래 팀에 차장, 선배, 슈 과장 셋이 있었고 선배는 그 차장 때문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회사에 처음 들어올 때 사람들은 '제가 XX대학을 X.X 학점으로 졸업했으니 유능합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어필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졸 신입은 회사의 업무적 스킬은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선배가 후배들에게 기대하는 건 태도, 성실이 전부다.
과거 포스팅 참고>
2020/03/02 - [슈르의 오피스라이프/오피스라이프 팁] - 화려한 스펙의 신입도, 입사 후에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이다.
화려한 스펙의 신입도, 입사 후에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이다.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매해 변함없이 하는 말이 있다. "내 스펙으로는 지금 지원하면 입사 못하겠는데!?" 놀랍게도, 내가 입사한 해에도 그 말을 들었다. 나는 수줍게 웃으며 내가 그렇게 잘난
ebongshurr.tistory.com
하지만 직책자(팀장, 임원)가 기대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유능한 직원이면 당연히 좋지만, 그보다는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원한다. 충성이라는 것이 막장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에게 너의 인생을 걸고 위법적인 일을 하고 이런거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아니다. 옆에서 술을 마셔주고 놀아주고 그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아주 단순하게, 당신이 가진 업무적인 능력을 "팀장, 임원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임원과 팀장은 당신이 보는 것보다 바쁜 사람들이다. 얼핏 보면 자리에 붙어있지도 않고 어디 맨날 돌아다니면서 보고나 듣고 훈수 두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도 보고를 해야하고 누군가에게 훈수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보고자료는 어디서 올까? 그렇다. 당신이다. 근데 당신이 임원/팀장의 생각과 다른 보고자료를 만들어 온다면? 매우 힘들지 않을까??
아직도 와닿지 않는다면 이런 예를 들어보자.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어 졌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삼양라면이 먹고 싶다. 그래서 동생에게 심부름 값을 주며 '가서 삼양라면 좀 사 와'라고 시켰다고 치자. 동생이 알겠다고 나갔는데 돌아와서 들고 온 걸 보니 신라면이었다. 동생에게 '왜 삼양을 사 오라고 했는데 신라면을 사 온 거야?'라고 물었을 때 동생이 '이게 더 맛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게 바로 팀장/임원이 느끼는 감정이다.
어떤 내용의 보고서(삼양라면)를 쓰라고 월급(심부름값)을 줬는데 엉뚱한 보고서(신라면)를 써오는 것이다. 그것도 시간은 갈만큼 다 갔다. 보고서 내용을 바꿀 순 있어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 직원을 보며 임원/팀장은 제대로 듣지 못해서 실수했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이해를 다 했는데 그렇게 해왔다면 그 부하직원은 버릴 것이다. 그런 사람과 어떻게 일을 할까.
회사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찾는 이유는 '일을 잘해서'라고들 한다. 그렇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사랑 받는다. 근데 '일을 잘한다'라는 부분에는 항상 '의견 일치'라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나와 의견이 맞아', '내가 원하는 것을 해와'.라는 내용들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게 충성심과는 상관없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상대방과 의견이 달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보고서를 만들어오는 법을 안다. 그 안에 본인이 생각하는 점을 보완책으로 넣어온다면 센스가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충성심이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다. 윗사람이 지시하는 북극성을 보고 같이 달리는 마인드면 충분하다. 북극성이 왼쪽이라고 하면 왼쪽으로 뛰고 오른쪽이라면 오른쪽으로 뛰면 된다. 무분별하게 뛰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윗사람의 말을 무시하면서 자기 고집을 세우고 왼쪽이라는데 혼자 오른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갖고 회의를 하고 의견을 좁히는 과정을 생략한다면 당신은 조직에서 제거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직책이 낮다면 윗사람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자. 팀이 잘되면 팀장이 잘되고, 임원도 잘된다. 그 과정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팀장과 임원이 안다면 그들의 성공길에 당신을 놓고 갈리가 없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팀장 자리에 오르면 그런 팀원들이 나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라도록 하자. 그리고 그 팀원이 나타나면 나의 팀장이 나에게 그러했듯 잘해주고, 성공을 위해 같이 노력할 수 있도록 하자.
이건 절대 사내정치가 아니다. 사내정치는 일 없이 입만 살아서 떠들고 잘보여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일뿐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일을 잘하는 법'(행동)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자. 그게 회사에서 성공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