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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고객사를 돌아다니면 여러 가지를 알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첫 번째 직장 다닐 때 특정 가설이 있었고 두 번째 직장 다니면서 그 가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가설에 대한 확신이 생겨서 오늘 적는다.

 

"경쟁사의 수와 그 회사 직원의 수준은 반비례한다."

 

경쟁사가 수십 개는 족히 되는 고객사부터 독점의 위치에 있는 고객사까지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자기들끼리 사이는 좋고 거래처/협력업체/을 회사에게 못된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라고. ^^ 경쟁사가 적을수록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하나하나 이야기해 보겠다.

 

 

1. 경쟁사가 없다는 건, 이직할 곳이 없다는 뜻이다.

 

내 블로그의 글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내가 선택권이 없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독점적 위치에 있는 회사는 다른 무엇도 아닌 '이직'이라는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실제로 예전에 독점적 위치에 있는 고객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기이한 형국으로 일하는지 궁금해서 고객에게 돌려서 질문을 했었는데, 그 과장님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아니면 제가 갈 곳은 없어요."

 

그제야 그전에 갔던 다른 고객사의 직원들이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부장님 사랑해요~" 하면서 머리에 하트를 만들고 있는 이벤트 영상을 보고 기겁했던 것이 생각났다. 마찬가지로 그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공채 지원만 하면 무조건 뽑아준다는 임원의 말을 듣고 지원을 안 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이 났다. '신의 직장을... 왜!?'라고 황당하다는 리액션을 했었는데. 이제는 다 이해가 갔다. 나도 입사해서 그걸 하라면, 나도 퇴사각이다.

 

 

2. 이직할 곳이 없다는 건 사내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처럼 이직을 할 곳이 없는 회사의 직원들은, 살기 위해 이직을 하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사내 정치를 시작한다. 팀원은 팀장이 헛소리를 해도 옳다 박수치고 한 술 더 뜨는 모습을 보이고, 팀장끼리는 피 터지는 정치 싸움을 한다. 독점적 위치의 회사에 있는 특징은 사실 아니고, 갑의 지위를 갖고 있는 회사에서도 더러 나타나는 양상이다. 이런 모습이 일어나는 이유는 놀랍게도 '적이 없어서'다. 을의 회사들은 공공의 적 = 고객이 있기 때문에 뒤에서 씹을 사람이 있고, 같이 미워할 사람이 있어서 뭉치게 되지만, 갑의 회사 직원들은 공공의 적이라는 존재는 을의 회사에서 나오기보다 자기 회사에서 나오기 때문에 결국 갈라지게 된다.

 

나의 첫 직장은 갑의 위치를 갖고 있는 회사였고, 사내에서는 정치 싸움과 왕따가 존재했다. 어른이 왕따라니... 그래서 질겁하고 을의 회사로 들어왔다. 을의 회사는 고객에게 치여서 힘들지만, 우리끼리 싸우진 않는다. 우리끼리 싸우면 싸운 놈이 "이상한 놈"이 된다. 난 그게 좋다.

 

 

3. 싸우는 회사에는 결국 거친 사람만 남는다.

 

자기끼리 싸우는 회사 직원은 을에게 친절한 법이 없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이유도 성공을 위한 것이고, 상대방을 깎기 위한 것이니... 을이라고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리 없고, 인생에 칭찬이 없으니 을도 칭찬해 주는 법이 없다. 오히려 정당한 갑/을 관계를 내세우고, 자기들은 당해보지 않았기에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나도 나에게 예의 바른 사람이 있었다. (어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어요.) 그렇다고 인간적인 느낌이 든 적은 없었다. 깍듯한 태도에 나오는 계급차가 느껴졌달까... '아, 저 사람은 나와 다른 계급의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하는 그런 놀라운 태도였다. 차라리 하대를 했으면 수준이 낮다고 욕이라도 할 텐데, 저 우아하고도 예의 바른 거리두기 말투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 '보석의 나라'에 나오는 월인 같은 느낌?(이 비유를 모르면 패스...)

 

 

4. 그리고 결국 그들은 고인다.

 

경쟁사가 많은 회사를 다니는 고객이나 협력업체 사람들은 결국 이직을 하든, 다른 프로젝트를 가든 결국 오며 가며 다시 만나게 된다. 우연히 걸어 지나가다가 오랜 고객이나 협력업체 직원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흔하디 흔한 일과다. 근데 독점적 위치의 고객은 다시 본 일이 없다. 누군가를 통해 건너 들어서 소식을 알게 된 적도 없다. 그냥 남이 되어버렸달까.

 

다리가 다 무너진 섬 속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파리대왕의 어린 소년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 찾아주지 않고, 우리 같은 을 회사는 그들의 전쟁놀이의 들러리 같을 뿐인...

 

그래서 혹시 '어느 회사를 가지?'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커리어를 시작하는 시점을 어디로 해야 하나' 궁금하다면, 회사 면접장에 들어가서 '여기가 우리나라 넘버 원이라서 들어가고 싶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회사에 지원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우리나라에 이 회사 하나뿐이야' 라는 상황에 있다면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회사 생활이란 사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라기보다 '나는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의 질문이라는 것도...

 

나는 나랑 일하는 사람에게 무례하거나 경우 없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2025.03.1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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