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르의 오피스라이프/오피스라이프 팁

공적상을 받게 되면 반드시 나눠라 (feat. 이기적인 후배)

슈르딩 2021. 12.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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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일 때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생했던 프로젝트 수행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수행팀이 단체로 상을 받게 되었다. 큰 회의실로 불려 가서 상장도 받았다. 지금도 사내 시스템을 조회해보면 포상 이력에 그때 받은 상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공적은 이 회사를 다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상을 받으면서 포상금이라는 것도 받았었다. 회사는 일정 금액의 현금을 봉투에 담아 PM에게 대표로 전달했다. 당시엔 금액을 들었을 텐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봉투를 PM(부장)이 상을 받고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팀장님에게 드렸다.

 

여기서 중요한 이벤트가 발생했다. 팀장님이 그 자리에서 돈 봉투에서 돈을 꺼내시더니 그 돈을 배분하기 시작하셨다. 그 프로젝트를 하느라 고생한 팀원은 동일한 금액 5만 원인가(?)를 그 자리에서 쥐어주셨고, 그리고 남은 금액 중 일부는 팀 회식 비용에 보태겠다고 하셨고, 또 남은 금액은 봉투에 담아 같이 일했던 팀에 갖다 주라고 PM에게 돌려주셨다.

 

그거였다. 내가 본 것은. 내 손에 쥐어진 5만 원 밖에 안 되는 적은 돈이 아니라 공적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그 상을 다시 나눠주는 모습. 그리고 그 이후로도 다양한 형태로 그 문화는 지속되었다.

 

- 우리 팀의 다른 분이 공적을 인정받아서 돈을 받게 되었을 때 그분은 혼자서 이루어낸 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원을 모두 초대해서 저녁을 사셨다.

 

- 내가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공적을 인정받았는데, 우리 회사는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정해져 있어서 PM이 대표로 받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PM님은 돈을 나누는 대신, 밥을 사는 대신, 스타벅스에 가서 텀블러를 하나씩 사서 수행인력들에게 나눠주셨다.

 

- 우리 팀의 옆 파트가 공적을 인정받아서 상을 받았는데, 팀원 모두를 챙기고 싶은데 일정을 잡기가 어려워서 칫솔 살균기를 사서 나눠주신 적이 있었다.

 

'무슨 공적상을 맨날 받냐?'라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냥 회사가 고생했다고 작게 챙겨주는 일들이었다. 보통 작은 프로젝트를 하면 프로젝트 팀에 30만 원 정도 주는 수준? 2-3년에 1번은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그런 자그마한 위로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난 이렇게 컸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는 후배들에게 제대로 본보기를 안 보여줬던 건지, 후배들이 배우지 않은 건지, 이제는 세대차이가 발생해버린 건지. 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목요일.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메일이 날아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올해 한 일로 공적상을 받게 되었으니 나와 후배 둘이서 각각 20만 원 한도 내에서 받고 싶은 물건을 고르라는 메일이었다. IT기기인 경우만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갖고 싶은 물건... 20만 원.. 어려웠다. 다른 팀들은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다들 2명인데 각각 20만 원씩 고른 사람들이 있고, 1명에게 몰아줘서 1명이 40만 원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결국 2명이서 40만 원을 쓰면 개수도 비율도 상관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이 과제를 올해 같이 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IT기기를 고르면 되는 거였다. 올해 직책자를 제외하고 이 일을 도와준 주요 인력은 총 4명이었다. 그중에 2명의 이름으로 나와 후배를 올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후배는 마음이 달랐다. 20만 원을 본인이 다 쓰겠다고 했다. 갖고 싶은 게 있었다면서. 나눠서 선물을 돌리자고 말하면 내가 권력을 휘둘러서 후배가 갖고 싶은걸 막는 꼴이 될까 봐 직접 말을 하지도 못했다. 그 불만을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20만 원을 끌어안고 고민을 해야 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3명이서 20만 원을 써서 뭔가를 살 수 있는지 찾아보니 누구도 필요 없어할 것 같은 물건들만 나왔다. 보조배터리, 외장하드... 그나마 마우스는 살 수 있었는데 그걸 좋아할지 어느 모델을 사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 40만 원을 4명과 나눌 선택권만 있었어도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결론? 결국 IT기기는 그냥 내가 필요한 걸 받기로 했다. 그리고 2명에게는 내가 따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스타벅스 기프트카드 같은 걸로... 


금요일까지 팀별로 막내가 취합해서 회신을 달라고 요청이 왔다. 우리 팀은 내 후배가 취합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제 황당한 일이 추가로 벌어졌다. (내 후배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휴가라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 얘가 취합하려고 나한테 전화를 했구나. 메일을 이제 제대로 읽었나 보네.'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게 아니었다.

 

후배 : "과장님, 혹시 뭐 받을지 고르셨어요?"

나 : "네. 다 골랐죠"

후배 : "혹시 얼마인가요?"

나 : "총합산이요? 19만 얼마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왜요?"

후배 : "아... 제가 고른 게 20만 원이 넘어서요."

나 : "네?"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뭘 들은 거지? 지금 난 다른 사람들하고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했는데 이 아이는 지금 내 20만 원에 부족한 금액이 있으면 그걸로 자기 물건을 얻어내려고 한 건가 지금? 얘가 지금... 수준이... 배운 게... 이 정도인 건가?

 

(참고로, 최저가를 다시 찾아보라는 나의 말에 최저가를 찾아내서 20만 원 아래로 무사히 찾아냈다. 그래서 문제가 사라졌다. 진작에 그렇게 찾았으면 내가 이런 충격을 안 받았을 텐데, 얘도 어지간히 운이 나쁘다.)


몇 주전에 우리 회사에 온 지 얼마 안 되시는 임원이 나에게 다른 프로젝트한 사람들이 좋은 공적상(=돈 많이 받는)을 받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었다. 나는 임원에게 "올해 제일 고생 많이 한 프로젝트이고 수혜자가 많아서 잘된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임원은 나의 말에 "사람 이름은 다 올릴 수가 없었어요. 제한이 있어서."라고 이야기하셨고, 나는 우리 회사에 얼마 안 된 분에게 공적상을 받은 이후에 어떻게 분배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다.

 

"PM이나 유관부서 대표가 이름을 올리면 그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포상금이 배분이 되지만, 모든 PM은 프로젝트 같이 수행한 사람들에게 그걸 나눠줘요. 현금으로 주든, 밥을 사든, 선물을 사서 돌리든 혼자 챙기시는 분은 없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임원은 그럼 다행이라고 대답하셨다. 

 

하지만 내 바로 밑에 그러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올 한 해 탱자탱자 놀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1월 2일부로 다른 부서로 가버리는 이 아이가, 조직에서 이 모든 걸 알면서도 20만 원을 일부러 챙겨줬는데 그걸 혼자 다 챙겨 먹고 가겠다는 것이다. 난... 오늘부로 이 후배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이런 마음으로 도대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겠다는 건지. 이런 마음을 가진 이 아이에겐 난 무엇일까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쳤다.


공적상을 받아서 '포상'을 받게 된다면 제발 제발 제발 제에에에에바아아아알 그 공적상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하자. 그게 위에서 이야기한 방법이 아니어도 좋다. 상장만 덩그러니 받았거나 포상금이 너무 적었다거나 아니면 나눌 사람이 너무 많은 경우라면 인사만 해도 괜찮다. '제가 이런 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게 다 당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도와준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다.

 

공적상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망가지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았다. 그것은 그 돈 한 푼 두 푼으로 인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 상이 탐나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그 상이 있다고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대외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 공적상을 혼자가 잘나서 이루어낸 것 같이 나 홀로 우뚝 서서 즐거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게 미워서다.

 

당신이 SI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무엇 하나 당신 혼자 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명심하도록 하자. 의사결정을 도와준 상사가 있었을 것이고, 같이 이야기를 들어준 동료가 있었을 것이고, 내 말을 믿고 따라준 후배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계약을 해야 하면 검토를 도와준 법무팀, 계약을 도와준 구매팀,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모든 상에 대해 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은 언제나 가져야 하는 것이고,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더 잘 챙겨야 하는 것은 진리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오지 않는다. 항상 도움만 받는 사람에게 계속 도움이 오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도움을 받는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도움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알기 때문이다.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계속 도와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이다.


나는 외로운 PM으로 올 한 해를 일했고 내년에도 내가 총대를 메고 전쟁터를 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장 하나 없이 20만 원짜리 IT기기를 선물로 주겠다고 했을 때 거절하지 않았다. 내가 고생했기 때문도 아니고, 내가 그럴만한 일을 했기 때문도 아니고, 누군가가 내가 이걸 받고 힘 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내년에 계속 고생해주길 바라기도 했을 거고... 쩝)

 

그래서 마지막으로, 20만 원어치 IT기기를 받게 된 소감을 말하자면... 이 일을 맡겨주시고, 지지해주시고, 지원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 쓸 때 종종 생각할게요. 모두들 덕분에 초짜 PM이 올 한 해도 잘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

 

2021.12.1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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