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안 관련 미팅을 다녀온 선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담당 PM이 제안을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참고를 하고 계셨다고 하면서 내가 참여했던 제안서를 언급하셨다고 한다.
PM : "그 제안서 봤는데... 별로였어요."
라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속으로 '마인드컨트롤 하자..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넘어가 보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마인드컨트롤은 내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어디서... 수주한 제안서를 못 썼다고 해!?"
그렇다. 이건 불문율이다. "수주한 제안의 제안서는 잘 쓴 제안서다."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게 어떻게 기준이 될 수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제안서만 보고 사실 제삼자가 '잘 썼다', '못 썼다'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누가 봐도 잘 쓴 제안서는 있지만 잘 쓴 제안서가 사업을 수주하는 것은 아니듯이, 누가 봐도 못 쓴 제안서가 있지만 그 제안서로 사업을 수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제안서라는 것이 사업 수주를 위해 작성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어떻게 썼든 그 제안서가 사업 수주를 해냈다면 그 제안서는 잘 쓴 제안서인 거다.
여기서 누군가 조용히 나를 불러서 솔직히 이야기해보라고, 그 제안서 잘 썼냐 못 썼냐 말해보라고 한다면... 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잘 쓴 제안서는 아니었다'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잘 쓴 설명회본이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사업을 수주했기 때문에 제삼자가 그 제안서 갖고 뭐라 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그 사람에게 내 분노를 쏟아낼 것이다.
우린 그 제안서를 쓰기 위해 평일의 저녁, 주말의 쉼, 연휴의 여유까지 다 버리고 제안서를 썼다. 그 설명회를 위해 내가 왜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욕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리뷰를 받으면서 건설적인 피드백보다 '무서워...'라는 말을 더 열심히 적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안서와 설명회를... 별로였다고 제삼자가 태연하게 말하는 게... 난 용서가 안된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만약 수주한 제안서를 만나면, 그 제안서 자체의 퀄리티가 얼마든 그 목적 자체를 달성한 제안서를 존중해주기를... 실주한 제안서를 만나면 '못 써서 실주했겠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고생한 게 보이는 제안서인데 실주해서 안타깝다'라고 생각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든 문서는 그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한 걸로 인정해주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결과를 떠나서 그 작업을 하기 위해 수천장의 PPT 문서를 만들고, 납기준수를 위해 잠시의 일상을 포기한 사람들의 노력을 그렇게 가볍게 말해버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말하건데, 나에게 당신을 도와줄 기회가 온다면 난 기꺼이 거절할 겁니다. 선택권이 없는 일이라고 해도 난 거절을 할 겁니다. 그리고 멀리서 당신이 그 마음가짐으로 지금 직면한 제안을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볼 겁니다. 만약 제안의 결과가 실주가 된다면, 난 당신과 달리 제안을 못 썼다고 말하지 않고 '고생하셨다'라고 말할 거예요. 그게 당신과 나의 차이입니다.
2024.11.0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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